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망 좋은 방

이런 일 저런 일

史野 2008. 4. 25.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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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정말 황당한 날이었다

 

황당하다, 는 표현을 너무 자주 쓰는 것 같아 내 표현력에 스스로 실망스럽다만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어제 면허 최종시험을 보고 오후에 면허증까지 찾아와 피곤했던 날

 

오늘은 늦잠도 자고 학원을 안 가도 되니 편안한 기분으로 하루를 맞이 했더랬다.

 

이번 주는 여러 일로 달리기도 못했기에 오랫만에 달리기도 하고 시험턱으로 올케언니에게 맛있는 냉면이라도 살까하고(달리기코스 중간에 맛있는 냉면집이 있다) 전화를 했더니 언니는 부재중..

 

그래 그냥 집안 정리나 하고 화분들이나 돌보며 음악을 듣고 있자니 울리는 전화

 

십 년동안 연락이 끊겼다 찾았다는 그 친구다.

 

내 표현대로 하자면 역시 백만 년만의 통화

 

내 불로그에서 면허이야기를 읽었다며 그런 저런 이야기를 오랫만에 마구 하고 있는데 갑자기 들리는 '악'하는 비명소리

 

그리곤 말이 없는 친구, 또 주변에서 들리는 어수선한 소리

 

아무리 여보세요를 외쳐도 대답은 없고..ㅜㅜ

 

119을 불러야 한다느니 한참을 떠드는 소리가 들리더니 친구 목소리가 들리며 학원에 전화를 해야 한다  어쩌고 하다가 전화마저 끊기더라.

 

결론은 내 친구에게 사고가 났다는 이야긴인데 어디서 전화를 한건지 무슨 일이 있었던건 지 황당하고 답답하고 한마디로 미치고 팔짝 뛰겠더라는 거지

 

놀라서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당장 119에 전화를 하고 휴대폰 위치추적을 해보라느니 어쩌고 더 놀라는 소리.,.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고 그 친구를 함께 아는 친구에게 전화를 해보며 오후내내 초긴장상태로 보냈다

(평소 잘 안울리는 전화도 그럴 땐 왜 그렇게 자주 울리는 지, 깜짝 놀래며 전화 받기를 몇 번..정말 삶이 영화라니까..ㅜㅜ)

 

그냥 친구가 전화해서 교통사고 당했다고 이야기해도 놀랄 판에 나랑 통화하다 사고를 당했고 그걸 떨어졌는지 버려졌는지 하는 휴대폰으로 생중계을 받으려니 영화가 따로 없더라구

 

다섯 시간인지 여섯 시간인지를 마음 졸이다가 알게 된 소식은 친구가 직장앞에서 건널목을 건너다 어떤 오토바이에 치여 입원했다는 것.

 

다행히 현장중계로 의식을 잃지는 않았다는 걸 들었긴 해도 이마를 많이 꿰매고 병원에 누워있다는 사실.

 

내 탓은 아니다만 나랑 전화하다 사고가 났으니 순간은 별 생각이 다 들었다지.

 

생명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지만 교통사고 후유증이야 누가 알겠는가 친구가 빨리 회복하고 별일 없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리고 내가 면허를 따는 일은 시댁에도 중요한(?) 일

 

어차피 신랑에겐 면허를 따면 중고차를 사겠다고 몇 일 전 돈까지 받아놨으니 면허 결국 땄다는 전화를 했다

 

너무나 기뻐하는 이 남자. 이 남자에게도 중요한 결정이 내릴 날이 오늘 이었기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여자친구가 집에 있다네

( 중요한 결정도 그동안 일이 너무나 많았으니 자세한 내용은 빼고 나도 알고 있는 이 여자친구 문제도 말할려면 기니 빼자..ㅎㅎ)

 

통화가 길지도 않았건만 여자친구가 집에 있었단 이야길 들으니 어찌나 미안하던지.

 

방해해서 미안하다고 잽싸게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당근 시어머니랑 통화

 

나도 늦었지만 나보다 두 살이나 많은 나이에 면허를 따신 시어머니는 내가 면허 준비를 한다는 말에 한두 번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셨다지..ㅎㅎ

 

이런 저런 이야길 하다 울 어머니 또 당연히 궁금해하시는 내가 내 남자랑 연락을 하는 가의 질문

 

면허 땄다고 방금 통화했다 어쩌며 내 기분이 어땠는 지 당근 말씀드렸다지

 

중요한 건 그러면서 내가 한 말이다

 

' 그런데 왜 나는 질투같은 감정은 전혀 안 생기고 방해하는 기분이 들어 미안했을까? 너는 이런 내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니?'

 

신랑은 아무리 우리가 끝났어도 내가 남자친구를 만난다면 우선 질투의 감정이 생긴다던데 나는 왜 그런 감정이 생기질 않는 걸까

 

시어머니랑 한참을 이야기하다 둘다 모르겠다로 결론 지었다.

 

물론 이런 과정을 거치며 우리 둘다 행복해지고 좋은 친구로 남으면 그게 바람직하지 않겠냐는 말도 덧붙이면서 말이다.

 

나는 이런 저런 걸 떠나서 신랑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그 남자가 불행하다면 내가 불행할 것도 확실하다

 

그런데 나는 왜 그 남자에게 일말의 질투심도 남아있지 않은 걸까. 그러면서도 왜 나는 그 남자만 생각하면 우는 걸까

 

 

그냥 그 남자가 나없이도 행복해지길 간절히 바란다.

 

14년이란 긴 세월동안 내 남자였으니까. 이 곳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그 남자 옆을 끝까지 지키고 싶었으니까..

 

그래 시어머님 말대로

 

지금은 내가 이룬 성과 (면허따위가 무슨 성과냐고 내게 묻지마라 내겐 이 면허가 내 삶을 증명하는 내 삶의 한 획이다..^^)만 생각하며 다른 생각은 말자

 

꼭 그녀의 말이 아니더라도 요즘 내가 생각하는 건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는 거다

 

거창하게도, 살아보니 오늘일만 걱정하기에도 삶은 바쁘고 힘들더라

 

왠수같은 그녀는 오늘 전화를 끊기 마지막까지 나를 한 번 더 보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더 왠수같은 나는 그녀에게 한번 만 더 보겠냐고 내가 니 차도 몰아보고 같이 앉아 포도주도 마실 거라 말했다.

 

그래 나는 어쨌든 완전 사기는 못치는 인간이니까

 

니가 한국에 좀 오라고 그럼 내가 모는 차로 여행도 하고 얼마나 좋겠냐는 말도 당근 했다

 

 

어쨌든 돌아온 지 팔개월

 

내 이 곳에서의 삶도, 신랑이나 시어머니랑의 통화내용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세월이 약이라던가

 

세상에 죽어도 안되는 일,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란 건 없다는 걸

 

그리고 쉽게 보이는 일이 결코 쉬운게 아니라는 걸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일을 쉽게 이야기할 수 없다는 걸

 

나는 아주 천천히, 아주 비싼 값을 치르며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곳에 그냥 남았더라면, 생각하지 않는 건

 

내가 내 삶에 가진 자존심

 

다르게 말해

 

내 뜻대로 살고 싶다는

 

나름의 의지다

 

힘, 많이 든다

 

부정하지 않는다

 

그래도 내게 주어진

 

아니 내가 살아보고 싶은 내 삶

 

해보고 싶다

 

아니

 

잘, 아주 잘 해내고 싶다....

 

 

 

 

 

2008.04.24 서울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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