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늑한 모래실

혼자 산다는 것 2

史野 2013. 4. 30. 23:36

요즘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를 우연히 보게되었는데 너무 재밌어서 지나간 회까지 다 챙겨봤다.

혼자사는 인구가 453만명이나 된다니 조금 놀랍다.

그치마 사야정도의 나이에 이런 시골에서 혼자사는 사람은 남녀불문 몇 안되겠지? ㅎㅎ

거기다 차까지 없이 혼자사는 사람은 좀 과장해서 사야가 유일하지 않을까? ^^;;

어쨌든 놀라왔던 건 그 사람들 대부분이 일어나자 마자 티비를 보던데 사야야말로 요즘 어둠이 내리면 늘 티비를 틀어놓는다

물론 티비소리를 싫어하는 사야는 아침에 티비를 본다는 건 끔찍한 일이고 저녁에도 거의 소리를 죽여놓고 있긴하다만 풍경도 꽃도 새도 볼 수 없는 밤에 뭔가 움직이고 있다는 게 위로가 되는 건 사실이다.

 

그제 끔찍한 일이 있었다

아무리 술에 취해도 그런 실수를 잘 안하는 사야가 김치찌개를 올려놓은 사실을 잊고 잠이 들어버린 것.

전날 24시간 정도 깨어있었던 관계로 꼬박 열두시간을 잤는데 그러니까 열두시간도 넘는 동안 김치찌개가 숯더미가 되어있더라.

후각이 예민한 편인 사야, 자다가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느끼긴 했는데 찌개가 타고 있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

 

침실문은 열어놓고 잤다만 부엌문을 닫은데다 어차피 거실은 층고가 높고 황토벽인지라 왠만한 냄새는 위로 올라가버리고 금방 흡수가 된다.

일어나 평소처럼 화장실다녀오고 몸무게도 재고 온도계도 확인하고 부엌문을 여는 순간 매케한게 기절초풍하는 줄 알았다.

탄내가 구토를 유발하는 냄새라는 걸 처음 알았다. 어제 오늘 창문열어놓고 난리를 쳤더니 거의 잡혔다만 정말 끔찍한 냄새다.

큰 일없이 지나간건 다행이긴해도 혼자사는 게 위험한 일이란 걸 다시 한번 절감했다지.

 

여기 혼자 남은 지 딱 반년이다.

반년이란 세월은 어떤 시간일까.

예전에 사야는 남편이 동의를 안해 못해봤다만 딱 반년만 파리에서 살아보는 게 소원이었다.

오전엔 어학원에 다니고 오후엔 미술관이나 파리시내를 쏘다니는 그런 꿈같은(?) 생활.

해보지 못했으므로 말할 수는 없다만 하루종일 돌아다니다 바게뜨빵하나 사서 집으로 돌아가고 그러는 날들이 반년 지속되면 예술이고 낭만이고 역시나 외로왔을까

 

혼자라고 외롭고 함께산다고 안 외롭고 그런 건 당연히 아니다. 결혼 전 식구들 거기다 너무나 이뻐라하는 귀여운 조카들과 함께 살 때도 사얀 미치도록 외로왔으니까 말이다.

인간이 외롭고 아니고는 누구와 함께 살고 아니고의 문제라기보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이해받고 있는 가 혹은 사랑받고 있는 가, 의 심리적 문제인 것 같다.

 

사야는 지금 장족의 발전을 하고 있는 중이다.

씽씽이가 있을 때도 옆옆집이 단 오일빈다는 것에 놀래 담양으로 튀내려갔던 전적이 있는 데 이젠 옆옆집이 있건 없건 전혀 심적요동이 없다

냄새때문이긴 하다만 어젠 처음으로 창문도 다 열어놓고 잤다.

 

그러다 보니 느낀 이 그지같은 날씨, 춥다고 생난리를 친게 몇 일 되지도 않았건만 어젠 보일러를 끄고 창문을 세 곳이나 열어놓고 잤다만 아침에 보니 여전히 17도더라. 한술더 떠 정오정도엔 저절로 18도로 올라가는 기염을 토하기까지..^^;;

마당에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겨우 책을 읽었을 뿐인데(그래 사야가 드디어 책도 읽기 시작했다) 추워서 일을 못 할 지경이었던게 겨우 이삼일전.

오늘은 더워서 햇볕아래선 책도 못 읽겠더라지.

 

역사에 관심은 있고 또 책도 읽어오고 있었다만 썼듯이 모님, 적확히는 쿨님!의 고마운 조언으로 사야가 공부를 시작했다

고등학교때도 국사공부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처럼 세 네번 읽는 걸로 공부했었고 기독교인이었을 때도 성경을 세번 통독하는 걸로 내가 믿는 기독교가 뭔지를 이해하려 했던 사야니 통독이 낯선 일은 아니다만 방향을 잡기는 쉽지 않았다.

이이화의 한국사를 읽으며 종으로 횡으로 공부하기로 한 것.

 

사야야 좋게 말해 이성적인 인간이고 욕구가 있는 인간이고 고맙게도 처절한 삶의 댓가로 얻은 부수적인 이득도 많고 용감한 선택을 했던 관계로 쌓은 경험도 많다.

