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상해에서 친했다는 마유미가 너무 보고싶어서 어디 흔적이라도 좀 찾을 수 없을까 뒤져보다가 이런 저런 우편물을 보게되었다.
마유미는 우리가 상해를 떠난 후 중국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갔고 도쿄시절 마유미가 집에 다니러 올 때마다 만났는데 하도 정신없이 지내다 재작년인가 중국집으로 전화를 해보니 결번이더라.
그럼 이사를 갔다는 이야기인데 유감스럽게도 사야는 마유미 도쿄집 전화번호를 모른다.당연히 마유미도 당시 우리 도쿄집 전화번호만 알고 있고 말이다..ㅜㅜ
어디 메일 주소는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걸 못 찾겠다
어쨌든 오늘 보험회사에서 주소변경을 해달라고 문자가 왔길래 변경을 하다가 거기 있는 주소가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한 장성주소더라는 것. 그래 우편물 보던 것도 그렇고 사야의 주소흔적이 궁금해졌다.
1.서울 성동구 용답동
2. Am Hackenbruch 62 40231 Duesseldorf Germany
3. IFC Dulin Ireland.
4. Alte gasse 78 40489 Duesseldorf Germany
5. Virchowstr. 1. 48167 Menster Germany
6. 9 Woodhaven Bridgrd. Milltown Dublin 14 Irealnd
(제일 싫었던 주소, 사야영어발음이 그리 나쁜 편은 아닌데 왜그렇게 못 알아듣던 지..ㅜㅜ)
7. 東亞富豪 衡山路 上海 中國
8. 2A block2 La Mer 71 Bisneyrd. Pokfuram Hongkong
9. 1807 Atago Forest Tower Tokyo Japan.
10.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498-5 메트로팰리스 1104호
11.전남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58
12.경기도 여주군 연양리 380-19
13.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498-5 메트로팰리스 802호
14. 그리고 지금..
사야가 정확히 이 시점 기준 지난 이십년동안 우편물을 받아보던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을 살았던 곳의 주소들이다
아무리 역마살 그것도 쌍역마살이 끼었다고 해도 저건 좀 심하지 않냐?
저러고 살았는데도 살풀이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니 도대체 사야인생은 또 앞으로 어찌 변해갈 지
하긴 한국에 돌아오지 않았다면 저기서 3개는 빠졌을테고 그 사이에도 사야가 만든 팔자도 있긴 있다만..ㅎㅎ
대신 러시아랑 독일이 들어갔을테고 다음은 어디가 추가될 지는 며느리도 모르는 일이겠지
저 중 3번은 단지 일년계약이었던데다 모든 게 갖춰진 아파트였던 관계로 자동차가득 싣고 간 짐과 작은 트럭하나로 일년가까이를 버텼고
4, 5번은 몇 달이었지만 가방 두 개 가지고 버텼고 10번도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사긴 했지만 역시 가방 두 개로 버텼다
겨우 남편에게서 책이랑 옷 씨디를 받았을 뿐인데 어쩌다 이렇게 짐이 늘어나버린 것인 지 집안을 둘러보니 한숨만 나온다.
국제이사를 다닐 땐 그래도 냉장고나 세탁기 오븐같은 기본적인 것들은 늘 갖춰서 있었는데 여긴 이제 그런것들에 난로까지
그나마 에어컨 안 산게 다행이긴하다만 사람이 살면서 필요한게 과연 이렇게 많아야할 까 가슴이 답답할 정도인데도 아직도 사고 싶은게 있으니 정말 인간이 가볍게 산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 지..
어쨌든 주소하나 치는데도 그 아파트 광경이며 그때 만난 사람들이며 당시 기분까지도 주마등처럼 마구마구 스쳐가며 그리움에 목이 멘다
정이 많은 사야는 상해시절 나랑 띠동갑이었던 우리집 청소부 시아오통까지 생각난다. 지금은 애가 주렁주렁 달린 아줌마가 되어있겠지?
그때 사야에게 소개시켜줬던 남자애랑 결혼해서 미용실차려 알콩달콩 잘 살고 있을까?
사야가 정말 잘한 일중 하나는 시아오통에게 미용기술을 배우게했다는 것. 그리고 아직도 후회되는 건 그 인도네시아친구네 집에서 일하던 식모애를 공부하라고 꼬시는 것까진 성공했는데 그때 그 친구마누라가 너무 싫어서 학교 좀 보내라는 말을 못하고 온 것.
