어제는 딱 죽을 것만 같았는데 더이상 살 의미가 없어보였는데 술에 만땅취해 이 사람 저 사람과 통화를 하고 났더니 갑자기 살고 싶어졌다.
아니 뜬금없이 남친과 다시 함께 살고 싶다가 아니라 혼인신고가 하고 싶어졌다.
느즈막히 일어나 머리는 깨질 것 같은데도 그 생각은 선명히 기억나더라.
삼년 반을 함께 살면서도 단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그런거겠지 그 술에 취한 한밤중에 혼자라는 게 너무나 싫었던거지 어딘가에 소속감을, 가족이란 울타리가 필요했던 거겠지.
세상에 누군가 무조건적으로 나를 받아주는 한사람이 있다는 건 어쨌든 무진장 다행한 일이다.
오늘도 ' 난 여기서 더는 못 버틸 것 같아' 라고 말하니 바보같은 그 남자는 ' 그걸 이제 알았어?' 심상하게 웃는다.
그리고 말한다. 그렇게 힘들면 내려와 있으면 되지 않냐구..
오후내내 같은 의자에 앉아서 밖을보다 드라마를 보다 시간을 죽이고 있었는데 마침 보던 드라마엔 남친과 비슷한 남자가 나오더라.
그래 어느 분 말처럼 하늘님은 공평한지도 모르겠다
핏줄복은 없는 데 어쩌다보니 남자복은 차고 넘친다.
예전에도 사야에겐 이런 남자가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아무리 승질을 내도 무조건 받아주던 남자가.
아니 살았건 연애를 했건 그것도 아니면 친구로 지냈건 사야에게 몰빵하고 헤어져도 잊지못하던 남자들은 한둘이 아니라 부지기수였구나
그러니까 사야는 남자복은 차고 넘치는구나.
그래서 그 점쟁이는 그랬을까
당신은 열 남자도 거느릴 수 있는 사람이니 결혼같은 건 하지 말라구?
예전에도 썼었다만 지금은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되어버린 내 오빠가 그랬었다
네가 가진 뭔가가 그들을 미치게하는 건 맞겠지만 자기가 보기엔 그 남자들이 이용만당하고 버려지는 것 같다고..
이 말을 쓰고보니 내 오빠는 그때도 그랬구나. 사야의 진심과 정성은 간과했구나
왜 십오년을 산 남편이, 삼년반을 삼백육십오일 꼬박 붙어있던 남친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 너보다 괜찮은 여자를 만날 수는 없다' 라는 그 말은 간과했구나. 그러니까 사야가 삶을 이겨내는 그 핵심인 진심을 간과한게 맞구나.
드럽게 똑똑한 사야는, 그래 멘사회원까진 아니다만 나름 합리적이고 철저히 자기분석적이고 본인의 삶을 살아내기위해 피터지게 노력하고 있는 사야는,
남편을 버리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죽을 각오로 돌아온 건 맞는데 그리고 이렇게 힘들거라는 걸 예상 못한 것도 아닌 데, 그래도 너무 힘이 든다.
이 상황에서 쿨하게 죽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만 그럴 수가 없다
뭐 복잡한 사연이나 그런게 있다면 모양새가 만들어질 수도 있겠다만 그냥 너무나 단순한 이유다.
살고 싶어서, 이 세상이 너무 아름다와서..
문제는 사야가 살려면 남친이랑 다시 합하고 울 새깽이들과 어울려 이 모든 복잡한 세상사를 그러려니 할 수 있다면 그게 차선책이라도 될 수 있으련만
유감스럽게도 남친과 헤어지는 가장 큰 이유였던 스님과 어머님이 계시는 한 그 것도 불가능하다.
울 엄마가 너보다 완벽한 며느리를 만날 수 없다던 남편, 엄마가 그럴리가 없다고 전 마누라에게도 절대 그런 적이 없다던 남친
그래 사야는 지금 국적을 떠나서도 너무나 달랐던 그 두 사람에게 어필했던 걸 자랑질 하고 있는 거다.
왜냐구? 아무나 그렇게 못하니까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 상대의 상황까지 배려하는 건 사야의 장점이니까
또 술이 취했다
이 하루, 그녀는 또 망가져간다
드럽게 똑똑한 그 여자는 지금 삶이 너무 버겁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만 모든 치부를 드러내며 이 글을 왜 쓰고 있는 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그렇다니까
그 여자가 좀 쿨하게 잘 살아주길 원하는 당신들에겐 미안하지만
그 여자는 지금 쿨 할 수가 없다
2013.06.14. 여주에서..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