그 책을 기본으로 해 이런 저런 것들을 찾아보고 비교해보고 가진 역량으로 최소한 한국사만큼은 제대로 이해해야겠단 야무진 꿈을 드디어 한 발을 내딛으며 실현하게 된 거다.

시작이 반이라고 지금으로선 뭔가 이 삶을 버텨낼 수 있는 축을 하나 잡은 것 같아 아주 기분이 좋다.

 

체계적으로 잘 하겠다면서도 평소 습관이 있어 대충 읽으며 이것 저것 찾아보고 오늘은 드디어 함석헌의 ' 뜻으로 보는 한국역사'의 앞부분을 읽었다

독일어책을 읽는 것도 아닌데 모르는 단어는 왜그렇게 많은 지, 그리고 익숙하지 않는 문장에 집중하는 건 왜그렇게 힘들 던 지.

함석헌옹의 책은 예전에 읽다가 말았는데 필사를 하고 싶을만큼 곱씹어야 할 화두랄까 그런 문장들이 많더라.

 

 

 

 

지난 주말 친구놈이 잠시 다녀갔다

고맙게도 친구놈, 사야의 계획을 듣더니 자긴 그렇게까진 못해도 네가 읽은 책을 자기에게 주고 니가 정리한 것들도 복사해주면 안되냐더라.

기획단계(?)에서도 이리 나눌 친구가 있다니 감사고 정말 그렇게 된다면 사야로서야 예전 남편하고 그랬듯이 같은 주제로 토론할 수 있는 상대가 생기는 건가 기대되는 상황이다.

그 놈은 가끔 사야를 열받게 하긴 해도 그리고 궁상스럽게 이 나이가 되도록 둘다 짝도 없고 애도 없고 삶도 좀 스산스럽고 이래저래 할 이야기가 많은 친구고, 또 어찌보면 현재 사야에게 가장 친밀한 친구이기도 하다.

 

가끔 드는 생각인데 삶은 또 그 상황에 맞게 늘 적당한 친구를 선물하기도 하는 것 같다는 생각

사얀 정말 살면서 그 순간엔 참 소중했던 친구들을 많이도 만났는데 문제는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거다.

이건 물론 떠돈 영향이 가장 크고 사야의 무심한 성격이 또 크고 운명이란 것도 있는 거 아닐까

아 이 말을 하고 보니 리즈도 마유미도 자비네도 무지 그립다.

 

우짜든둥

벌써 사월의 마지막 밤이다.

사야가 버텨낸 세월, 누군가에겐 몇 년같은 세월이었을 수도 있는 그 시간들

오바안하기로 유명한 친구놈마저 요즘 사야가 병원도 안가고 수면제를 안먹고 있단 사실에 놀라던데

말했다시피 수면제야 일종의 상징이었고 중요한 건 사야의 마음가짐

 

집은 삼십평 총 대지는 백평, 시야에서 보이는 곳은 수천평 아니 산까지 따지면 만평이 되려나

일단 시야에 들어오는 그 곳이 다 사야의 정원이라고 믿고 그 속에 몇 개월 째 스스로 갇혀있는 사야

스스로 갇혀 역시 스스로에게 끝도 없는 질문을 한다.

 

넌 왜 불혹이라고 불리는 그 끔찍한 나이에 무한신뢰를 보내주던 니 남편을 포기한거니

이십대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서로를 탐하고

자식이 있으면 좋겠지만 자식보다 중요한 건 바로 너다, 라는 남편을 왜 포기했을까

 

아니 사야가 원하는 거라면 다 해주는, 사야가 백년이 지나도 못 만날 것같은 남친은 왜 포기했을까  

돈을 많이 버는 남자, 돈을 못 버는 남자가 사야 삶을 규정지은 건 아니었는데 말이다

 

혼자사는 여자, 혼잣말도 잘 못하는 여자, 그래서 여기 떠드는 여자, 그래 그만하자

결론은 사야가 겁대가리 상실한 년, 이라는 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야가 이 인생에서 얻고 싶은 게 뭔지는 사야도 아직 잘 모르겠다

 

단지 이렇게 고민하고 애쓰는 만큼은 삶을 이해하고 싶다는 거

가끔 열받으면 어차피 나고 죽는 이 인생에서 뭘 그리 고민하냐, 한다만

그러기엔 인간의 사유가, 삶의 진정성이 너무 애처럽고 격하다

사야가 만약 염라대왕앞에 선다면

사야가 싫어하는 말인 ' 야 이 새끼야 니가 염라대왕이냐'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야는 지금 죽어가고 있다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 인간은 어차피 태어나면서 죽어가고 있다는 뭐 그런 의미다

사야자신도 매번 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자신을 시험하고 싶은 지

그걸 통해서 사야가 원하는 게 뭔 지는 잘 모르겠거니와 언어로 표현하기도 쉽지는 않다

 

쉽게는 그런거겠지?

살아있으므로, 인간이고 싶지 화석이고 싶지 않으므로

삶과의 싸움이 아니라 이해하고 싶으므로

본연의 나,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간절히 아주 간절히 이해하고 싶으므로...

 

 

 

 

 

 

 

2013.04. 30. 여주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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