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김영두 옮김
소나무
우리의 과거와 현재는 어떤 연속성을 가지는 가가 늘 궁금한 내게 오래전 석학들이 나누었다는 편지가 읽고 싶은 건 너무나 당연하다. 퇴계(1501-1570)야 너무도 유명하지만 한국에서 그래도 대학교육까지 받았던 내가 고봉 기대승(1527-1572)을 알게 된 건 우습게도 조용헌의 '오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이런 학자고 있었던가 하던 생각.
내가 그를 몰랐기에 그로부터 받은 유산이 전혀 없는 건지 아니면 나도 모르게 역시 받은 게 있는 건지 뭐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도 난다. 이 책은 일상적인 편지와 학문을 논한 편지로 나누어져 있는데 학문에 대해서야 내가 아는 바가 없으니 나중에 읽기로 하고 접었다.
13년동안 백여통의 편지를 주고 받았다는 이 두 사람은 26년이라는 나이차이를 넘어 아주 진지한 자세로 서로의 의견을 묻고 받아들인다. 문제는 과연 당시에 나이라는 것이 얼만큼 중요했는 가 일테고 지금 우리가 쓰는 한글로 그리고 그 한글이 가지는 언어권력적인 측면(존대어나 하대어같은)에서 씌여진 건 아니니까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나야 번역된 언어로 읽었지만 읽는 내내 언어와 사고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는데 과연 그들은 어떤식으로 생각하고 글로 옮겼을까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어려서부터 글을 배웠다고는 해도 그들이 사용한 글이란 문법의 체계가 전혀 다른 문자 아닌가. 내 형편없는 독일어실력으로도 내가 독일어를 이야기하거나 쓸 때는 독일어로 생각하는데 아니 심지어 요즘은 일본만화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신랑에게도 일본어가 마구 튀어나오는데 중국어가 아닌 한자로 글을 써야했던 그들의 그 사고의 과정이 나로선 도저히 상상이 가질 않는다.
언어가 사고를 형성한다는 말을 백프로 신뢰하지는 않지만 상당 정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굉장히 오랜 기간 우리의 문자였던 한자문헌이 우리사고에 끼친 영향은 어느 정도 어떤 부분일까도 궁금하고 말이다.
중국어를 배울 당시 내가 이해가 안간다며 자꾸 질문을 해서 선생이 중국어는 원래 체계가 없다고 화를 버럭낸 적이 있는데 (이 선생이 다른 선생에게 나때문에 골치가 아파죽겠다고 했단다..-_-) 퇴계와 고봉의 편지속에서도 뜻을 제대로 몰라 서로 묻는 다던지 잘못 이해했다는 내용이 수도 없이 나온다.
당대의 최고라는 그런 석학들 까지도 뜻을 가지고 설왕설래를 하는데 과연 다른 사람들은 제대로 이해를 했을까. 그리고 우리가 가진 어느 정도의 분열증은 문자와 언어가 일치하지 않았던 점에서 유래하는 건 아닐까.
물론 독일도 라틴어를 사용했었고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건 루터라니까 우리뿐만은 아니지만 우리는 독일과 비교해도 한글을 사용한 역사가 훨씬 짧은데도 불구하고 그래 우리의 학문이나 문화유산이 한자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한문을 읽어내는 능력은 배우지 못한 관계로 고전에 접근하는 능력이 거의 없으니 이 또한 문제라면 문제겠고 말이다. 유홍준의 완당평전을 읽고 너무 감동했더랬는데 그게 오류가 너무 많아서 개정판이 나왔다던가 어쨌다던가 하는 이야기도 있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내 닉인 사야는 그 완당평전을 읽고 지은거다..-_-)
다른 리뷰를 쓰면서도 언급했었지만 조선초의 사회상을 잘 알수 있는 미암일기같은 걸 내가 읽어볼 수도 없고 제대로된 번역서들도 없어서 조선시대로의 접근도 힘든 마당에 무슨 고구려니 어쩌고를 따지는지 한심하단 생각.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일 수 있는 건지, 우리는 과연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건지. 우리의 토양 그러니까 내 뿌리라는 게 조선시대를 통해 이어져온 유학인지 식민지시대를 거치며 일본으로부터 번역되어져 온 그 서구사상들인지 나는 아직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어쨌든 잘은 몰라도 교육의 힘인지 세뇌의 힘인지 퇴계에 대해 굉장히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책을 읽어보니 좀 웃기는(?) 할아버지인데다 '우리의 도'를 너무나 강조하는 걸 보니 내 생각처럼 송시열부터 다른 의견에 배타적 환경이 조성된게 아니라 퇴계때 벌써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진 건 아닌가 싶다.
편지를 보내고 받는 과정들이 너무나 복잡하고 힘들어서 눈물겨운데 전라도에 있는 고봉과 경상도에 있는 퇴계가 모든 길은 서울로 통한다고 그 배만큼 떨어진 거리로 살아간다는 것도 흥미롭다. 아무리 길이 발달하지 않고 낙후되었다 해도 16세기 후반인데 하인이나 인편이 있어야지만 편지를 보낼 수 있었다는 사실도 놀랍고 말이다.
나이를 초월한 우정속에서 감동을 기대하고 읽기 시작했던 책은 머리속에 잔뜩 의문만 남겼지만 그리고 어디서부터 이 의문을 풀어가야할 지 막막하기 그지 없지만 그래도 그들의 학문에 대한 진지함 고민등 그 태도가 실마리일 수는 있겠다
공부를 하는 건 끝도 없는 거란 새삼스러운 깨달음말이다.
당장은 덮지만 나중에 그 유명한 사단칠정논쟁, 그들이 나눈 학문의 편지들도 읽어볼 수 있을만큼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생길 수 있으면 좋겠단 소망을 가져본다.
2007.06.13. Tokyo에서..사야
어제 올려놓은 글을 금방 내렸는데 읽으신 분들도 많으신데다 여전히 미니알리미에는 떠 있더군요.
클릭하신 분들께 죄송하단 말씀 드립니다.
제가 이미 올린 글을 내리거나 하지는 않는데 어젠 정말 많이 취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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