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늑한 모래실

추위에 지친 사야

史野 2013. 4. 26. 18:12

 

 

밖을 내다보면 영락없는 봄인데 나무도 저렇게 더 푸르러졌는데 추워도 너무 춥다.

비오고 바람불고 삼일간 마당에서 일을 못했다. 뼛속까지 떨리는 것 같은 추위.

이 곳은 산으로 둘러싸여 바람이 별로 없는 곳인데 요즘은 바람도 너무 분다.

 

여름에 태풍이 몇 번 와도 저 병들이 한번 쓰러질까 말까인데 이번엔 벌써 한번 쓰러졌다.

겨울에도 안 흔들리던 저 소나무가 요즘은 매일 흔들린다.

버티다 버티다 임계점인가 이젠 정말 승질이 마구 난다.

다음 주면 오월인데 그러니까 일년이 벌써 삼분의 일이나 지날 판인데 춥다춥다를 입에 달고 살다니.

아니 작년부터 꼬박 반년을 춥다를 달고 살고 있다. 난방비를 걱정해야할 사람에게 반년이 추운 나라가 말이 되는 가..ㅜㅜ

 

 

 

산에도 벚꽃이 만발이고 논두렁이며 여기저기 조팝꽃도 하얘서 눈이 부실 지경이다만 사시나무 떨듯하고 목이 자꾸 아파오면 아름다운 풍경도 다 소용이 없다.

 

 

 

난로없이는 버틸 수 없는 날들. 겨울에도 안그랬는데 요즘은 낮에도 자주 난로를 피우다보니 올해는 괜찮을 것 같았던 장작도 간당간당이다.

추울 걸 대비해서 넉넉하게 장작을 백만원어치나 산데다가 사야가 그동안 해다 나른 나무는 또 얼만데 그럼 올겨울엔 도대체 나무를 얼마나 사야한단 말이냐구???

아직 난로값도 손익분기점에 도달하지 못했는데 거기다 연통도 이삼년에 한번은 갈아줘야한다니 올 겨울엔 그 것도 해야하는데 기름값이며 도대체 그렇게 추위에 떨면서 난방비가 총 얼마가 들어간 건지 계산도 안된다.

 

사월하고도 하순인데 저녁엔 정말 난로앞 의자에 앉아 꼼짝을 안하다가 미리 켜놓은 전기장판속으로 들어가는 일상.

도저히 안되겠어서 얼마전부터 보일러를 돌려 실내온도를 17도로 맞추고 사는데 오늘은 부엌창문 잠시 열었다고 점심때 갑자기 보일러가 돌아가더라.

순간 어찌나 열이 받던 지.

바람은 불어도 해가 나는 것 같아 무장하고 산에 나뭇가지 주우러 가는데 집뒤에서 나물뜯으시던 옆집아주머니, 추운데 뭐하시냐니 겨울옷 입었다고 자랑(?)하시더라..^^;; 추위에 대해 잠시 이야길 나누고 나뭇가지를 줍기 시작하는데 또 갑자기 마구 쏟아지는 비

정말 가지가지한다..ㅎㅎ

 

남편이 침실에 난방을 하면 잠을 못자던 스타일이라 오랜 시간 함께 살다보니 단련이 되어 사야도 추위엔 꽤 강한 편인데 장성시절부터 오년간 추위로 개고생을 하고 있다.

 

 

 

이 곳은 참 아름다운 곳이고 사야는 이 집이 마음에 든다만 이렇게 반년이상 겨울이 지속되면 계속 살 자신이 없어진다.

가족들이 이 집을 팔고 서울로 나오라고 할 때 싫다고 한 건 서울에 아파트살 돈이 없는 이유도 있었다만 사야는 사실 한국아파트에서 한번도 살아본 적이 없어 아파트가 답답하고 두렵다.

 

시멘트마당이었을 지언정 결혼전에도 방문만 열면 마당인 곳에서 살았고 결혼한 이후엔 상해시절빼고는 다 발코니나 테라스가 있는 집에서 살았다. 상해시절엔 다행히도 집이 워낙 넓었던데다 한면만이 아니라 양면이 다 유리라서 그나마 덜 답답했다. 

