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노란대문집

사야네 소박한 일상과 밥상

史野 2009. 4. 21. 02:11

요즘 나는 참 신기한 경험들을 많이하고 있다.

 

시골아줌마로 퍼져서 막장드라마들은 다 챙겨보고 때론 아무 생각도 없고 아무 걱정도 없이 하루가 가는데 그게 꼭 늘 그랬던 것만 같고 그렇다.

 

내가 가졌던 많은 중요한 것들을 한꺼번에 잃어버렸는데 이 곳의 나는 내가 아닌 것 같은 순간들도 많은데 그래도 나는 너무 멀쩡히 아주 태연스럽게 이 곳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우선 제일 신기하다.

 

내가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한다고 믿었던 내 병, 썼듯이 그래서 전남편에게 제발 나를 그만 놔달라고 울부짖었던 그 병이 요즘은 나를 괴롭히지 않는게 또 신기하다.

 

정말 그때 남편이 자긴 그걸 병이 아니라 그냥 네 약한 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그런걸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정도.

 

물론 고통받은 시간이 얼마인데 내가 완전히 자유로와졌다고 믿지도 않지만 그래도 이 일상이 신기해 죽겠다. (그 일상이 새벽 세내시까지 술마시고 다음 날 오후 세시까지 자기도 하는 일상이다만..ㅎㅎ) 

 

 

 

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이 웃기는 남자 (낮잠자다 잠이 덜깨어 나온 모습..ㅎㅎ) 역할이 대단한것같다.

 

태어나서 엄마빼고는 이렇게 누군가랑 하루종일 붙어있는 것도 역시 처음있는 경험. 함께 가게를 하거나 해서 붙어있는 부부들도 많겠지만 우리처럼 이 나이에 애도 없고 둘다 백수면서 이렇게 사는 사람들은 진짜 드물거다.

 

그런데 우리는 진짜 하루종일 별탈없이 무진장 웃으면서 잘 지낸다. 이 남자가 나를 무조건 받아주기때문에...

 

그제 같은 동네사시는 이모님이 올라오셔서도 말씀하셨지만 아마 절집에 오래살아서인가 도가 통한거 같다..^^;;;;

 

 

 

  우짜든둥 우리집 소박한 밥상이야기.

 

한동안은 밑반찬도 열심히 만들고 그랬는데 요즘 나는 만사가 귀찮다. 그래 사다먹기도 하고 라면도 먹고 그러는데 그래도 하루에 한끼는 제대로 밥을 먹자고 남친과 결의(?)

 

밑반찬이 없으니 끼니때마다 뭔가 만들어야한다. 오랫만에 청국장끓이고 김도 그냥 구워서 간장에 찍어먹고 전기밥솥에 스위치 눌러놓는 동시에 뭔가 만들어서 대충 먹는게 요즘 식사다.

 

저기서 중요한 건 저 윗쪽의 작은 접시에 담긴게 내 생에 처음 만들어본 민들레무침. 쌈만 싸먹었지 저리 먹어본 적은 없는데 의외로 괜찮네?

 

 

 

지난 번 야생화사진에 올렸던 뽀리뱅이 그게 박주가리나물이라고도 불리는 먹을거리란다. 뭔지 알고나니 그 풀들속에서도 여기저기 눈에 띄더라지.

 

왠지 먹을거라니까 그냥 놔두면 안될것같은 이 소시민적인 불안감(?)에 마구 뜯어다 인터넷을 검색해 죠 메인요리( 내 평생에 겉절이가 메인요리가 되는 날이 올줄 몰랐다만..^^)인 뽀리뱅이김치를 만들었다. 쌉싸름하면서도 묘하게 맛있다.

 

워낙 겉절이를 좋아하는 남친도 감동.

 

 

나물뜯는데 재미가 붙다보니 어젠 좀 무리를 했다. 우렁쌈밥을 준비하면서 오른쪽에 보시다시피 민들레잎 뜯고 그 옆 머위잎뜯어다 삶고 또 뽀리뱅이 뜯어다 이번엔 김치가 아니라 데쳐서 초고추장에 무쳤는데 씹싸름한게 진짜 맛있었다.

 

맨 왼쪽의 된장국도 지난 번 말린 냉이가 들어간 새우냉이 된장국. 물론 귀차니즘이 발동해 각자 국그릇이 아닌 찌개처럼 퍼먹기..-_-

 

그러니까 마당에서 뜯어온 나물들이 저 상에 총 네가지.

