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나만의 공간

그래도 행복한 사야

史野 2012. 6. 20. 14:47

 

 

사실 이번 생일은 사야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미역국을 끓여먹은 역사적인(?) 생일이었다.

어쩌면 앞으론 자주 있을 수도 있는 일, 혼자 자기 생일상을 차려 혼자 밥을 먹는 일..

그래서 사야는 소중하니까..ㅎㅎ 좋아하는 성게미역국을 끓여먹으려 주문을 했는데 지난 주에 파도가 높아서 작업이 불가하다고 발송이 미뤄지고 있다는 문자를 받았다지..^^;;

아 그래도 역시나 사야가 좋아하는 표고버섯미역국을 맛있게 끓여먹었다. 사야의 최대장점은 자기가 한 음식을 자기가 너무 좋아한다는 것..ㅎㅎ

 

우짜든둥 처음으로 미역국을 혼자 앉아 먹다보니 거기다 사야가 생일날 미역국을 그리 자주 먹은 적도 없으므로 갑자기 엄마생각이 나더라는 거다

울 엄마가 날 낳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정말 감사하다, 란 생각이었으면 오죽 좋았겠냐만 아 울 엄마도 나를 낳을 땐 이렇게 키울 생각은 아니었겠지, 란 씁쓸한 마음.

 

그러고보니 울 엄마, 딸내미가 멀리도 아니고 바로옆에 와있건만 엄마가 미역국 끓여줄테니 오란 빈말도 안하셨네..^^;;

이제 사야는 엄마에 대한 미움은 없다. 그저 안타깝고 안쓰러운 마음 그리고 건강하셨으면 하는 마음뿐. 뭐 그렇다고 울 엄마가 여전히 중간중간 열받게 안하는 건 아니다만..하하하

 

생일이 좋은 게 누군가가 나를 기억해준다는 거 아니겠냐 아침부터 여기저기서 축하를 받는데 승호엄마에게서 전화가 없는거다. 짱가놈은 생일파티에 안왔으니 저녁에 짱가놈이랑 돼지갈비먹고 술한잔하며 많이 바쁜가 이상하게 승호엄마에게 전화가 없다고 말을 했었다.

 

저녁 아홉시 넘어선가 전화가 왔는데 사야가 다짜고짜 한 말이 '이제 생각났냐' 였다.

다른 친구였는데 광란의 밤을 보내고 있냐길래 아니라고 짱가놈이랑 술마신다 어쩐다 말하니  짱가놈은 당연히 승호엄마라고 생각을 하고 함 만나자고 하란다. (그 둘도 예전에 얼굴 엄청 본 사이다..ㅎㅎ)

그래서 사야는 또 아무생각없이 짱가놈이 만나잖다며 지난 번에 첫사랑놈이랑 만난 이야길 하면서 다음 주 쯤 넷이 만나기로 했더라지. 전화끊고 났더니 왜 연애를 하냐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하냐고..하하하

승호엄마가 아니라 다른 친구라니까 웃으면서 역시나 보고싶으니 상관없지 않냐고

그래 뭐 이렇게 넷이나 저렇게 넷이나 다 잘아는 사이들이니 같이 만나는 데 문제는 없다만 어찌나 웃기던지. 

 

어제 남친이 축하한다고 전화를 했길래 말만이냐니까 원하는 게 뭔지 말해보라는 거다. 그래서 원하는 건 다 사줄거냐니 '아 그건 아니지만' 이러면서 얼버무리는데 또 어찌나 웃었는 지.

 

어쨌든 오늘 승호엄마에게 문자를 보내 넌 언니 생일도 기억못하냐니까 당장 전화가 왔다. 나참 바쁘고 정신없으면 잊어버릴 수도 있는 거지 무슨 지구라도 무너진 것 처럼 호들갑을 떨더니 역시나 원하는 게 있으면 다 사주겠다나? 그래서 어제 남친이야길 했더니 ' 겁이 났나보지. 나도 겁은나지만 그래도 말해라 난 진짜 원하는 거 다 사줄께'  하하하  이러니 어찌 사야가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지난 번 취직한 첫조카에게서도 전화가 와서 왔다갔다 시간 맞추기가 왜이리 어렵냐며 언제 자기가 밥한번을 사겠다는 거다. 세상에 조카에게서 밥사주겠다는 이야길 듣는 나이가 되었다니 또 대견하면서도 기분이 묘하던 지 모른다.

 

결국(?) 궁금해하던, 전남편에게서 축하메일이 왔다.

축하한단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이런 저런 이야기들.

작년 생일엔 '난 늘! 널 생각한다'였는데 이번 생일엔 '네 생각을 많이한다', 로 표현이 바뀌었더라만..ㅎㅎ

시간이 더 흐르면 '네 생각을 가끔한다'로 표현이 또 바뀌겠지? ^^;;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찡하고 눈가에 눈물이 맺히게 만드는 사람. 아빠만 되어준다면 더 바랄게 없을 것 같은데, 눈물이 아니라 엄마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그리 힘이 드는 일인걸까. 예전에 우리 시아버님 아이는 하늘이 주는 선물, 이라고 하셨는데 어쩌면 그 말이 맞는 건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를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어서 우린 여전히 서로를 그리워할 수 있어서 행복한 사야다. 사야뿐 아니라 고기공놈,도 그를 아는 내 주변사람들도 많이 보고싶다던데..하긴 그의 주변사람들도 나를 보고싶어한다니 세월을, 쌓인 정을 무시할 수는 없는 거겠지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리' 어쩌고 하는 노래도 있던데 우린 정말 언젠가 만나게 될까.

 

그래 그렇게 사야는 마흔다섯이 되었다

아직까지는 사야 스스로가 마음에 든다만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까. 나이먹는 다고 저절로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는 건 아니니까 끊임없는 자기점검이 필요하겠지?

 

주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게 해주시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체념할 줄 아는 용기를 주시며

그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다시 생각나는 글귀다.

 

 

 

2012.06.20. 서울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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