당시 사야경제력이었으면 학비대는 것도 어렵지 않았는데 그 놈의 자존심이 뭐라고 그 말하는 게 그리 어려웠을까.
우짜든둥 진짜 봄이 오고있다.아니 이미 시작되었다. 잔설은 남아있다만 저 집을 비추는 햇살이 봄햇살이 아니고 뭐겠냐. 오늘 다 찍은 사진들인데 촛점이 안맞거나 하는 건 다 사진기탓이다만 (아이고 좋아라..ㅎㅎ) 벚나무에도 물이 올랐고 접시꽃잎도 나오고 애기똥풀도 살아나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잡초임에 분명한 저 어마어마한 싹들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달하지 않아도 이렇게 오는 것을, 시간은 붙잡으려고 난리여도 어차피 흐르는 것을..
그렇게 생각해보니 사야가 떠돌던 어떤 곳도 봄이 한국만큼 찬란한 곳은 없었다.
만물이 소생하는 그 근질근질한 느낌, 그리고 아련하디 아련한 그 연두색빛
어린 시절 시내버스가 용산 국방부앞을 지나다녔다. 그 푸르르기시작하던 감동. 그게 언제적 일인데 떠돌던 시절 봄만 되면 그때의 감동이 되살아나고 늘 한국의 그 찬란한 봄이 그리웠다.
썼다시피 독일은 겨울내내 잔듸가 소나무처럼 푸르르므로 그런 감동은 전혀 없다.
올해는 강쥐들이 없으니 사야의 마당에도 그런 봄이 찾아올까. 아니 거의 망가진 잔듸가 살아나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
일하고 들어와 앉는데 갑자기 침실이 무슨 예수강림기분(본 적 있냐고 안티걸지마라..^^) 햇살이 너무 좋아, 천창으로 비치는 햇살이 너무 좋아, 그 기분이 전달안되는 것도 이젠 다 사진기 책임..ㅎㅎ
아 느낌하니까 어젠 반대로 침대에 누워 바라본 거실 분위기가 너무 좋아 사진기가져다 누워 또 한 컷. 모든 불을 다 끄고 난로불로만 만들어진 분위기.
그리고 오늘의 압권인 이 택배
얼마전부터 산경님이라고 댓글을 남기시는 분이 있다. 그 그리운 새깽이들 옆에 사신다는 이유만으로도 사야에겐 고향까마귀만난 듯 반가운 분인데 고맙게도 또 이렇게 말린시래기랑 봄동을 잔뜩 보내주셨다.
봄동이 겨울을 지나 자란 배추라는 사실을 사야가 알게된 건 얼마안된다. 마침 내일 손님도 오는데 요긴하게 쓰겠다.
보내주신다고 이리 덥쑥받는 사야도 웃기지만 봄 어쩌고 하는 날 봄동을 받으니 기분이 배로 좋다. 조금만 보내셨다길래 진짜 조금인 줄 알았는데 어마어마한 양이라 조금 나눠 새로 이사오신 분들에게도 가져다 드렸는데 그 분들도 사야에게 시래기를 가져다 줄 생각이셨다고 해서 서로 웃었다. 산다는 건 어찌보면 정말 행복한 일이다.
겨울다운 겨울이 있는 곳에서 살아본 경험이 별로 없어서인 지 겨울을, 눈을 미치도록 좋아하는 사야다만 봄도 꽃도 역시 좋아하는 관계로 다시 봄이 찾아오고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럽다.
거기다 사야의 이 겨울은 너무나 혹독했으므로 이 봄은 그 혹독했던만큼 더 찬란할 거라고 믿어본다.
한달은 씽이가 옆에 있어주었고 두 달은 서울집도 있었지만 그래도 석달 반이 다 되도록 그리고 봄이 오도록 정신병원에 갇히지도 않고 무사히 버텨준 사야, 너 정말 대견하다, 그리고 자랑스럽다..ㅎㅎ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시간동안 아무 때나 짜증 한번 안내고 전화를 받아준 남친 아니 엄밀히는 전 남친, 술먹고 또 토했다는데도 잔소리한 번 안해준 너, 너도 정말 눈물나게 고맙다.
그래도 가까이 살기로 해놓고는 내 새끼들을 데리고 그리 멀리가버린 너는, 내가 키울 주제도 못 되면서도 키워주는 네가 고맙기는 커녕 내 새끼들을 절대로 못 내준다는 너는 여전히 밉다.
2013.02. 15. 여주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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