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집에 앉아 여유있게 인터넷도 하고 티비도 보며 뒹굴거리고 있다.
바닥생활이 적응이 안되어 힘들었는데 침대에 편안히 눕고 의자에 앉고 그러니 좋다..ㅎㅎ
이 곳에 오면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기분이라 참 묘하다.
한달내내 없어도 큰 불편이 없었던 티비를 하루종일 켜놓지를 않나 쓸데없이 잠자리가 늦어지질 않나 이 공간에 앉아있으면 내가 정말 일찍 일어나 밭매고 세끼 밥챙기고 열시면 눕던 사람인가 싶다.
거긴 거기대로 자연스러웠는데 여긴 또 여기대로 늘 그랬던 상황인거 보면 나는 정말 카멜레온인가..
어쨌든 오늘 내 인생에 너무나 중요한 일이 있었다.
늦은 저녁시간 울리는 집전화. 집전화번호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고 울리면 셋 중의 하나 남친이거나 승호엄마 그것도 아니면 올케언니다.
그렇게 기대하고 받았다 나를 깨게하는 사람이 울 엄마인데 오늘이 그랬다.(대신 엄마는 휴대폰 번호를 모르신다)
내가 엄마에게 전화를 하는 경우야 거의 없고 내내 집을 비웠던 지라 오랫만에 하는 통화.
결국은 남편과의 이혼수속문제며 남친문제며를 장시간에 걸쳐 털어놓았다. 공교롭게도 중간에 휴대폰으로 시어머님께 전화가 와서 잠시 끊었던 시간을 생각하면 두시간 넘게 통화했나
엄마랑 그렇게 오래통화했던 게 언제인가 싶게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야 그래 어차피 갈데까지 간거 엄마도 알아야되지 않겠냐란 마음에 정공법으로 말을 시작한건데 엄마반응이 예상외였다.
내가 남친이랑 사귀는 걸 떠나 거기 그렇게 내려가 있기까지 하는데도 무관심을 넘어 냉담하게까지 반응하는, 아니 아예 캡 무시로 일관하는 내 형제들과 달리 엄마는 지대한 관심을 보이더라는 거다.
거기다 언니들도 예민반응을 보이고 나랑 올케언니가 걱정해 마지않던 종교문제도 엄만 너무나 쿨하게 무당이나(그러니까 기독교인인 엄마에게 잡신수준) 그런게 아니고 절이라면 종교인이란 원래 다 순수하고 좋은 거라고 안도하시기까지 하는데 충격먹었다
여기 구구절절히 쓰지못한 남친의 사적인 이야기도 다 했는데 그럼 참 외로운 사람이구나 하시며 그럴수록 여자의 따뜻함이 더 필요하니 승질떨지 말고 더 잘해주라는 말씀까지..
내 엄마가 나랑 어떤 인연이건을 떠나 참 잘난 여자인줄은 알았다만 당신이 하는 나에대한 걱정을 미묘하게도 섞어가며 그리고 혼자 돌아와 살겠다는 딸내미가 어찌 또 아껴주는 좋은 남자를 만났다는 데 안도하며 진행되던 대화.
남친문제로 요즘 가족들에게 참 많이 섭섭했었다. 내가 돌아왔어도 안부전화 하나를 잘 안챙기는 인간들. 막상 내가 여기서 아파 떼굴떼굴 굴러도 모르는 인간들이 가족이란 이름으로 내가 무조건 돌아가야한다고 믿거나 남친을 못마땅해하는 것들이 나는 용납이 되지 않았더랬다.
이런 식으로 돌아와서 당연히 걱정이야 시켰겠지만 멕여달라는 것도 아니고 재워달라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내 나이가 이제 마흔이 넘었는데 내가 그렇게나 그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나 저들이 저렇게까지 반응하는 이유를 알수없어 괴롭고 힘들었다.
