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축하한다고 시누이가 전화를 했다.
작년에도 했으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닌데 요즘 아무 생각없이 있다가 갑자기 시누이 전화를 받으니 좋더라.
일하다 시차까지 따져가며 전화했을 시누이의 마음이 전해져와 더없이 마음이 따뜻했다.
워낙 사는 곳도 멀고 또 우리가 이 나라 저 나라 떠돌다보니 일년에 한 번이나 많아야 두 번 만나던 사이였던데다
사야 성격상 시부모님이건 시누이건 할 말은 다했던 지라 껄끄러웠던 일도 좀 있었는데 떠나온 지 육년이 되는데도 아직도 생일축하라니..
하긴 십수년의 세월이 짧은 세월은 아니고 우리가 둘이만 마주앉아 나눴던 이야기도 적지않은 시간이긴 했다.
그 특유의 속사포로 할 말은 어찌 그리 많고 궁금한 건 또 뭐 그렇게 많은 지
구구절절히 그 애가 사야를 얼마나 걱정하는 지를 절실히 느끼겠더라.
경제상황은 어떤 건지 남친이랑 헤어진 지도 꽤 되었는 데 새로운 남자친구는 만들었는 지 언제 독일은 한번 다녀갈 건 지
겨우 한 살 차이인데도 예전엔 훨 어린 시누이같았는 데 오늘은 꼭 손윗 시누이같은 그런 염려와 이해를 하고 또 하더라지.
심지어 남친이랑은 합할 수 없는 건 지 혼자 힘든 것보다 그게 힘든 건지까지도 묻더라.
시누이랑 통화를 하고 났더니 우리집에 금송아지 있소까진 아니지만 사야의 찬란했던 과거가 하염없이 밀려와 충만한 기분이었다.
그래 사야에게도 따뜻하고 합리적이고 멋진 가족들이 있었구나.
그 중에서 가장 소원했던 시누이가 여전히 그때랑 같은 목소리로 전화해 독일식 생일인사를 외치는 걸보니 그 가족들이 너무 그립다.
그애처럼 속깊은 아이는 처음 본다고 그런 아이가 네 곁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하셨다던 시아버지가 네가 있어서 당신 아내도 아들도 딸도 손자도 걱정없다고 하셨던 그 시아버지가 너무 그립고
얘를 보면 어떻게 안 웃을 수가 있냐고 무조건 웃던 시어머니 대학을 안나온 게 뭐 그리 큰 험이라고 평생을 그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 시어머니도 그립고
심지어 시이모 시고모 시작은아버님까지 그립다.
내 엄마가 넌 왜 잘 살지 돌아와서 엄마 용돈도 못 주냐는 이야길 육년 간이나 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그런 이야길 시누이랑 했더니 그러게 자기 엄마도 그렇고 너희 엄마도 그렇고 왜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무너져 내리는 것도 모잘라 갖고 있던 단점들이 더 견고해지느냐고 말해주는 시누이.
왜 사야가 요즘 시어머니에게 전화하지 않는 지 그 이유를 단 번에 이해해 주던 시누이.
긴 시간도 아니고 겨우 이십분도 안되는 시간을 통화했다만 그 통화엔 사야가 살았던 그 십오년의 세월이 들어있더라.
그리고 이 힘든 시간을 견뎌내는 건 그 긴 세월동안, 사야를 있는 그대로 믿어주고 인정해주고 응원해주던 그들이 있더라.
칠개월을 이 외딴 곳에서 혼자 살고 있다고 거기다 요즘은 수면제도 먹지 않는다고 말했더니 그 시누이는 오늘 통화를 했던 사야의 친언니들보다 더 공감하고 기뻐해주더라.
인생에선 지울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아니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사야는 여기 쓰는 것보다 훨씬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저 가족들 사이에선 진짜 온전한 사랑을 받았다.
시부모님앞에서 소리소리 지르며 싸우고 아버님어머님 힘들게 했던 시간, 그러면서도 충분히 이해받던 시간들
그리고 또 거꾸로 사야가 힘들었던 시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에겐 사야가 최고였던 그 시간들.
아니 최고가 아니었을 지도 모르는 데 네가 최고라고 말해주던 그 사람들
그리고 그 십오년 사이에 녹아있는 사야의 그 삶.
시누이랑이야 늘 그랬으니까 꼭 남편과 살면서 전화를 받은 듯한 그 느낌.
시누이가 기억하는 생일을 전 남편이 기억 못할리 없다만 그건 또 나중에 이야기 하기로 하고..
아무리 시간이 흘렀어도 한국에 돌아와 나름 위험한 실험같은 것도 해볼 수 있었던 건 그들의 전적인 신뢰때문이었다는 걸..
그래 있었다
사야를 전적으로 신뢰해주던 사람들이
네가 그렇게 행동하는 데는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어주던 사람들이 사야에게도 있었다.
2013.06.19. 여주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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