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늑한 모래실

이상한(?) 실험.

史野 2013. 3. 14. 22:21

사얀 지금 아시다시피 몇 개월 째 본인을 실험중이다

내가 어디까지 견딜 수 있나 그럼 남는 건 뭔가 아니 어찌 변할 수 있나 뭐 그런 어찌보면 쓰잘데기없지만 사야에겐 절실한 뭐 그런 실험중이다.

 

정신과를 다닌 건 오래되었지만 또 그 정신과를 어찌보면 그리 오래다닌 것도 아니고, 사야처럼 연약한(?) 인간에게 '참 독하다' 하는 표현을 쓰는 사람이 몇 있는 데 그래 그냥 그렇게 독하게 이 삶을 버티고 있을 뿐..ㅎㅎ

 

여주에 갇혔다는 표현도 썼지만 정신과를 간 것도 거의 두 달 전, 서울에 간 것도 근 한달 전. 그 행불이 되었단 사건 이후론 여기서 꼼짝도 안한게 벌써 열흘이 넘었다.

 

조카 졸업식에 갔었다는 날 그 정신없었던 이유중 하나는 결국 정신과까지 들렸었기 때문이다. 세상에나 거기까지 가서 거기다 그 바쁜 곳에서 점심시간만 지나면 사야가 두 번째라는데, 아니라고 바빠서 약만 타갈거라고 이름적고 돌아설 때의 그 심정이란..^^;;

 

조카가 바빠 생각보다 늦어져 약을 찾아달라고 부탁할 올케언니도 시간을 못 맞출 상황이 되었고 사얀 약속이 있었고, 수요일은 또 병원이 쉬는 날..ㅜㅜ

목요일, 병원간 지 한 달이 넘었고 상담받고 약도 찾으러 갈겸 서울에 가려고 했으나 역시나 실패.

진짜 이상한 시누이를 둔 죄로 울 올케언니 그 약 찾아다 택배로 보내주기로 했는데 ( 아 또 강조하자면 귀찮기는 해도 병원이 비어플러스 근처 집 건너편 쯤이긴 하다..ㅎㅎ)  목요일 늦게 택배를 보내면 당연히 토요일도착예정.

 

근데 또 왠일 그걸 언니는 등기로 보냈는데 금요일에 왔더라는 거다. 아니 사야가 밖을 맨날 쳐다보는 것도 아니고 등기는 또 본인이 받아야한다며 인기척도 없이 다음 주 월욜일에 배달해드릴 거고 어쩌고 뭐 그런 쪽지를 붙여좋고 가셨네..

 

문제는 그 날 그 짱가놈이 다녀간 날인데 이 왠수는 또 문앞에 붙여진 그 쪽지를 못봤다네. 흑흑

그래 금요일에 벌써 약이 왔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ㅏ..아주 소설을 써라 소설을..ㅎㅎ

 

결론은 토요일, 약이 안오니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사야가 혹시 주차장앞에 있는 우편함에 있나 싶어 나갔다 오다 그 대문에 달린 메시지를 발견한거다.

약이 있는 데 안 먹는 거랑 없어 못 먹는 거랑은 당연히 다르다. 미치고 팔짝 뛰겠어서 그 쪽지를 자세히 읽어보니 토요일에도 우편물 찾으러 가는 게 다섯시까진 가능하다나?

다행히 다섯시 전, 택시를 불러 미친듯이 나갔는데 재방문 공지를 한 우편물은 담당자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나 뭐라나??

 

이건 무슨 개 풀뜯어먹는 소리도 아니고, 여기 어디 그런 조항이 있냐? 자세히 봐라 조근조근 따져가며 무게 좀 잡아줬더니 드디어 손에 들게 된 약봉지. 슬프게도 이 대한민국에선 늘 큰소리가 나거나 척을 해야 뭔가 해결되는 이 현실

결국은 왕복 삼만육천원의 택시비를 내고 그 맘고생을 하고 이주간의 약값이 단돈 만원도 안하는, 그리고 사야에겐 없어도 그만인 그 상징적인 약을 그렇게 찾아왔다!!!

 

아무도 댓글을 안달았더라만 그 미스테리어쩌고 한 글에 쓴 약에 대한 거부반응은 이런 사연도 크다.

