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늑한 모래실

봄밤, 그리고 봄비

史野 2013. 3. 17. 23:39

 

 

 

봄비가 내린다.

 

타닥타탁 타는  장작불소리와 어우러져 참 마음 편하게 하는 소리다.

 

비가 온다기에

어젠 서둘러 나무도 하고 마당의 낙엽들이며 좀 정리하고

오늘은 거름 좀 줄려고 했는데

이러다 저러다 또 하루가 가버렸네..

 

원했던 일은 못했지만 오늘은 대충이나마 폐인모드를 청산하고

나름은 또 이래저래 애썼던 날.

 

그래 약도 없고 커피도 없는 그런 날들이 또 가고 있다

사십오 년이 넘는 인생에 처음으로 이주 간 누군가를 만나지 않은 특별한 날들도..

혼자일 수 없었던 여자가

온전히 혼자였던 그 이주가..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사야인생에 커피는 선물이란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래 안마셔서 죽는 건 아니었다만

일어나 마실 커피가 없다고 생각하니 눈뜨기도 싫고 마냥 무기력해지던 뼈저린 경험.

 

다시 원두를 사와 커피를 마시는 날은 바흐의 커피칸타타라도 틀어놓고

나름의 세러머니를 하며 마셔야겠단 산골에 박힌 아줌마의 처절한 소망..

 

그 혹독했던 겨울을 견뎌냈으므로.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무소카놈이

사야인생에 몇 안되는 그런 놈이 어제, 

누나가 거기서 그 시간을 혼자 버텼다는 건 정말 훌륭한(!) 일이라던데

 

사야, 그래 이 겨울을 버터냈으니

감히 이 봄을 맞고 이 봄 그리고 여름을 여기서 견뎌낼 수 있는 걸까

하루에도 몇 번이나 꽃을 심었다 뽑았다 상상하는 게 반

넌 사람이 필요하다고, 왜 그리 힘들게 한국에 돌아왔는데, 질문하는 시간도 반.

 

한국에 돌아와 벌써 사야가 온 정성을 쏟았던 세 번째 마당인데

거기다 올해는 사야가 아끼던 꽃들을 짖밟고 망가트리던 새깽이들도 없는데

사야가 그리 간절히 원하던 아름다운 꽃밭은 완성되려나.

 

아니 처음으로 한 장소에서 삼년 째 맞게되는 봄인데

투자한 시간과 돈만큼의 결과가 이번 봄에는 좀 보이려나?

전원생활도 이젠 조금 있으면 오년인데 과연 그동안 뭔가 배운 건 있으려나

 

 

잠시 잦아졌던 비가 다시 세차게 내린다.

이 비가 그치면 이제 대지가 좀 푸르러 질까.

 

저 강한 빗소리를 들으니 오늘 퇴비를 못 깐게 더 후회된다만

그래 이렇게 봄비가 내리고

사야를 몸살나게 하는 봄은 결국 또 오는구나

 

 

 

 

 

 

 

 

 

 

 

2013. 03.17. 여주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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