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이야기할 때 늘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을 하는 데 살면 살 수록 혹은 알면 알 수록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동아시아속의 한일 2천년사
요시노 마코토지음
워낙 일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기에 일본관련 책을 읽기 시작한 후 이 책과 새로 쓴 일본사. 그리고 이이화의 한국사이야기중 일본관련부분들을 참고자료로 봤더랬다. 그래도 역사책인데 아무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아 다시 읽었다.
백제와는 긴밀한 관계에 있었던 이 일본이라는 나라는 책을 읽다보면 한국인인 내겐 아주 '건방진' 나라다. 물론 저자가 자국에 굉장히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어서 더 그렇게 읽히는 지도 모르겠다만.(저자는 임나일본부설도 부정한다)
중국에 왕조가 들어서기만 하면 잽싸게 달려들어가 책봉을 받던 한반도 국가들과는 달리 감히(!) 중국에 해뜨는 곳의 천자로부터라는 문서를 보내질 않나 툭하면 관계를 끊지를 않나 한반도의 국가들을 우습게 보는 건 기본이고 가끔은 중국까지 우습게 보는 역사로 점철이 되어있다.
그래도 섬나라라는 지리적 여건을 타고난 이 나라는 침략 한 번을 받지 않고 그냥 자기들끼리 잘먹고 잘 살아왔더라는 것.
유일했던 몽고의 침략시도는 카미카제라고 불린 태풍으로 물리치고 또 고려의 삼별초 항쟁으로 덕을 보니 수도없는 침략으로 고통받았던 우리나라를 생각할 때 얄밉지 않을 수 없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때 그렇게 당해놓고도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조선과의 무역이 중요했던 쓰시마섬에 말려 통신사를 보내기 시작한 조선은 우리 쪽 생각이야 어떻든 조공행렬처럼 오해받게 끔 되어있었던데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왕정이 복고된 후에는 막부와 대등한 관계로 외교를 했으니 천황의 신하라는 빌미까지 제공하게 된다.
임진왜란때 명나라의 보은을 입은 조선은 송시열의 유언에 따라 명나라 황제들 제사대까지 왕궁에 설치하며 명나라사랑에 목숨을 걸게 되고 명나라가 망한 후에는 명나라를 잇는 다는 소중화 사상에 물들어 일본같은 야만족은 무시를 하게 되니 가까와 질래야 가까와 질 수 없었던 두 나라다.
조선이야 일본을 무시하건 말건 일본은 나가사키를 통해 네덜란드와 중국과의 무역을 계속하고 역시 쓰시마섬을 통해 조선과도 무역을 하면서 국학부흥 역사서 본인들 입맛에 맞게 쓰기등 자심감이나 열나 키우고 있었다.
그때 홍대용책을 읽고도 조금 언급을 했지만 나이가 어린 중국인이 형님으로 모시겠다니 어찌 대국사람에게 그런 호칭을 들을 수 있겠냐며 설설 기던 조선인들과 달리 조선통신사들이 오자 우르르 몰려가 배움을 청하던 유학자들에게 체통을 지켜야 한다는 비판 이론이 성립되던 나라.
수 많은 왕조가 흥망하던 중국과 한반도의 역사와는 달리 7세기말경 만들어졌다는 일본이라는 국호를 아직도 쓰고 있는 독특한 나라. 그리고 한자를 차용해서 만들었다는 일본문자의 이른 사용부터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참 많다. 지난 책에서도 나왔지만 매화대신 사쿠라를 선택하던 이들의 그 자의식의 근원은 어디인걸까.
그 동상이몽의 두 나라 역사는 결국 일제강점기라는 슬픈 역사로, 또 해방후 경제적 의존으로까지 이어지니 어찌 자존심강한 한민족이 일본인들을 좋아할 수 있겠는가.
갑자기 이거야말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맞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의 간극을 좁히는 방법은 과연 있는 걸까.
내가 지금까지 공부한 바로는 일본은 단 한 번도 약소국이었던 적이 없었으며 그냥 지들끼리 너무나 잘 살아왔다. 나를 늘 놀래키는 일본인들의 이 특이함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라 너무나 오랜 세월을 거치며 나름의 문화를 발전시켜온 결과라는 것.
그러니까 교과서 왜곡같은 문제도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라 8세기초에 완성되었다는 '일본서기'부터 아주 자의적인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내가 너무 궁금한건 이들의 경제력인데 단순히 무역만으로 이해하기엔 좀 부족하다. 조선왕조 실록의 경우에도 초본을 작성한 후 물론 나중에 정쟁의 빌미를 주지 않으려는 의도도 있지만 종이때문에라도 씼는 작업을 해서 다시 이용했다던데 어떻게 벌써 11세기에 일개 궁녀가 겐지 모노카타리 같은 긴 소설을 쓸 종이를 구할 수 있었을까.
언어가 사고를 형성한다는 말을 백프로 신뢰하는 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는데 문법이며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는 일본과 한국은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 건지.
궁금한 건 많고 아는 건 없는 상태에서 일본이라는 나라 일본인을 이해하는 일은 요원해보인다만 그래도 한 권으로 이천년을 훓는 이 책은 도움이 많이 되었다. 엄두는 안나지만 '새로 쓴 일본사'도 제대로 읽긴 읽어야 할텐데 일본에 사는 동안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고 떠나겠다는 내 바램은 진짜 바램으로 끝날 지도 모르겠다.
2007.05.24. Tokyo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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