 

남친은 정말 내가 뭘해줘도 너무나 행복해하며 맛있게 잘 먹어 고맙다.

 

 

풀만 먹는 건 아니고 가끔은 이렇게 고기도 구워먹는다. 이건 올해 처음으로 야외에서 고기를 먹은 날. 역시나 이젠 옛날과 달리 밥도 국도 다 한그릇에 담아 같이 떠먹고 파무침이나 무채무침같은 건 하지도 않지만 말이다.

 

더 황당한 건 저 밥과 국이 담긴 그릇이 플라스틱이라는 것..ㅎㅎ

 

불을 놓은 건 낭만적 이유가 아니라 마당정리를 하며 쓸데없는 걸 태우는 목적이었지만 그 불앞에서 아주 오래도록 깜깜한 밤 풀벌레소리들을 들으며 앉아있었다. 그것조차도 혹 불씨가 번져 산불이 나지않을까하는 우려였지만 그래도 좋았다.  

 

 

오랫만에 사야모습. 저렇게 아기곰처럼 퉁퉁해져서는 가끔 삼일내내 세수도 안하고 옷도 안갈아입고 잘 지내고 있다.

 

아무리 어쩌고 저쩌고 해도 포기할 수 없었던 정원용 썬베드를 드디어 구입했다.  저리 누워 책을 읽거나 산을 바라보거나 하면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기분. 바로 앞에 바위가 있어서 저런 폼이면 공사하다만 지저분한 마당도 전혀 안보인다..ㅎㅎ

 

위의 노란 꽃들은 요즘 만발해서 나를 즐겁게하는 죽단화 다른 말로는 겹황매화라 한단다.

 

탁자에 쌓인 책들은 야생화 쉽게 찾기, 나무쉽게 찾기, 곤충 쉽게 찾기다. 야생화는 진작 구입했고 나무와 곤충은 얼마전에서야 샀다.

 

 

왔다갔다하며 지낸 시간을 합하면 이 곳에서 벌써 11개월이다.

 

내가 홍콩에서 살았던 시간이랑 같은데 이 곳에선 그저 찰나같은 기분이니 나이가 들어가는 탓일까.

 

가끔은 우아한 옷입고 음악회에 가고 하던 시간이 그립기고 하다.

 

오늘 고기공놈 퇴근길에 골뱅이먹으며 술한잔 하고 싶단 문자를 보냈던데 한국에 돌아왔어도 그립던 사람들과 맘껏 만나지 못하는 이 생활이 답답하기도 하다.

 

그래도 내겐 역시나 외국과 같은 이 곳에서 저 남자랑 지지고 볶으면서도 잘 지내는 이 생활이 신기하고 고맙고 그렇다.

 

 

가을바람님 블로그에 가면 첫 마주치는 인사가 사는 일에 현명함을 구하지 마라 아무도 모른다, 뭐 이런 글귀다

 

현명함을 구한 적은 없지만 납득하며 살고 싶었던 내게 이상하리만치 매번 가슴을 치는 문구다.

 

이 나이에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으며 나름 한소식했다 믿고 살았는데 냉이를 캐다 감기에 걸릴 뻔하고 호미를 들고 뽀리뱅이를 찾겠다고 마당 구석구석을 헤매고 다니는 나를 보며 갑자기 자신이 없어진다.

 

친구가 놀러와 창턱에 걸어놓은 수건하나도 못참아하던 나는 수건에 옷까지 여기저기 걸려도 눈하나 깜짝 안하고 잘 견디고 있으니

 

햇볕아래 사과색이 진짜인지 형광등 아래 사과색이 진짜인지 달빛에 비친 사과색이 진짜인지 모르겠다는 게 정답.

 

거의 이십년 전 초등학생아이들을 앞에놓고 인상파화가에 대해 설명하며 이런 이야기들을 했었는데 그 세월을 통해 산다는 것에 대해 내가 깨우친 건 하나도 없는건가.

 

우짜든둥

 

너무나 고맙게도 가문 땅에 단비가 내리고 있고 천장에서 뛰며 놀래키는 게 쥐가 아니라 새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해주는 이 곳의 밤이 깊어간다....

 

 

 

2009.04.20. 장성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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