어쨌거나 이제야 본론인데..ㅎㅎ 하도 서울을 안가다보니 어제 그 약이 결국은 떨어졌다

상기했듯이 약이 떨어진 거랑 약을 본인이 선택해서 안 먹는 거는 엄청난 차이다

거기다 사얀 어제 갑작스럽게 접한 그것도 아주 오래전의 기억과 관련된 강태기씨의 죽음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

화요일부터 오늘까지 그러니까 삼일 간 사야가 서울에 올 건지를 기다리는 고기공놈이 ' 언니 약도 없다면서 넘 무리하지 말아요' 라고 말한 그 상태

그런 사야가 오늘 무사히(?) 일어났더니 이번엔 원두가 없다

 

커피야말로 사야가 고등학교때부터 마시기 시작했으니 술이나 담배나 수면제보다도 훨 오랜 사야의 벗.

거기다 롬바르트 커피를 시작으로 원두를 마시기 시작한 건 정말 너무나 오래되었으므로 시어머니도 남편도 자는 사야옆에 커피부터 대령하는 게 늘 당연한 순서였으므로, 아니 남친도 집에 커피가 떨어진다는 건 상상을 해 본 적이 없으므로..

여행을 가도 커피를 갈아가 드립커피를 만들거나 아님 그 핸드밀을 챙겨가거나 삽심년 세월을 사얀 커피없이 살아본 적이 거의 없으므로..

그런데 오늘 그 원두가 없다 아니 오늘 사지 않았으므로 내일도 없을 거다.

사야를 아는 사람은 안다, 사야에게 커피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대신 자몽쥬스를 짜 마셨다. 짱가놈이 저 자몽을 사다준 적이 언제인데 저게 두 번 째

개을러서 안마시는 이유도 있다만 요즘은 저런 쥬스만 마셔도 속이 뒤집어 진다. 아픈 속을 견디며 있다보면 정말 사는 게 뭔가 싶어진다니까..ㅎㅎ

 

어쨌든 갑자기 그러고 싶어졌다

어차피 사야야 마음가는 대로 하는 인생이므로

약이 없으면 어떻고 원두가 없으면 어떻고

아무리 커피랑 삼십 년을 살아왔다고 해도 커피가 없다고 죽는 건 아니잖냐

그냥 오늘 그런 것을에서 자유로와 지고 싶었다

서둘렀다면 충분히 서울에 갔고 상담은 못했더라도 약은 탈 수 있었고

고기공놈도 짱가놈도 다 만날 수 있었겠지만 그냥 그러기 싫어졌다

 

그래 맥주도 포도주도 담배까지도

이렇게 없으면 그만이지 하는 시도를 해 볼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다만

그래도 그 시도가 함 해보고 싶었다

 

불행인 지 다행인 지 오늘 또 이웃집 분들이 안 계신다

혼자를 견뎌내지 못하던 인간이.

씽이랑 혼자임을 견뎌냈고

씽이도 없이 혼자임을 견뎌내다

그 분들도 없이 또 견뎌냈다

 

 

 

 

이젠 약도 없이 그리고 커피도 없이

이 시간을 견딘다.

대신 따뜻한 난로와 활활 타오르는 불빛이 있고

포도주도 있고 담배는 당근 있고 음악도 티비도 있고

 

사야가 비정상이란 걸 적나라하게 증명하는 건

요즘 사야가 책을 읽지 못한다는 거다.

일년 가까이 사야가 책을 읽은 건 정신과 대기실에서였다

 

또 우짜든둥

사야가 내일까지 멀쩡하다면 그건 사야가 또 한 걸음을 내딛는 거다

마인드컨트롤이라고 해야하나

고맙게도 고기공놈도 짱가놈도 오늘 사야의 이 노력을 응원해 주던데

그래 이런 실험(?)들이 성공해 사야가 좀 더 편안해지면 좋겠다...

 

 

 

사얀 늘 사진을 찍을 때 플래쉬를 죽이는 데 오늘 어떤 실수로 저 윗 사진과 거의 같은 상황에 플래쉬가 터졌고 이런 상황이 나왔다

세상에나 지금 사야옆에서 타고 있는 저 난로가 이리 사진이 찍힐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절절히 경험한다.

 

래 그런 날이다

 

사야가 여기서 견뎌내는 게 독한 게 아니라

사야가 이 삶을 절절히 살아내고 있다는 그 사실이 독한거다

오늘이 무사히 지나면 사야는 또 한뼘 성장하겠다

 

 

 

 

 

 

2013.03.14. 여주에서...사야

 

 

 

 

 

 

'4. 아늑한 모래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쑈를 한다..ㅎㅎ  (0) 2013.03.20
봄밤, 그리고 봄비  (0) 2013.03.17
아 강태기...  (0) 2013.03.13
사야는 사는 게 재밌다..ㅎㅎ  (0) 2013.03.11
구병시식 (救病施食)  (0) 2013.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