작년에 서울에서 그리 무작정 걸어다녔던 이유도 오피스텔이 너무 답답해서였다. 크기가 문제가 아니라 거기 아마 자그마한 발코니라도 달렸더라면 발코니에 앉아있었지 그리 돌아다니진 않았을거다.

이건 어쩌면 사야가 가지고 있는 폐쇄공포증하고도 연관이 있을 지도 모른다.

 

사십오년을 넘게 그렇게 살았으니 어찌 아파트가 겁나지 않겠냐. 거기다 고층건물에 살았을 때도 아파트촌이 아니었던 관계로 시야는 확 트였었는데 가끔 남의 집에 놀러가 창밖으로보이는 아파트들을 보면 숨이 턱턱 막힌다.

그 뿐 아니라 또 연양리시절 빼고는 늘 부엌이 따로 분리된 집에서 살았다. 그래 부엌이 다 들여다보이는 집에서 사는 것도 적응이 안된다. 이것도 습관이 안되서인 지 뭔가 보이면 안될 것 같은 걸 보이는 기분이랄까.

이러니 아무리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봐도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는 건 사야에게 불가능해보인다.

 

어제 친구놈하고 통화를 하면서도 그런 이야길했었는데 여기서 겨울을 다시 보내려면 어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방한칸 정도는 그래도 따뜻하단 느낌이 나게 만들어야할텐데 그렇다고 구들을 놓을 수도 없고 뭘 어찌해야 좋을 지 모르겠다.

요즘은 하루에도 열두번 난로도 놨다 방밖으로 가마솥도 걸었다, 창고를 개조해 페치카도 만들었다 생쇼를 하느라 머리에서 쥐가 날 지경.

 

 

 

겨울엔 눈, 봄엔 꽃과 새싹, 여름엔 녹음, 가을엔 황금들판과 단풍.. 한국의 사계는 참 찬란하다만 겨울엔 너무 춥고 여름엔 너무 덥다.

사야가 살았던 타나라비교(아 홍콩은 빼고) 사람이 살기에 가장 안좋은 날씨인 것 같다. 런던보다도 날씨가 나쁘다는 더블린에 살 때도 이렇진 않았던 것 같다. 하긴 거기야 일년내내 날씨가 비슷비슷하니 뭐 불평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만..ㅎㅎ

 

이렇게 달달 떨다가 또 금방 덥다덥다를 외치게되겠지. 다행인 건 이 집은 그래도 여름엔 견딜만 하다는 것.

그래서 여름에 이 집은 독서하기가 참 좋다. 여름별장으로 쓰면 딱인데..ㅎㅎ

올 여름엔 또 이상기온을 핑계로 어떤 폭염, 어떤 태풍과 물난리가 기다리고 있을 지. 21세기를 살아간다만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건 역시나 그 지배아래 산다는 걸 의미하나보다.

 

 

 

비오던 날, 마당에서 장미를 꺾어왔다. 봉우리인 걸 사왔으니 말하자면 올해의 첫 수확물. 별거아닌데 마당에 핀 거랑 꽃병에 꽂은 건 큰 차이라 기분전환이 좀 되더라. 예전엔 장미에 열광했었는데 나이가 드니 시들하다만 그래도 싱그러운 장미향만큼은 여전히 일품이다.

 

 

어쨌든 사야는 모님의 심도있는 조언에 따라 오늘부터 공부(?)에 들어간다. 뭔가 주제를 정해 읽다가도 이 거 찾아보고 저 거 찾아보고 하다 삼천포로 빠져 죽도밥도 아니게 되기 일쑤였는 데 이번엔 좀 다를 수 있으려나.

세상도 볼만큼 봤고 사람도 만날만큼 만났으니 이젠 진정한 나를 만나야할 시간. 나란 존재를 규정짓는 것들을 이해해야할 시간.

우선은 난로를 피워야할 시간..ㅎㅎ

 

 

 

2013.4.26. 여주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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