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지 않은 인간이 어디 있겠냐만 나는 특히 어려서부터 외로움을 탔더랬다. 여러번 언급했듯이 가장 기본이 되는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했으므로 마음붙일 곳을 찾지 못했다.
초등학교때 처음으로 죽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이 들었는 지 모르겠지만 동맥을 그을까말까를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고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을 했던 기억이다.
모든 걸 정리하고 이사를 한 후 아빠마저 돌아가신 어느 날 아침 마당에서 세수를 하려는데 갑자기 세수대야안으로 비친 하늘. 그 순간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극도로 공포스러웠었다. 그때 내겐 이미 아무 희망도 삶의 의지도 남아있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나는 늘 웃는 아이 세상에 고민은 하나도 없어보이는 아이 그리고 오락부장같은 걸 할 수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삶이 의미가 없다고 느껴버린 순간 오히려 죽음에 대한 공포는 더 심해졌고 나는 그 공포로 부터 도망칠 뭔가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래서 교회에 올인했고 끊임없이 누군가를 좋아했고 아무 버스나 잡아타고 떠도는 삶이 시작되었다.
내가 결혼을 해서 독일로 떠났던 것도 일종의 도피였다. 나는 당시 한국에서의 삶을 견뎌낼 힘이 없었고 탈출구가 필요했으니까.
세상에 두려울 것같은 건 없었다. 당시보다 못한 삶이 있으리라 상상할 수 없었던 관계로...
그렇게 십사년을 버티다 더이상 버틸 힘이 남아있지 않아 결국은 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사람들은 잔인하게도 너무나 쉽게 돌아가라고 말한다.
안다 한국에서의 삶은 불행해질 가능성이 있지만 돌아가게되면 지독히 외로울 지언정 불행하진 않으리란 것을...
어쨌든 그 곳엔 법적인 마누라가 연애를 시작했다는데도 '네 새로운 사랑을 응원하고 네가 사랑에 빠졌더라도 난 언제나 너를 사랑한다' 라고 메일을 보내는 남편이, 전화통을 붙들고 내가 뭘 어떻게 해야 모르겠다며 대성통곡을 하는 며느리에게 함께 울어주며 '무엇보다 너를 먼저 생각하라'고 '너희에게 아무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다' 는 시어머니가 계시니까.
자긴 빼고 당신 자신만을 생각하라고 당신이 남편에게 돌아간다면 무조건 보내겠다고 가장 중요한 건 당신의 행복이라고 말하는 그 사람도 있으니 나는 드럽게 운이 좋은 여자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말한다. 나는 배려가 많은 인간이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고.. 그게 내 행동에 늘 면죄부가 되어주었지만 그건 내가 사랑받지 못했기때문이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 세계에서 영원히 혼자일 지 모른다는 공포가 나를 남들을 배려하는 인간으로 만들었다. 배려가 많다는 말은 사실 우유부단하단 말하고도 통한다. 배려한답시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타인에게 상처를 남기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게 큰 상처로 남는다.
연애를 시작한 이후부터 혼자 남겨진 남편에대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내가 떠난 후 남편은 자기인생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는데 요즘은 내가 내 인생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고민하고 있다.
엄마를 탓하지 않는다. 아니 엄마를 용서했다. 이건 그냥 내게 주어진 내 삶의 몫이고 매번 선택을 한 건 나지 엄마가 아니니까.
피터지게 살았고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서야 내가 삶에대해 참 오만한데다 비겁하기까지 했다는 걸 알겠다. 나이가 들어간 다는 건 결국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나약한 인간인지를 확인해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결국 인간은 자신이 자란 환경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모르게 하는 행동들이 어린시절 트라우마의 영향을 받는 다는 것을 마흔이 넘은 이제서야 절절히 느끼고 있다.
그런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건 생각보다 훨씬 고통스럽다...
2008.02.03. 서울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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