내 가족들과 비교 겨우 십오년정도 함께하고 인종도 말도 다른 내 남편 내 시어머님도 나를 이해하고 누구보다 간절히 내 행복을 바라는데 아니 더 나아가 더이상 남들 생각하지 말고 너만 생각하라고 너는 좀 이기적일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데 나랑 피를 나눈 내 가족들은 내게 원하는 게 뭔가 상처도 되더라.
그래서였을까 엄마에겐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고 아예 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더랬다.
의외로 엄마는 형제들이 아니라 엄마말대로 엄마 배아파서 난 진짜 그 엄마여서인지 저거 저렇게 돌아와서 어쩌나 싶었다가 내가 혼자가 아니고 누군가 나를 걱정하고 아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고마운듯하더라.
남편이 이혼수속때문에 한국에 오게되면 엄마가 함 보면 안되겠냐고 얼굴 한번 보고싶다는 말씀도 하시더라.
엄마랑 참 오랫만에 편하게 오랜 통화를 했다는 그 자체가 신기하다.
가족들이 내게 뭐 중요하냐고 막상 내가 아프면 물한잔이라도 떠다 줄 사람은 내 가족이 아니고 그 사람 아니냐는 내 말에도 엄마 동의하더라.
그리고 어차피 가족들과 별 상관없이 내려가 살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엄마가 아주 자세하게 모든 내막을 알게되어 그것도 나로선 다행이다.
이렇다고 내가 내 인생을 통틀어 엄마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그냥 나는 나쁜 년은 아니고 앞으로 엄마랑 나랑 예전의 상처를 덜 건드리며 그냥 이렇게 지금의 모습만 인정하며 갈 수 있으면 더 바랄게 없겠다.
나는 엄마를 용서하고 싶은 생각도, 원망도 없고 그저 엄마가 남은 생 편하게 사시길 나도 엄마때문에 열받는 일이 없길 바라는 마음뿐이니까...
엄마에게 다른 누구보다도 가까운 유전자를 물려받은 나는 어쨌든 오늘 쿨한 엄마가 미치도록 고맙다.
인생에서 필요한 건 다른 무엇보다 따뜻한 말한마디인데 결국 엄마는 오늘 중요한 건 네 마음이 편한 거라는 그 말을 내게 해줬으니까..
사람이 참 이상한게 감잡는 걸로 위로가 되는 게 아니라 내뱉는 그 말한마디가 참 중요하다.
마흔이 넘었다고 그 인생을 스스로 다 잘 책임지는 건 아니겠지만 누구나 나름 노력은 할텐데 중요한 건 그저 믿어주는 거 아닐까..
유감스럽게도 엄마가 지금 나를 믿는 건 아니다. 그저 딸내미가 잘 살기를 바라는 단지 당신의 소망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으로서 그걸로 충분하다..
나도 자신없는데 사실 누구에게 믿음을 구하겠냐
그래도 나름 애쓴다는 걸...
그리고 잘 해내고 싶다는 걸...
남기고 온 뒷 이야기
그 곳에서 도라지꽃이 이쁜 지도 처음 알았다. 일부러 꺾을려고 한 건 아닌데 뿌리를 뽑다보니 뽑힌 꽃들을 잘라 하모니님이 보내주신 꽃병에 꽂아 놓았더니 너무 이쁘다.
저 모자는 땡볕에서 밭을 매는(?) 언니에게 고기공놈이 선물한거다.
나들이를 가면 좋을 모자지만 해를 가리기에도 그만인 멋진 모자다..
너무 오래 비워둔 집이라서 곰팜이가 슬었던 곳을 남친이 저렇게 다 갈았다.
일일히 칠까지 다 해놓으니 집이 새 집같아 기분이 좋더라.
불평만 하면 저렇게 땡볕이 지거나 어쩌거나 일을 해주는 남친이 참 고맙다.
저게 당연하게 아니냐 하는 인간들이 있다면 내가 할 말, 그래서 내 인생이 당신 인생보다 훨씬 행복하다..ㅎㅎ
남친이 아무리 잘 돌봐준다고 약속을 했어도 여기와서 내내 걸리는 건 저 꽃밭이다. 내겐 요즘 내 전부라고 해도 좋을 꽃밭이다.
