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글에 썼지만 남친어머님도 참 특별하신 분이다.
나랑은 많이 다르시고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오셨지만 내게 새로운 어머니 그리고 남친과 함께사는 한 내가 지켜야할 분.
이번 일에 어머님이 최대 피해자라고 가슴아파했는데 결국은 그 어머님때문에 내가 결국 졌다.
남친은 어제부터 삼일간 방통대 출석수업을 받는 날. 이렇게 삼일내내 하루종일 나가있는 건 내가 여기내려와 처음 있는 일.
어제는 정말 집전화도 불통시켜놓고 휴대폰도 안들리게 해놓고 하루종일 잤다.
문다 잠가놓고 커튼까지 쳐놓았으니 설사 어머님이 나타나셨더라도 모른척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오늘은 점심때 남친전화에 깨어나 커피끓여 첫 잔을 마시려는 데 그러니까 아직 첫 담배도 피워물지 못했는데 진짜 어머님이 나타나셨다.
그것도 내가 여기와서 처음으로 혼자 택시를 타시고...
잠도 덜깼는데 거기다 남친과 전날 또 대판싸우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하는 건지 헷갈리고 괴로운 시점인데 순간 짜증이 확 밀려오는 것과 동시에 아 남친도 없는데 혼자 택시타고 오신 걸 보니 작정하고 오셨구나하는 안쓰러움.
나 어머님께 진짜 불만많지만 어머님께 거의 말씀드렸고 정말 그 분 마음아프게 해드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12시엔 꼭 드시는 분이 1시까지 식사도 안하셨다길래 서둘러 라면하나 끓여드리고 넌 왜 안먹냐길래 보무도 당당히 방금 일어나서 막 커피마시는 중이라고 말씀드렸다..-_-
남친어머님은 남친을 낳으신 분이 아니란다.
그래서 그 분께 더 잘해드리고 싶은 건 아니지만 어머님이나 남친이나 어떻게보면 세상에서 버림받고 둘이 서로 의지해온 그 시간이 누구보다 더 애절할 수 밖에 없다. 남친을 봐도 어머님을 뵈도 그 힘든 시간을 함께 나눠온 남들에게 느끼지 못하는 동지의식이랄까.
어머님은 어머님대로 남친때문에 힘들었던 시간 그리고 남친은 남친대로 반항하고 힘들어하면서 지나온 그 시간. 두 모자의 그 시간때문인 지 두 모자는 정말 애뜻하게 느껴졌고 나로 인해서 그 두 사람이 더 행복할 수 있기를 나는 바라고 또 바랬더랬다.
지난 번에 어머님께 우리가 이 집에서 나가겠다며 내가 간절히 드린 말씀도 ' 어머님 정말 죄송해요 그치만 저희 나가서 더 잘할게요'
그 어머님이 오늘 남친이 없는 걸 아시고 작정하고 오셨다.
정말 당신이 가지신 모든 카드를 오픈하시며 당신 아들을 구명(?)하러 오셨더라고.
태어나서 그런 모성애는 그리고 모성애라는 건 근원적인 핏줄때문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리고 또 그 모성애를 경험해보지 못한 나는 어머님의 그 절절한 모성애에 두손 두 발을 다 들었다.
그래 결국은 어찌보면 또 돈때문이었는데 거금 백만원이나 되는 수표를 들고 오셔서는 너희 둘이 여행을 다녀오며 풀면 안되겠냐고 이 돈이면 충분하지 않겠냐고 내게 내미시더라는 거지.
하느님 맙소사가 아니라 어머님 맙소사였는데, 처음엔 너무 황당해서 제가 어머님 속상하게해드렸으니 제 돈으로 어머님을 여행보내드려야한다고 맞섰는데 결국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당신입장에선 정말 여행도 맘대로 못 다니시는 당신입장에선 여행을 다녀오라는 것도 그러기에 당신이 보기에 절대 부족하지 않을 것 같은 액수를 내미신게 이 모든 상황이 편안히 마무리되길 바라시는 당신의 최선이었으니까.
인생 별거 있냐고 너희가 재밌고 즐겁게 사는 게 힘이 되었노라고 당신의 그 피같은 아들이 얼굴펴고 사는 게 다 내 덕이라고 그리고 당신이 이제 아들 덕을 보시노라고, 그런데 그것도 다 내덕이라고..
당신아들만 잘났다고 생각하는 우리 엄마때문일까. 나는 당신아들의 행복보다 내 행복이다 중요하다고 하던 시어머니도 있었는데, 왜 그렇게 남친 어머님의 그 마음이 절절히 와닿고 죄송하고 그랬는 지.
남친은 늘 나랑 울 시어머니관계를 질투해 나를 힘들게 하곤 했다. 그건 단순간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시간이 필요한건데도 말이다.
울 시어머니랑 내가 친구였던 것과 같은 형태로 남친어머님과 친구가 될 수는 없다. 그래도 난 그 전에도 그랬고 오늘도 세 시간넘게 어머님과 한 이야기를 통해 어머님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으로 남을 수는 있을 거 같다.
당신이 백만원이나 되는 그 어마어마한 돈을 주시며 남친이랑 나가서 여행하고 오라고 하신건 당신의 그 간절한 바람을 당신이 하실 수 있는 표현으로 하신거니까.
그래서 내가 항복한다. 젠장할 그 백만원때문에..
남친이 집에 없는 틈을 타 내게 들고오신 그 수표때문에..어떻게든지 내 화를 풀고싶으셨던 그 마음때문에..
나는 이 집을 떠나려던 그 마음을 접고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은 그 마음도 접고 여기 남는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그 백만원때문이라니까.
구구절절 설명할수는 없고 그 분이 남친을 위해서 백프로 사신 건 아니지만
오늘 나는 그 분에게 졌다.
당신이 간절히 원하시는대로 나는 여기서 산다.
그리고 당신이 믿어주시는 것처럼 나 남친에게 잘할거다.
나는 남친때문에 당신에게 잘 한건데
당신은 지금
당신때문에 내가 남친에게 더 잘해야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네
2009.04.04. 장성에서.. 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