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관해 연달아 네 권의 책을 읽었다.
왕을 낳은 후궁들. 최경선. 김영사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이수광. 다산초당
소신에 목숨을 건 조선의 아웃사이더. 노대환. 역사의아침
궁녀. 신명호. 시공사
원래 조선시대에 관심이 많기도 하고 요즘 드라마 '이산'과 '왕과나'를 챙겨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든 역사서가 그렇듯이 보다보면 궁금하고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 많은데 내 책들은 아직도 도쿄에 있고 인터넷으로 확인을 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 무지 안타까왔다.
책제목들로 유추하겠지만 심각한 내용들은 아니고 또 특별하거나 아주 새로운 내용들은 없다. 물론 여기서 드라마에서 역사적으로 뭐가 맞고 틀렸고를 따질 생각도 없다.
어쨌든 생각해보니 조선시대가 어미의 신분을 따라 과거도 볼 수 없었던 거에 반해 명종사후부터이긴 해도 왕실에서 어미와 관계없이 아비의 혈통을 따라 왕의 지위에 오를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어느 대학 혹은 지역출신들이 그 외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아 심지어 대통령조차도 임기내내 무시당하는데 과연 명문가 왕후의 자식이 아닌 왕에게 충성을 바칠 수 있었을까.
거기다 절대왕권이라고 이야기되어지던 조선조에서 장자가 제대로 된 절차를 밟아 왕위가 계승되거나 혹 계승되었다고 해도 오래 간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도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조선조에 대한 생각을 바꿔놓는다.
조선왕 독설사건에 보면 조선왕 사분의 일이나 독살설에 휘말렸고 조강지처가 그리 중시되었던 유교사회에서 쫓겨난 왕비나 세자빈도 꽤 된다.
조선왕조계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왕후의 장자로 세손 세자에 책봉되어 무난히 왕위에 올라 수렴청정도 아니고 한동안 탈없이 왕좌에 있었던 왕들은 거의 없다시피한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해 권력싸움이 아닌 왕위계승후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왕좌에 앉아 있던 왕이 거의 없었다는 이야기니 과연 제대로된 정치가 가능했을까하는 의문이 남는다는 거다.
(정치랑 아무상관이 없는 하찮은 백성인 나만해도 BBK 동영상에 대한 납득할만한 해명이 없어 '왕좌에 계신 저 분은 과연 누구인가' 께름찍하기 그지없는데 말이다)
지금도 친박이니 친이니 공천을 가지고도 저 난리인데 당시 왕위찬탈이건 적자가 아닌 계승이건 왕위에 오를때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에게 어찌 자유로울 수 있었겠는가
드라마 '왕과나'에서도 결국은 물러나는 한명회는 딸들을 세조의 아들인 예종에게도 시집보내고 또 손자인 성종에게도 시집보내놓고 (그러니까 친언니가 숙모도 된다니) 같은 청주 한씨 집안인 성종의 모 인수대비와 손잡고 예종의 아들대신 성종을 임금으로 세우니 그 권세가 막강할 수밖에 없다.
(인수대비의 고모가 명나라후궁이 되어 그 집안이 조선에서 한 권세했다는 대목도, 아무리 인수대비가 왕의 모라도 예종의 계비가 엄연히 살아있는데 그리 말발을 세울 수 있었다는 것도 흥미롭다)
그러다보면 권력다툼에 휘말리게되어 조정에 피바람이 부니 민생문제에 신경쓸 겨를이 어디 있었겠는가. 임진왜란 당시 서울로 쳐들어온 왜군에게 백성들이 성문을 열어줬다는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 눈에 띄는 건 구운몽의 저자 김만중이 유배까지도 불사하며 임금앞에서 서인은 군자의 당이고 남인은 소인의 당이라며 소신(?)을 굽히지 않는 대목이 있는데 나와 다른 것에 대해 철저히 배척하는 그 태도는 몇 백년이 지난 지금도 다르지 않아 소름이 끼칠 정도다.
아니 그때는 사화에 모두 몰사를 당해서인지 아님 임금의 임기가 길었던 탓인지 자기 소신에 목숨은 걸지언정 이 당에서 저 당으로 바꾸는 철새는 없었으니 그때가 낫다고 해야하는 건가?
네 권 속에서 이래저래 비치는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흥미롭다기보다 답답하다 못해 갈피를 잡을 수 없어 어지럽기까지 하다.
많은 면에서 그때와 지금 공유하고 있는 부분들이 많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 역사를 우리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역사의 단절이라는 위기의식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오천년 역사에서 정조대는 겨우 이백년전 이야기인데도 (정조가 괴테보다 세살이나 어리다는 비교를 하면 더 실감이 난다) 이렇게 까마득한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뭘까.
'대왕세종'이나 '왕과나'나 '이산' 이나 수백년의 차이에도 거기서 거기인 사극탓을 해야할까
나름 조선시대에 대해 읽는다고 열심히 읽는대도 나와 그 시대의 거리는 좁혀지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재밌었던 건 위대한 세종대왕께서 이유야 어쨌건 며느리를 두번이나 내쫓는다는 거고 한 왕비에게서 열 명이나 되는 자식을, 한 후궁에게서 여덟 명이나 되는 자식을 보셨단다. 이 일 저 일 하시느라 피곤하고 바쁘셨을텐데 시쳇말로 정력좋은 임금이 능력도 좋은 건가 싶어 웃음이 난다.
그러나 그의 아들이었던 문종은 세자빈이 쫓겨나게 된 이유가 두 번이나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외로움에 술수를 혹은 동성애를 한 이유였다니 부전자전은 아닌가보다.
그냥 끝내기 아쉬어 사족을 붙이자면 이 나라는 지형이 험해 수레를 이용하는 것도 어렵다는 말이 나오던데 이 지형에 운하는 가능한걸까
하긴 세상이 좋아져 수레보다 더 강력한 자동차가 종횡무진하는 고속도로도 사방팔방 뚫렸으니 앞으로 경부운하도 만들고 호남운하도 만들고 또 영동운하도 만들면 나도 세월 잘 만난 덕에 전국방방곡곡 배타고 유람도 할 수 있으려나...^^
2008.03.10.서울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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