저게 얼마만큼 변했는 지는 이 전 사진과 비교를 해야 확 다가온다..^^
집 뒤가 바로 산인데(그러니까 뱀도 맘대로 사는..ㅎㅎ) 저런 모양의 꽃봉우리가 한참을 있어 궁금했었다. 알고보니 참나리..
한 두 개가 아니던데 저게 다 피면 정말 볼만하겠다 싶다. 어머님이야 저게 피면 옮겨다 앞에 싶으라시던데 노 땡큐 저렇게 산에 피는 자체로도 고맙다
그 산에는 저렇게 복분자고 마구 열린다. 따고 싶어 열내는 내게 남친은 그런다. 새에게도 남겨주면 안되냐고 저런 것까지 욕심내지 말자고..
저런 것까지 욕심낸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냥 놔두고 싶어진 건 사실이다.
전에도 올렸던 앞진 개 방울이다.
먹을때만 되면 찾아와서 나를 미치게 하는 놈이다. 먹을 게 늘 남아도는 것도 아니고 도둑고양이들에게 줄 먹이들을 저 놈이 정말 다 쳐(!) 먹는데 미워할 수도 없다.
저 놈이 열여섯살이란다. 사료를 먹는 다는 데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맛있는 거 먹을 권리 있잖냐고..ㅜㅜ
세 끼를 해먹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남친이 국이 없어도 아침에 토스트도 잘 먹는 사람이라 편하긴 하다만 내가 또 매까 같은 음식을 먹이지 못하는 성격이다.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부엌에서 이것 저것 만들던 나는 여기와서 몇끼째 라면으로 때우고 있다.
가끔은 이 내가 난지 저 내가 난지 헷갈리고 한다. 내겐 어떤 모습도 스스로에게 자연스러우니 말이다.
창밖으로 이런 모습을 보며 자판을 두드리던 그 여자는..
이제 이런 모습을 보며 앉아 참 좋다란 이야길 연발하고 있다.
가끔 미치도록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런데 나도 나를 잘 모르겠는데 누가 날 이해해주길 바라겠는가
젠장
또 막상 올라오니 머리는 드럽게 복잡하다만
딱 오늘
예상외로 엄마가 나를 전적으로 지원해주고
내 아들과 이혼을 하더라도 죽는 순간까지 너는
내가 마음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시어머니도 있고
정말 이혼해도 생활비지원을 받을 생각이 없는 거냐고
의료보험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걱정하는 남자도 있고
속된 말로 생지랄을 떨어도
당신만한 사람이 없다고
시어머님도 남편도 심지어 내 엄마도
모두 이해하려고 애쓰는
남친이 내 곁에 있어서
나 정말 드럽게 복많은 년이라고
내 인생 드럽게 그지같다고 생각했는데
건방지게도
나처럼 힘들게 애쓰게 사는 인간있으면 나와보라고 외치고 싶었는데
오늘은 그냥
위로가 되는 밤이다
그러니까 그런가보다
한이 많이 쌓였었나보다.
난 누구보다 내 혈육의 인정이, 응원이 필요했나보다
엄마
오늘 정말 사무치게 고마와
엄마가 반대했던 결혼
개판치고 돌아온 게 아니라고 믿어줘서
그리고 남친이랑 잘되라고 빌어줘서
남편도 나도 남친도 다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줘서
엄마가 그랬지
이런 꿈을 꿨었다고
엄마 나 지금 그래
그 남자가 나를 행복하게 해줄 거라고 믿지않아
그도 그러지
행복은 서로 만들어가는 거지 누군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이야
엄마가 한 걱정
그건 그래도 하지마
그 남자가 아무리 화를 내도 소리를 질러도
나는 외롭지 않으니까
그래 엄마
나는 무엇보다 지금 외롭지가 않아
그걸 엄마가 오늘 알아줘서 감동했어...
그런데 엄마
난 지금도 엄마를 용서할 수는 없고
엄마랑 나랑 너무 닮았다는 그 사실이
아직도 너무 버겁다....
2008.07.19. 서울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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