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도쿄에서 어제 밤 늦게 도착을 했고 오늘 드디어 함께 이혼서류를 접수시켰다.
남편과 약속했던 시간이 다가올 수록 답답하고 복잡한 마음을 어쩔 수 없었는데, 밤에 응급실에 실려갔던 것도 그 이유였는데 이렇게 한고비를 넘긴다.
뭐 누군들 그런 생각을 하랴만 남편과 헤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제 정식으로 남남이 되는 절차에 들어섰다.
이런 이혼케이스가 처음이라며 헤매는 직원탓도 있었지만 남들이 보면 기가막혔을 정도로 둘이 창구앞에서 킬킬대며 이건 무슨 이혼서류 접수시키는 게 아니라 어디 이상한 나라에 갈려고 비자신청하는 것 같다는 농담까지 했다.
이혼수속하러 만났어도 만나서 반갑다고 난리고 내가 이사갈 집이며 꽃밭이며, 사진보며 신기해하고 서로의 남자친구 여자친구 안부를 묻는 사람들..
이혼은 확실하게 정을 떼며 숟가락하나라도 더 가질려고 싸워야하건만 어찌 우리부부는 소설처럼 만나서 이혼도 소설처럼 하는 운명인건지..
내가 내 인생에서 만난 가장 아름다운 사람, 가장 영혼이 맑은 사람, 그리고 눈물나게 고마운 그 사람을 나는 이렇게 보낸다.
앞으로 그를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 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만 그래도 내가 돌아온 걸 후회하진 않는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으니까..
신랑보다 더 걸리던 시어머니는 결국 이혼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에 통곡을 하셨더랬다. 무엇보다 나를 다시 만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많이 우셨을거다.
얼마나 살 지 모르지만 남은 인생동안 넌 늘 내 가슴에 있다고 그리고 우린 꼭 다시 만나야한다고 우는 그녀때문에 나도 서럽게 울었다.
지금은 내가 갈 수 없지만 언젠가 네가 나를 간절히 필요로하는 일이 생기면 그땐 내가 꼭 네게 가서 옆에 있어주겠다고, 난 그녀에게 그런 약속을 했다.
삐꺽거리는 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녀야말로 내겐 거의 완벽한 시어머니 그리고 소중한 친구였으니까..
그녀는 이 고비가 지나면 남편과 나도 좋은 친구로 남길 바라고 나 역시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남편의 여자친구가 받아들 일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아버님앞에서 한 약속은 결국 지키지 못했지만 내가 어떤 마음으로 떠나온 지 아실테니 울 아버님도 이해해주시지 않을까
인생도 한바탕 꿈이라는데 그와 내가 나눴던 시간도 그저 꿈이었는지도..
힘든 결정을 내리고 대책없이 돌아온 한국에서 나를 감싸주었던 이 집도 모레면 인연이 끝난다.
이 후진 동네에 황당하게 비싼 월세가 부담스럽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이 집을 선택했던 건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
내가 돌아와 이만큼 잘 버텨낼 수 있었던 건 이 아늑한 공간의 힘이 컸다.
사람도 좋은 인연이 있듯이 공간도 좋은 인연이 있다라는 생각을 더 강하게 하게 만든 집.
어쨌든 나는 모레 이 집의 모든 짐을 싸들고 남자친구가 있는 장성으로 간다.
우연히도 한국에 돌아온 날이 8월 22일인데 8월 21일 정확히 365일을 채우고 서울을 떠난다. 태어나지 않았어도 내 기억속의 고향인 도시, 한국에 산다면 단 한번도 벗어나볼 생각을 못했을 이 도시 서울을 말이다.
블로그 윗글처럼 이 곳에서 시작한 삶도 새로운, 아주 새로운 삶이었는데 더 새로운 삶을 찾아 한걸음을 내딛는다.
남자친구는 참 따뜻하고 편안한 사람이다. 늘 외롭고 막막했더랬는데 신기하리만치 그의 옆에선 외롭지가 않다.
남편과는 단 한번도 소리소리지르며 싸워본 적이 없는데 우린 참 자주도 얼굴을 붉혀가며 싸운다. 그러다 너무 화가나면 당장 서울갈거라고 협박하곤 했는데 이젠 갈 서울집도 편히 머물 친정집도 없으면서 아예 짐까지 다 싸들고 그 곳으로 간다.
앞으로 일이야 누가 장담을 하겠냐만 나는 내가 여태 그랬던 것처럼 내가 할 수 있는 한의 최선을 다하며 내 주어진 상황을 살 것이다.
거기 상황도 여러가지 복잡하고 내가 익숙한 삶이 아니라 걱정도 많이 되지만 내 인생에서 단 한번도 쉽고 간단한 일은 없었다.
집안반대도 심하고 아니 반대가 심했다기보다 개무시를 당하며 한 결정이었는데 정식은 아니었더라도 결국 엄마와 남자친구가 잠깐이나마 만났다.
내가 짐까지 싸들고 남자랑 살러가는 마당에 아무래도 엄마에게 얼굴은 보여야 도리일 듯해 갑작스레 만난거였는데 남자친구는 잽싸게 나가 이발을 하고 엄마를 보자마자 길바닥에서 넙죽 절부터했다.
그래선 아니었겠지만 엄마는 남자친구를 이쁘게 보셨고 우리의 새 삶을 축복해 주셔서 내려가는 마음이 조금은 가볍다.
서른아홉부터 마흔을 심하게 앓던 나는 이렇게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드럽게 센 팔자가 누구탓도 아닌 그저 나란 인간이 가진 성격탓인 걸 인정하고, 성격탓이라기보다 타고난 팔자탓이 더 큰 한 남자를 만나 각자 담고 살아온 상처를 내어놓으며 치유될 수 있으리란 믿음으로 서로를 보듬을 그 삶을 말이다.
엄마가 하나님의 딸이라고 믿었던 나는 이제 분위기상 불교에 입문하게 될거다.
다음 생에선 최소한 이 생보단 덜 상처받고 덜 상처주는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달라는 기도와 오랜기간 내 남자였던 그가 늘 행복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날마다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2008.08.19. 서울에서...사야
내일 고기공놈의 만 서른 파티를 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그 놈을 만 스물이 되기 전에 만나 더블린 저희집에서 파티를 했었지요. 이제 저와 그 놈이 만난 지도 강산이 변한다는 십년이네요. 제 사정상 일주일이 빠릅니다만 축하해주실 분들 혹 촌구석으로 내려가는 사야 얼굴이라도 한번 더 봐야겠다 싶으신 분들 오세요..
제 집에서 해주고 싶었습니다만 역시 사정상 못하고 장소는 제 파티장소랑 동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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