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책을 거의 읽지도 않지만 책을 읽어도 뭔가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이 책은 마음을 복잡스럽게 만들어줬다. 그러니 뭔가 풀어내야할 밖에..
오래 한국을 떠나있던 내게 소설가들은 모두 낯설다. 소설까지 챙겨가기엔 너무 무거웠던 이유다. 그나마 도쿄에 와서 나름 따라 잡아본다고 몇 읽긴 했지만 그 오랜세월의 공백을 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김영하의 책은 '오빠가 돌아왔다' 로 처음 접했는데 읽고 난 인상은' 그래 오빠가 돌아왔으니 어쩌라고?' 가 전부.
그런 경우 그 작가의 책을 다시 집어들게 되는 경우는 드문데(누군가의 강력한 추천을 제외하면) 친구놈이 읽으라고 가져다 놓은 몇 권의 책중 이 책이 꽂혀있길래 집어들었다.
일단은 남파 고정간첩의 이야기라는데 흥미로왔고 내가 모르던 상황이며 이야기를 끌어가는 작가의 능력이며가 예상보다 좋았다. (물론 지난 번에 언급했던 폴 발레리의 인용구도 마음에 들었고)
그러나 내게 이 책이 마음에 그토록 와닿은 건 그가 산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으로 와 그 새로운 세상을 습득해 익힌 자라는 데 있다.
그건 내 처지, 그러니까 국제결혼을 해서 남의 나라에 가서 사는 자들의 운명과 거의 같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몸으로 익히지 못한 것들을 후에 억지로(!) 습득해야 한다는 건 생각보다 생경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어찌 머리로 이해는 할 수 있더라도 가슴속에서 공감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지만 그리고 나 역시 오랜 경험을 통해 그 성스런 크리스마스 이브를 간절히 기다렸지만 그건 내가 진짜 초가 빛나는 그 분위기를 좋아했기 때문이지 그들이 느끼는 그 어린 시절부터의 황홀한 설레임이 있던 그 밤일 수는 없는 것이다.
지난 달인가 전화를 해온 시누이는 크리스마스에 올 수 없더라도 자신들의 그 성스런 밤을 잊지는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시누이야 나를 자기들과 같다고 생각하고 이 이방의(!) 땅에서 내가 보낼 황량한 이브가 걱정되어 그랬으리란 생각에 쓴 웃음이 나왔다.
나는 내 주변의 거의 모든 독일인들이 네가 외국인이라는 걸 느끼지 못하겠다고 할 정도로 잘 적응된 이방인-그러니까 소설속의 주인공처럼 그가 북한출신이라는 걸 모르는 것과 같이-이었지만 독일의 대학입학자격시험인 아비투어를 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 또래아이들에게 첫 섹스가 의미하는 바가 뭐 였는 지까지는 절대 공감할 수 없다
이건 홍콩에서 장국영이 떨어져 죽었을 때 장국영을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내 청춘의 한자락이 떨어져나가는 듯한 서늘함을 느꼈을 때 그 호텔이 자기가 늘 택시를 타고 지나가는 호텔이라고 쿨하게 말하던 내 남자와 내가 자란 공간의 갭이다.
내가 설사 한국에서 살았던 26년보다 더 긴 시간을 독일에서 살게 되었더라도 그 공유하지 못한 26년은 고스란히 내 기억의 세포속에 남아 남은 내 삶을 좌지우지 한다는 말이 맞겠다.
물론 이건 굳이 간첩이나 국제결혼같은 것 외에도 한국상황으로 보면 한 여자가 시댁에 들어가 겪는 소외감도 비슷한 맥락일 거다. 그들이 공유했던 그 기억, 그 느낌을 타인이 이해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니까.
이런 것들이 공간의 갭이라면 세대차이는 같은 맥락의 시간의 갭이겠다.
그래서 인간은 어차피 갈등하고 외로움에 치를 떨며 이해받고 싶어 발버둥을 치게 되는 건지도...
그 어딘가에 이 시공간의 갭을 넘어 나와 닮고 이해해줄 누군가가 있으리란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서 말이다.
그게 불가능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린 순간 혹자는 자살이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는 건 아닐까.
남한사회를 온몸으로 익히기 위해 발버둥쳤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게 나인 듯 전적으로 감정이입이 되더라.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외로운 영혼들이 내면화되지 못한 지식과 경험을 얻기 위해, 아니 더 적확하게는 무리에 소속되어 외톨이로 남지 않기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을까.
그게 시지푸스의 올려도 올려도 내려오는 바위일지도 모른다면 너무 잔인한 말일까
2007.12.07. 서울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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