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늑한 모래실

아 강태기...

史野 2013. 3. 13. 16:42

그가 죽었단다.

전율이 인다. 사실 사야는 이틀 전에 그를 생각했었다.

김창완 이야길 쓰며 역시 싫어진 송승환이 생각났고 그러다보니 아 그 깡마른 연기자가 누구였더라,

이름은 생각해내지 못했지만 그가 생각났었다.

그와 나는 전생에 무슨 인연이라도 있었던 걸까.

 

중학교1학년때 그가 연기한 에쿠스를 봤다.

그 어린 나이에 뭘 이해할 수 있었겠냐만 당시 특별활동으로 연극반도 하고 있었고

썼듯이 초딩때 혼자 세종문화회관까지 피터팬도 보러갔던 사야로선 그의 연기가 도저히 잊을 수 없을만큼 인상적이었다.

그의 강렬하고도 광기어린 연기.

 

또 만약이다만 다음 해 아빠가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그래서 사야가 여전히 연극에의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면,

종교에 미쳐 삶을 버텨낸게 아니라 연극에 미쳐 삶을 버텨냈다면,

사야인생은 백팔십도 달라있겠지?

 

그 후 송승환이 하는 에쿠스를 한번 더 본 적이 있다만 강태기의 그 연기력과 전율을 느낄 순 없었다.

 

삼십년이 훨 넘었는데도 그의 그 눈빛이 여전히 기억이 나는데..

거기다 까맣게 잊고 살았던 그가 사망했다는 데 왜 뒷통수를 맞은 듯 멍하다 이리 몸이 떨리는 걸까

 

그러고보니 그 어린 동생과 함께 그 연극을 봤던 게 큰언니였고

고2때 밤차를 타고 강릉에 가 태어나서 첫 칵테일을 마셨던 것도 큰언니와였고

볼쇼이발레단이 처음 내한했을 때 함께 보러갔던 사람도 큰언니였구나.

우린 나이차이도 많이 나는데 신기하게도 그런 일들을 함께 했었구나.

 

아 또 사십년 가까운 세월이 어지럽게 얽힌다. 

 

그의 명복을 빈다.

아니 모닝커피를 마신 지 이제 겨우 두 시간이다만 명복을 빌려면 맥주한잔이라도 마셔야겠다.

 

사야야 다음 생엔 춤을 추고 싶다만 생의 이 어지러운 업보들을 온 몸으로 날려버리며 그렇게 살고 싶다만

그의 전생은 어땠길래 그리 미친듯이 연기하게 만들었을까 그는 연기를 하며 행복했을까

이제 예순다섯이라니 너무나 아깝다.

 

그가 원하는 대로 될 수 있으면 좋겠다만

왠지 사야는 그가 다음생에 편안하고 한가로운 뭔가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다.

옴마니반메훔

 

 

 

2013.03.13. 여주에서...사야

 

41890

 

'4. 아늑한 모래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밤, 그리고 봄비  (0) 2013.03.17
이상한(?) 실험.  (0) 2013.03.14
사야는 사는 게 재밌다..ㅎㅎ  (0) 2013.03.11
구병시식 (救病施食)  (0) 2013.03.11
햇살  (0) 2013.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