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많은 양의 비가 내릴 거라고 해서 꼭두새벽(여덟시반..ㅎㅎ)부터 일어나 서둘렀는데 일을 시작하자마자부터 비가 내리더라.
예전같으면 비맞으면서도 일을 했겠지만 혼자사는 사람에게 감기걸리는 것만큼 서러운 일도 없는 관계로 그냥 들어왔다.
요즘 사야를 벅차게 만드는 저 풍경. 산에는 진달래가 가득이고 새순이 돋는 나무위에 햇살까지 내려앉으면 세상에 부러울 게 하나도 없다. 그냥 아무생각없이 넋놓고 바라만 보고 있어도 충만감이 밀려든다.
그런데 어제부터는 저리 벚꽃도 피기시작했다. 진달래, 연두 녹색잎들과 어우러져 너무나 아름답다. 집안에 가만히 앉아서도 저런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다. 피아노소리를 들으며 바라보고 있으면 사야가 여기서 혼자 잘 버텨내는 게 신기한 게 아니라 당연한 건 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사야의 서재창문으로 보이는 벚나무도 만개했다.
어제 정리했다는 책장. 사야가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이 저기가서 음악트는 건데 세상에나 한달동안 같은 음악을 매일 듣는데도 하나도 지겹지가 않더라는거다. 물론 어젠 드디어 그 중 세 장은 바꿨는데 두 장은 그래도 포기가 안되더라는 것..ㅎㅎ
저 씨디가 다섯장 다 돌아가면 넷북에 미니스피커 연결해서 가요듣고 저녁엔 홈시어터로 '불후의 명곡' 음악듣고 음악시스템 세 개도 오지게 잘 쓰고 있다. '나는 가수다'가 끝나 섭섭했는데 우연히 보게된 '불후의 명곡' 다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서울에서 쓰던 티비와 침실에 있는 스피커까지 연결해 미니서재를 영화관으로 만들면 정말 끝내줄텐데..^^
원래 씨디들이 있던 곳이었는데 남친이 자기 씨디를 다 뽑아가는 바람에 엉망이 되어있다 저리 한국관련책들로 정리를 하니 너무 좋다. 높이도 맞췄으니 이젠 궁금한 거 있으면 쉽게 뽑아볼 수 있겠다.
그렇게 사고싶어하던 망원경을 드디어 구입했다. 싸구려긴 해도 눈이 나쁜 사야에겐 너무나 요긴한 물건이다.
우리집 손님들도 보고 먼산의 꽃도 보고 다시 찾아온 백로들의 우아한 날개짓도 보고..
시아버님이 거실에 앉아 망원경으로 새관찰하시는 게 취미셨는데 사야가 닮아간다..ㅎㅎ
보시다시피 드디어 논을 갈았다. 요즘은 농사가 얼마나 간단한 지 저 많은 논을 가는 데 한시간도 안걸리더라. 어쨌든 논이 갈리고 저리 논두렁에 조팝나무꽃이 하얗게 피어나는 이 맘때가 정말 좋다.
잡초뽑느라 너무 힘들어서 봄나물은 포기하고 살았는데 집옆 비탈에 사야가 좋아라하는 뽀리뱅이가 너무나 많이 올라와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다듬는 게 좀 힘들긴 해도 쌉사름한 맛을 좋아하는 사야에겐 포기하기 힘든 유혹이다. 드라마보며 저걸 다듬고 있는 데 전화한 친구놈. 누군가를 위해서 음식을 해야 신나지 혼자먹으려고 뭘 그런걸 하냐던데 무슨 말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난데 나를 위해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야지..ㅎㅎ
혼자사는 게 좋은 것 중 하나가 또 음식인데 상대가 원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원하는 걸 맘대로 먹을 수 있다는 거다. 물론 사야가 뭘 해줘도 맛있게 먹던 두 남자랑 살긴 했다만 아무래도 함께 살면 상대를 신경쓰게 되어있다.
잔뜩 산 양파로 장아찌도 담갔고 미나리물김치도 너무 맛있게 익었고 뽀리뱅이김치까지 담갔더니 부자가 된 기분이다. 남도에 가서 사온 미니굴비까지 구워 날이면 날마다 포식하고 있는 중.. 팔만원에 육십마리나 든 굴비를 사서 반만 가져왔는데도 구워먹고 찌개끓여먹고 조려먹고 난리를 치고 있다..^^
그제는 저 자그마한 돌솥에 보쌈도 해먹었다. 사실 보쌈이 먹고 싶었던 건 아니고 사다먹는 집에서 함께주는 배춧국이 먹고 싶었기때문이다. 보쌈삶은 물을 식혀서 기름은 걷어내고 다시멸치랑 김장김치 씻어서 넣고 끓이면 그 비슷한 맛이 난다. 저 솥닦을 게 일인데 아직도 안 닦고 있다만..^^;;
게으른 탓도 있지만 더운 물을 써야하는 관계로 요즘은 샤워랑 설겆이를 함께 하게된다. 시골살며 기름값 아끼려는 나름 노하우인데 이 것도 혼자사니 가능한 일..ㅎㅎ
여기와서 세번 째 맞는 봄이지만 올해처럼 저리 풍성한 진달래는 처음본다. 워낙 좋아하는 꽃이 지천에 피었으니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꽃이 적을 때는 꽃보느라 시도를 못해봤는데 갑자기 진달래화전을 만들어보고 싶어진다...
사야네 단골손님인 직박구리 한쌍. 평소엔 밥만먹고 가는데 오늘은 신기하게 저리 오디나무에 두 마리가 다 앉았다.
꼭 한마리가 먼저 와서 다른 놈도 오라고 어찌나 빽빽 소리를 지르는 지 웃음이 난다. 아 참 수곽에 물을 채워났더니 요즘은 밥먹고 물도 먹는다..^^
어젠 처음으로 개구리울음소리도 들었다. 개구리합창도 이 곳의 낭만인데 이제 문열어놓고 귀기울이는 계절이 왔네.
워낙 일이 많아 밖은 엄두를 못내다가 아무래도 울타리주변은 정리를 해야할 것 같아 나갔다가 저리 이쁘고 풍성한 제비꽃을 만났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순간 조동진의 제비꽃이 흐른다..^^
감격스럽게도 나무에 이리 꽃망울이 맺혔다. 나무들은 거의 장성시절 꼬챙이를 사서 끌고다니는 건데 처음으로 맺힌 꽃이다. 당시에 자두나무도 샀었는데 저게 그게 아닐까싶다. 꽃이 피니 자두도 맺힐까?
아 봄, 그리고 처음으로 혼자 맞는 봄.
여기야 사계절이 다 아름답지만 그래도 레이스가득달린 하얀 속치마같은 이 봄이 너무 아름다와 서럽다.
'아름다와 서럽다'는 말이 어렴풋이 이해가 가는 나이가 되었다는 건 기쁜 일일까..
난로피워놓고 우중산책이라도 다녀와야겠다.
2013.04.23. 여주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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