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오박육일이나 되는 긴 시간을..
그리 오래 있을 생각으로 간 건 아니었는 데 연휴가 낀 지를 몰라 길어졌다.
어디를 나간 것도 아니고 그저 새깽이들과 뒹굴고 자고 먹고 마시다만 왔는 데그냥 하루가 지나간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너무 금쪽같은 시간이어서가 아니라 그저 어제같고 오늘같고 다를 게 없는 뭐 그런 시간이었달까.
여전한 사야의 새깽이들이다. 가본 지 오래되기도 했지만 요즘 유행하는 말로 힐링이 필요해 간건데 무거운 마음은 여전하다.
지난 번 부터는 남친이 데리러 오고 데려다주고 하는 관계로 오고가는 길은 수월해졌다만 그래도 사야에겐 너무나 먼 길이다.
남친의 집앞광경. 이런 저런 일로 남친도 요즘 우울증이라 참 안쓰러운데 저걸 보니 순간 울컥하더라. ' 아 이 남자도 생각보다 훨씬 힘이 드는 구나, 그리고 나름은 자신과 싸우며 무진장 애쓰고 있구나'
물론 사야도 상황상으로야 뭐 그리 다르진 않다만 그래도 남친처럼 혈연으로 맺어진 사람이 세상에 단하나도 없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지금 어머님마저 세상을 떠나신다면 지금 법적으로 맺어진 친인척이란 틀도 의미가 없어질 텐데 남친은 뭘 의지해 살아갈 수 있을까 그때 울 새깽이들이 위로가 될까.
유유상종이라고 왜 사야가 남친과 살고 싶어했는 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남친이나 사야나 가해자에게 분노할 줄 모르는 똑같이 모자란 인간들이더라구. 결단력이야 사야가 조금 낫다만 인간관계에 치여 삶속에서 질척거리는 건 참 많이 닮았더라.
고맙게도 남친과의 인연들이 사야를 많이 보고싶어한단다. 함께 일하던 목수님도, 남친의 후배도 거기다 큰조카랑 동갑인 남친 사촌동생까지.
이십대부터 칠십대까지 사야가 장성시절 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여전히 사야를 그리들 만나고 싶어한다니,
늘 그랬고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인 데 (또 자뻑모드긴 하다만) 연령이야 그렇다쳐도 그리 다양한 사람들이 사야를 보고싶어한다는 건 지금 사야에게 큰 위로다.
말하자면 떠나온 사람의 자기만족 뭐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만...
하루종일 산과 나무만 쳐다보는 사야는 묘하게도 그 산과 나무가 넘치는 곳이 아주 좋다. 꼭 서울 아파트촌에 사는 애가 어쩌다 자연에 가는 것처럼 내려가는 길 내내 늘 감탄하는 것도 모자라 저런 풍경을 만나면 더 행복하다.
물론 남친이 사는 곳이 내장산 추월산 강천산까지 산새뛰어난 곳이긴 하다만 여기 모래실도 만만찮은 절경인데, 그리고 이 초록에 지칠만도 한데 왜 매번 감동하는 지 모르겠다.
살인적인 날들.
오박육일만에 돌아왔더니 이 마당은 몇 달 간 사람이 안 산 것 같은 풍경이다. 무서운 생명력. 놀라운 풍경이다.
이 정도까진 아니라도 잡초야 대충 예상을 했고 꽃이 만발하길 기대했건만 떠나기 전과 비교 가장 왕성해진 건 저 매발톱 하나다.
오자마자 미친듯이 잡초를 제거하다보니 저 왼쪽의 싹처럼 봉숭아도 나오고 그 속엔 금잔화도 코스모스도 나오긴 하더라만 하나를 주면 하나를 얻는 게 인생이라고 할 때 마당에서 꽃가꾸기야말로 그런 것 같다.
그래 상기했듯이 남친이 저 화분 네 개를 가꾸는 것처럼 사야도 이 마당을 가꾼다
인간은 죽어도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상황이란 게 있고 그 나름은 버텨나간다.
문제는 그 상황을 간절히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다는 거겠지. 아니 사야만 그런가?
그런데 또 죽어도 이해 못 하는 뭐 그런 상황도 있는 것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타인에게 이해받기 위해 살다가 결국은 누구에게도 이해받 지 못하고 죽어가는 동물은 아닌 걸까
이해받는 다고 위로받다가 그게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 그 힘든 여정은 아닌 걸까.
각설하고 오랫만에 동영상 하나 올린다. 내 새끼들..
이런 사야육성 시끄러워 동영상 바꿉니다..^^;;
2013.05. 20. 여주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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