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산(神山)을 찾아 동쪽으로 향하네
-근대 중국 지식인의 일본 유학
옌안성지음
중국과 일본이라는 강대국사이에 낀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긴밀한 이 두 나라에 대해 잘도 모르거니와 무시하는 자존심 센 나라.
그 나라의 한 국민인 나는 늘 그 관계가 궁금하지만 뭐든지 명확하지가 않아 헤매게 된다. 중국에도 살아 보았고 일본에 살고 있지만 역사의 방대함이며 내 무지의 한계며 솔직히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래 내가 보는 중국, 일본이 아닌 중국인이 본 일본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서 읽기 시작한 이 책은 중국근대사에 무지한 내겐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벅찼다. 그러니까 근대 중국 지식인이 아니라 지식인들! 이라고 해야 부제가 맞는다.
너무나 오래도록 읽어서 기억도 잘 안나고 제대로 다 소화했다고 볼 수 없는 책이긴 해도 몇 가지 기록해두고 싶은 것들이 있다.
우선 청말에 일본으로 유학을 간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다는 사실이 놀랍고 그들의 그 비장한 각오가 지금보면 조금은 우습다.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중국이 서구열강에 당하면서 동양의 제일 주자로 나선 일본에 배우러 떠나는 마당이니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을까 이해는 가지만 말이다
재밌는 건 청일전쟁에서 졌던 중국인들이 러일전쟁때 일본의 승리를 기뻐하는 모습인데 당시는 황인종과 백인종의 대립, 일본이 황인종을 대표하는 식으로 이해를 했다니 역시나 지금의 시각이 아니라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절히 느끼겠다.
부국강병을 위해서 관비유학생뿐 아니라 사비유학생까지(논팔고 밭팔아) 일본으로 꾸역꾸역 몰려드는데 '요즘 세상엔 유학을 해야 한 자리 차지할 수 있다는' 말은 백년 전 중국사회나 지금의 한국사회나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다.
청말 중국인들은(그러니까 漢족) 서양에 대한 위기의식, 청조에 대한 반감, 한족으로서의 자각, 왕정자제에 대한 회의등 너무나 복잡한 요소들이 엉켜있고 일본유학생들 사이에서도 각자 추구하는 바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띄지만 그들이 얼마나 나라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지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내가 중국에 살고 여행을 다니고 할 때는 거의 느끼지 못했던 각 성의 주체의식도 두드러지는데 왕권이나 공산당이나 전체주의인건 같아도 청조보다는 마오쩌둥 정권이 훨씬 파시스트적인 면모가 강했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깨달음.
음식문화며 위생관념이며 옷차림까지 너무나 달랐던 중국유학생들은 일본에 와서 놀림을 당하며 우선 가장 충격을 받는데 지금 우리나라 유학생들이 밖에 나가서도 끼리 끼리 모여 놀다가 돌아오는 것처럼 그 문화차이와 배경을 이해하지 못해 유학의 의미가 퇴색된 경우도 많았다는 것.
예전 김용옥 책 어딘가에도 잠시 언급이 되는데 중국문화를 숭배하다시피 한 우리가 중국인을 멸시하는 것에 대한 아이러니가 궁금했는데 가정이긴해도 당시 일본에 만연해 있던 청나라 인들에 대한 멸시의 영향도 있지 않을 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조선에 대해선 거의 언급되지 않지만 1903 오사카 박람회에 지나 조선 인도 류큐(오키나와) 아이누 타이완 그리고 자바 일곱종족의 인류관을 만드는 사건이 있는데 중국인들이 너무나 분개한다는 것. 골자는 어떻게 저런(!) 나라들과 같은 취급을 받을 수 있냐는 거다. 그 보잘것 없고 하찮은 나라의 후손인 나는 순간 어찌나 열이 받던지..ㅜㅜ
그리고 인도와 중국 조선유학생들 중 그나마 해이상태가 조선유학생보다는 낫지만 인도유학생들보다 못하다는 구절, 또 하나는 미야자키 도텐이 김옥균이야기를 하며 매우 애석해했기에 쑹자오런이 조선에 대한 몇 책을 구입하고 김옥균상전을 빌려읽었다는 것. 내게 그저 실패한 친일 혁명가인 김옥균인데 그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는 생각이 든다. 김옥균을 들여다보면 혹 조선과 일본의 관계에 대한 실마리가 보일 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인물은 쑨원이 아닌 루쉰인데 저자의 존경심이 근원인지 루쉰이 원래 그런 사람인지 너무나 훌륭하게 기술되어 있다.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자로서 열심히 공부하고 감정이나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냉철함을 유지하는 고독한 인간. 역시나 상해에서 학교다닐 때 루쉰의 잡문 몇 개 밖에 읽은 적이 없는 나는 중국 근대사에 루쉰같은 사람이 있어서 복이었구나 하는 생각, 그리고 우리에게도 내가 모르는 그런 사람이 있는 걸까 하는 궁금함.
어쨌든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후 무시하던 일본으로까지 유학생들을 보내며 와신상담하는 중국의 태도는 내게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거기다 지금도 고서점거리가 남아있지만 일본에선 책이 돈이 된다는 당시 일본의 환경과 그 방대한 양과 정보의 홍수속에서 즐겁게 헤엄치는 몇 중국지식인들의 열정도 인상적이었던 건 마찬가지.
나야 남편도 서양사람인 마당에 동서양과 백인 황인 어쩌고 편가르기를 할 마음은 없다만 그래도 G8 에 그나마 일본이라는 나라가 들어가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고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으로 중국이 크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든다. 이라크 전쟁만해도 미국의 독주가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는 지 우리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지 않았는가. 독일의 슈뢰더와 프랑스의 쉬라크가 대항했어도 결국 이라크전쟁을 막지는 못했지만 이젠 그 독일이나 프랑스마저도 반론을 내지 않는 정권이 들어섰고 전쟁에 반대하던 아난 유엔총장마저 사라진 지금 세계가 어디로 가고 있는 지 정의는 어디가서 찾아야 하는 건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문제가 많은 나라라는 건 백번 인정하지만 그래도 세계의 균형을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랄까. 물론 내 사견이다만 우리에겐 사실 미국이 중요한게 아니라 중국과 일본 강대국 사이에서 그들을 제대로 알고 제대로 된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게 가장 급한 일이 아닌가 싶다.
역시나 기본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못하다보니 읽어야 할 책, 읽고 싶은 책들은 산더미같고 또 내 조국에선 열받게 하는 걸로도 모잘라 코미디같은 일들이 끝도 없이 일어나고 있는데 관심을 끊지 못하고 줄줄히 따라가며 읽다보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한국인으로 산다는 건 참 어렵다.
요즘은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의 후예로 사는 원죄보다 한국인으로 태어난 원죄가 더 큰게 아닐까하는 쓸데없는 생각까지 드니..
이건 장기전이라고 편하게 마음먹자 자꾸 다짐을 해도 가끔은 급해지는 마음을 나도 어쩌지 못하겠다.
책장 구석엔 루쉰의 책이 중국어 영어 심지어 독일어까지 네 권이나 얌전히 꼿혀만 있는데 혹 그의 책을 읽어보면 그의 냉철함을 닮을 수 있을까나.
2007.05.13. Tokyo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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