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끔찍한 책 한강을 읽어내려가면서 나는 가끔 아니 자주 우리의 공주님 박근혜를 생각했다.
그녀도 과연 이 책을 읽었을까?
예전에 내가 잠시 언급을 했지만 도쿄 분카무라에서 효자동이발사를 보며 많이 웃기도 했지만 에레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내 몸은 후덜거렸었다. 여기 사진을 여러번 올린 내가 좋아하던 지하의 반노천카페에 주저앉아 벌렁거리는 심장을 안정시키느라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었지.
박통은 내가 국민학교(이런 땐 초등학교란 말이 안나온다) 6학년때 죽었다. 그러니까 나는 겨우 십몇년 그것도 기억만으로 따지면 십년도 되지 않는 그 어린 세월을 박통치하에서 보냈는데도 삼십년이 흐른 그때까지 내 안에는 공포가 숨어져있더라는 거다.
애들에게 난로가에 가지말라고 해도 백번 소용없고 차라리 난로에 손을 살짝 데게하는 게 낫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때의 그 놀람과 공포로 다신 그 위험한 짓을 안하게 된다는 거다. 그게 결국 박통이 독재를 유지하는 데 써먹은 방법이다만 그게 어렸던 내게 얼마나 공포스러웠으면 삼십년이나 지나 단지 영화 한편을 보고도 그렇게 후덜거렸을까. (물론 그 후로도 전두환정권이었다는 사실이 왜 영향이 없었겠냐만)
혼자본 영화였으니 그걸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고 나는 맥주를 마시곤 그 정신없는 시부야길을 사람들에 치여걸으며 어지럽고 복잡한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더랬다.
그 영화한편을 보고도 그랬는데 열권이나 되는 책을 읽으며 내가 어땠겠는가. 물론 영상이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만 세세한 묘사로 이어지는 소설의 적나라함을 따라갈 수는 없는 법이니까.
시골생활 중 천장구석에 태연히 자리잡은 거미한마리가 영화라면 이런 대하소설은 내 침대속을 기어다니는 지네랄까.
이 책은 4.19전부터 전통이 집권하기까지니까 이십년 남짓한 세월을 실감나게 너무나 절절하게 아니 당신가슴에 비수를 드리대며 그러나 친절하게도 흥미롭게 조근조근 이야기해준다.
읽는 내내 착찹하고 화도 나고... 읽는 나도 이런데 그 대단한 글을 그것도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까지 연달아 이십년을 투자하며 썼다는 조정래선생은 어땠을까.
인간에게 몇 끼 굶는 것보다 더 처절한 건 억울하게 당하는 게 아닐까. 그 배고픔도 힘든 데 거기다 억울함을 더하기까지 한 우리의 이 현대사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좋은 가 말이다.
사실 소설이라 그 구체적 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을 해서그렇지 내게 크게 새로울 내용이란 건 없었다. 그런데 그 구체적 내용들을 읽어가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건 그들의 그 처절함이기도 했지만 그 내용이 내가 지금 접하는 내용들이랑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거였다.
그렇게나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 그리고 이렇게나 세상이 달라졌는데 심지어 그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몇째니 어쩌고 떠드는 그 나라가 되었는데..
여전히 굶는 아이들이 즐비하고 주어만 없으면 무슨 일을 해도 되는 사람이, 한 말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대통령도 되고 돈도 벌고 좋은 자리에서 권력을 휘두르며 산다.
그게 내 나라 내 조국 자랑스런 대한민국.
제목으로 돌아가 박근혜는 이 소설을 읽었을까. 그녀의 아비가 내내 그 권좌에 있던 그 때 그녀가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아비가 대통령으로 있던 그때 그 아비가 무슨 일을 어떻게하며 이 나라가 유지되었는 지 알고 있는 걸까.
이 물음이 우습다. 아비가 어떤 줄 알았다면 절대 헌법의 신성함 어쩌고를 공개석상에서 운운하진 않았을테니까..
그래도 내가 바라는 세상은 지성인인 박근혜가 이런 책을 읽고 뭔가 객관적인 코멘트를 할 수 있는 것. 그때도 이야기했지만 박정희딸이라고 대통령이 되어선 안되는 게 아니라 박통딸이면서도 존경을 받을 수 있던가 아니면 국으로 찌그러져있던 가 뭐 그런 세상을 바란다는 거다.
독후감을 쓰는거다만 그 긴 내용을 구구절절히 여기 쓰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럴 여력도 없다. 이 책 열 권을 읽는 것만으로도 진이 다 빠져버렸으니까. 그래 이 책을 읽고나자마자 읽으려던 강준만의 현대사산책은 당분간 보류해야할 듯 하다.
책내용과 현 대한민국의 상황과 맞물리는 이 시점에서 그 역사를 몰랐던 것도 아니면서 난 도대체 이 나라에서 뭘 찾아먹겠다고 그렇게 기를 쓰고 돌아왔나 싶어 씁쓸하다.
아니 굳이 변명하자면 내가 돌아올 땐 이 나라꼴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그때도 썼지만 나는 박근혜만 한나라당 후보가 되지 않으면 이명박이 당선될꺼라는 건 내 사십평을 걸고 하나님 부처님 내 부모님을 걸고서라도 불가능하다 믿었으니까.
시대만 바뀌어 똑같은 일들이 여전히 일어나고 여전히 당당하고 그리고 슬프게도 여전히 언론을, 그 플레이를 믿고 여전히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분노스럽기 그지없다.
나 그리고 당신들 아니 더 나아가 이 땅에서 기를 쓰고 살아가는 그렇다고 뭐 이 땅을 떠나도 별 볼일 없을 대부분의 이 나라 백성들이 한심하고 불쌍하고 그래도 반복될테니 답답하기 그지없는 그런 날들이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이라지만 이건 사는 게 아니다.
내가 여기내려와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게 내 욕실력이 일취월장했다는 건데 이럴땐 정말 도움이 되다 못해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열받을 땐 상대도 줘패지 못할 상황에 욕만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하는 게 있을까 감탄하는 중.
사람뿐 아니라 사물에도 인연 아니 운명이라는 것이 있듯이 책과의 만남도 그런 것 같다.
이 책은 지금 읽었어야될 것이 아닌 지도 모르겠다. 이게 내게 독인 지 약인 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내가 느끼는 가장 중요한 건 앞으로 오십년동안도 대한민국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고, 그 말은 결국 희망이 없다는 것이고 그 보다 더 내게 중요한 건 이 땅에서 버티는 데 술만한 것 없을 거라는 것.
술이 취해, 마흔이 넘은 이 퇴물기생은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잘 버텨내야할 것인가나 고민하는 이 나이에
쓸데없이 그런 용기도 없으면서
나하나 희생해서 이 나라에 도움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건 예전처럼 누굴 암살해서 될 문제도 아니고(아니 그래서 된 적도 없고)
무슨 나라뺏긴 독립투사도 아니고
2008년 이 새벽에 공산당도 빗겨갔을만한 이 오지에서
그저 자꾸 눈물이 난다.
그나마 이젠 날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강조하며
이 그지같은 나라를 변호해야할 필요는 없어졌으니까 다행인걸까...
2008.12.05. 장성에서 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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