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자연속에 묻혀 생활을 해보니 참 느끼는 것이 많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자연은 아름답지만 자연과 더불어 자연속에 산다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는 걸 길지 않은 시간속에서 절절히 체험하고 있다.
내가 심혈을 기울여 가꿔놓은 꽃밭은 원래 잡초가 무성한 곳이었는데 그래서 그 뿌리들을 캐내고 땅을 다듬느라 엄청 고생한거다. 대충 제거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또 싹을 피우고 나오는 것들이 있던데 그럴땐 또 얼마나 깊은 뿌리가 묻혀있나 가슴이 덜컹 내려앉을 지경이었다.
문제는 정말 거의 다 제거를 했는데도 또 올라오는 싹들. 온 힘을 다해 호미로 내려쳐(?)보면 전 날 파내고 남은 작은 뿌리에서 싹을 피우고 있더라는 것.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기분이 묘하더라. 과장하자면 그 끈질긴 생명력에 경의가 표해지더라는 것.
땅을 파다 그 끔찍한 지렁이들이 나와도 ' 나 니들 건드리려고 한거 아니니까 빨리 그냥 사라져줄래?' 란 마음이 들고..
정말 머리털나고 처음 보는 온갖 벌레들이며 이상하게 싫다란 생각보단 측은지심이 생기더라는 것.
마당이 고르지 못한 관계로 비만 오면 몇 개의 웅덩이가 생긴다.(조금씩 그거 메우느라고도 죽어난다만..ㅜㅜ)
한동안 비가 많이 왔으므로 제일 큰 웅덩이에서 밤마다 개구리들이 뛰어 놀았다. 깊지도 않은 마당웅덩이에서 여러마리가 수영들을 하고 노는 게 재밌어서 저렇게 사진도 찍고 남친이 개구리맘(?)이 되어 장난도 치고 그랬는데 알고봤더니 그게 거기다 알을 까놓은 거였다.
땅이 굳기전에 풀을 뽑으려고 다가갔다가 조물조물 움직이는 까만 떼에 어찌나 놀랬던지. 멍청한 부모만나서 니들이 고생이라고 돌아섰는데 아무래도 맘이 편칠 않아 다음날 숟가락을 들고 구조에(?) 나섰다.
쪼맨한 놈들이 어찌나 빠른지 캡 고생해가며 어찌어찌 대충 다 잡아다 이 수조 저 수조에 넣었놓았더니 저렇게 잘들논다. 쟤들이야 내가 지들을 살려줄려는 지 모르니까 마구 도망들을 치는데 ' 나 너희들 살려줄려고 그러는 거거든? 이왕 알을 깨고 나온 거 개구리로 한번 살아봐야할 거 아니냐?' 란 말이 입에서 절로나오는데 벌이랑 이야기하는 남친이 이해가 가고 남더라..ㅎㅎ
어머님이 사시던 곳에서 거긴 요즘 빈집이나 마찬가지인지라 접시꽃이랑 봉숭아들을 좀 옮겨다 심었다. 몇 일 힘이 없어보여 괜히 잘 자라는 꽃들을 옮겨다 심은 건 아닌가 좀 심란했는데 이젠 자리를 좀 잡아가는 것 같아 다행이다.
깨진 걸 때웠다고 해 반값에 얻은 항아리에 연꽃들을 몇 옮겨심었더니 또 이쁘게 꽃이 피었다.
지난 번에는 하얀꽃이더니 이번엔 분홍색이이다. 아침에 맺힌 봉우리가 저렇게 열리고 나면 절로 탄성이 나온다.
이 이쁜 꽃은 하와이무궁화란다. 역시 꽃이 필때마다 넘 기분이 좋은데 자세히 관찰을 해보니 이 꽃은 피었다 꽃잎이 떨어지며 추하게 지는게 아니라 다시 꽃잎을 잘 말았다 그 봉우리가 떨어진다. 다른 꽃들도 그런 것이 있겠지만 어쨌든 내겐 첫 경험이다보니 신기하기 이를데없다.
내 인생도 저 꽃들처럼 이쁘게 말아 떨어질 수 있다면 좋겠단 생각.
어젠 끔찍한 일도 있었다. 날씨가 안 좋아 빨래말리기가 힘들었던 터라 방에 빨래를 말리려고 불을 때러 아궁이에 들어갔던 남친이 나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부르길래 나가보니 거기 있던 뱀을 잡아다 개울에 던져놓은 거다.
그 위풍도 당당한 살모사다. 저게 불땔려는데 머리 바로 옆에 있었다니 십년감수란 말이 맞겠다. 자꾸 개울을 타고 올라오려는 것 같아 잡아야하나 말아야하나 둘이 마구 고민을 하고 있는데 나타나신 어머님과 큰 스님.
깜짝 놀래시며 무슨 말을 하는거냐고 절대 죽이면 안된단다. 특히나 큰 스님 아주 여유로운 목소리로' 그냥 함께 산다고 생각해라'. 그저 조심하고 또 멀리가라, 이러면 뱀도 알아듣는다나..^^
안그래도 나도 요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제 하루종일 그 말씀이 화두처럼 머리에 남더라..
자연에 산다는 건 결코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
저런 뱀도 나타날 수 있다는 걸 알았더니 요즘 뒷마당에서 상주하다시피하는 두꺼비놈의 안위도 걱정되고 인간뿐 아니라 만물에게 생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 곳에 가을바람님이 다녀가셨다. 뭘 그리 바리바리 싸오셨는지 거기다 남친을 너무 좋게 보시고 좋은 덕담도 많이 해주시고 가셨다. 갈 때는 내가 모셔다 드렸는데 먼 길은 아니라도 산길이라 사십분은 잡아야하는 것 같다. 이쪽에서 가 본적은 있어도 그 쪽에서 온 건 처음인데 내장산 올라오는 산길 커브 정말 죽이더라..ㅎㅎ
가을바람님이 가져다주신 너무나 마음에 드는 그릇으로 차린 우리의 소박한 밥상. 원래 더 이쁜(?) 셋팅을 했었는데 그 날은 다 먹은 다음에 사진찍을 생각이 났다..^^;;; 상추 오이 고추는 다 어머님 밭에서 난거고 돋나물은 내가 언덕에서 뜯어 무친거다..ㅎㅎ
지난 번에 다녀가신 하모니님도 맛있는 커피콩이며 택배를 잔뜩 보내주셨는데 몽님이 생일선물로 씨디를 보내신다더니 여긴 커피구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며 커피를 가득 넣어주셨다.
여기서도 아침마다 원두를 갈아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행복.
이러니 저러니해도 내가 자연속에서 잘 버티는 건 이렇게 신경을 써주는 지인들. 사람의 정때문일거다.
오늘아침에도 무소카놈이 아주 거기서 사는 거냐고 생일선물이라도 보낼테니 주소찍어보내라고 전화를 해왔다. 만나기로 해놓고 약속도 취소하고 그냥 내려와 버렸는데 고맙다.
비많이 오던 날의 사야다.
여러상황상 마음이 전혀 복잡하지 않은 건 아니다만 그래도 이렇게 이 곳에서의 삶이 흐르고 있다...
햇살이 뜨겁지만 나무가지에서 너무나 찬란하게 빛나고 하늘은 푸른 물이라도 떨어질듯 맑은 그런 날이다.
2008.07.08. 장성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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