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망 좋은 방

또 눈이 내린다

史野 2008. 1. 22. 15:37

 (이 사진은 오늘 찍은 건 아니다만 전망좋은 방의 눈오는 날은 대충 이 분위기다..^^)

 

썼듯이 올해들어 계속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다 오늘 오랫만에 컴앞에 조용히 앉아 창밖을 보는 그런 느낌이다.

 

아침에 달리기는 상상도 못하고 맛사지에 갔다가 산책이라도 할 생각이었는데 눈발이 의외로 얼굴로 들이닥쳐서 걷기엔 무지 불편한 날이라 그냥 포도주나 사들고 들어왔다.

 

이런 날 사람들의 로망이라면 창이 큰 커피�에 앉아 창밖을 하염없이 내다보는 걸텐데 내겐 그거야말로 집이 최고니 말이다.

 

사람들은 혼자 있는 나를 걱정한다만 워낙 오랫동안 혼자 시간을 보냈던 나는 이렇게 집에 가만히 있는 날, 때론 좋은 사람들과 수다를 떠는 것보다도 더 행복하다.

 

오늘은 내 인생 최초로 백팔배를 한 날.

 

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지만 마침 백팔단주도 선물받은 겸 오늘 시작했다.

 

역시 백팔배를 했었다는 소장님은 내가 한큐에 백팔배를 했다니 믿지 않던데 꾸준히 달리기를 했기때문인지 나중에 구슬땀은 흘렸을지언정 다리가 아프거나 하진 않았다.

 

꾸준히 할 생각도 꾸준히 할 자신도 없지만 내가 불자가 되고 아니고를 떠나서 언젠가 꼭 삼천배를 한 번 해보고 싶다.

 

달리기도 그렇긴 하지만 단순반복적인 어떤 행위가 인간의 마음을 정화시키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하니까..

 

삼개월이 넘게 일주일에 두 번 나를 만나는 소장님은 내가 늘 생기가 있어서 참 보기 좋단다. 거기다 보통 여자들이 가진 화병이 없다나 ( 가슴을 눌러보는데 화병이 있는 여자들은 거기가 아프단다)

 

나야 열을 받으면 술마시고 그 상대에게 개판을 치는데 화병 생길 일이 당연히 없지, 하며 속으로 웃었다.

 

그렇담 또 내게서 상처받은 영혼은 얼마나 많은 걸까라는 생각도 들었다만.

 

물론 내게도 상처가 되는 일들이 많다. 사람들은 남에대해 어쩌면 그렇게 쉽게 말을 하는지..

 

인간이란 어쩌면 그렇게 이기적인지를 딱 자기폭이상의 것을 볼 수 없다는 걸 절절히 느끼고 있다.

 

한 인간이 하나의 우주일진데 누가 감히 이렇고 저렇고 남의 인생에 대해 떠들수 있단 말인가. 보여지는 것만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닐것이다.

 

 

요즘 나는 연애를 한다.

 

상대는 내 지금 상태가 카오스고 내 감정 역시 불안한 상태라면서 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이 곳에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길 원하지 않는다만 내게 이 블로그는 순간순간의 내 감정을 털어놓는 말하자면 일기장이기도 한 곳이라 가슴에 그냥 담아두질 못하겠다.

 

이 사랑은 대형교통사고처럼 내게로 왔다. (내 잘난 큰 언니는 원래 중년(!)의 사랑이 그렇다더라만 -_-) 어떤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내 뜻과 아무상관없이 돌아가는 느낌이다.

 

안다, 나는 피가 뜨거운 여자고 영혼이 외로운 여자라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사랑해야하는 인간인 것을..

 

불혹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늘 불안해보이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무공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그래서 내 더 잘난 작은 언니는 오개월이 되도록 안부전화 한 번을 안하면서도 조카딸내미붙잡고 무진장 걱정이나 하고 앉아계신다더라 -_-)

 

그는 자신의 사랑을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나는 그의 지적대로 카오스에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내가 한국에 돌아올때 이런 사태는 꿈에서라도 계산에 넣지 않았던 관계로 그리도 쉽게 내 남자가 불행해진다면 나는 돌아갈 거라는 말을 할 수 있었는 지도 모른다. (물론 내 남자는 지난 번 한국왔을 때 내가 동정심으로 돌아오는 건 바라지 않는다는 말을 확실히 했었다만)

 

어쨌든 나는 함께 있으면 너무나 편안한 한 남자를 만났고 그와 함께라면 그저 남들처럼 아이낳고 지지고 볶으며 평범하게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다.

 

꽤 많은 사람들은 나를 보고 그런 말을 한다. 너는 인생을 모른다고, 온실속에서 자란 화초라고,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니 돈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런 것들이 인간을 얼마나 피폐하게 하는 지 모른다고 말이다.

 

심지어 누군가는 내가 남편과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배가 불렀다. 고 이야기했단다.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꼭 인간들이 똑같은 틀과 생각속에 살며 평가받아야하는 건가하는 의문은 든다.

 

그래 나는 실수투성이의 인간이고 사람들을 너무 쉽게 믿고 내게 손을 내미는 사람들을 거절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인간이다만 그렇게 사는 것이 꼭 나쁜 걸까.

 

이런 생각조차도 내가 철이 없고 인생을 몰라서 그러는 걸까.

 

이곳 블로그에서 내가 당당히 경사모삼인방이라고 떠들던 세 명중에 고기공놈을 뺀 두 명을 지금 만나지 않는다.

 

그녀에게선 절망감을 그놈에게선 배신감을 느꼈다.

 

그녀는 16년 그놈은 22년인데도 말이다.

 

그게 누구 한쪽의 잘못은 아닐것이다. 거기다 내가 떠나 있던 그러니까 옆에서 만져지던 인물이 아닌 그저 14년동안 그리움속에서 부풀려지던 내 모습이 큰 작용을 했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긴 세월이 흘렀는데도 인간에 대해 이렇게 결론지을 수 밖에 없다면 참 슬픈 일이 아닐까

 

하긴 나를 낳아주고 사십년을 아는 내 엄마하고도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인간인 내가 감히 뭘 안다고 떠들 수 있겠냐만..

 

 

각설하고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고 나는 지금 연애를 한다.

 

사십년만에 처음으로 내 영혼의 무게보다 더 영혼이 무거운 남자를 만나

 

내 영혼의 무게쯤은 아무것도 아닐 지도 모른다는,

 

그 사람에게 기대면 내가 간절히 갈구하던 그 평안함이 내게 올지도 모른다는

 

그런 위험한 기대감을 품고서..

 

홀로서기를 꿈꾸며 돌아온 이 땅에서

 

나는 지금 연애를 하고 있다...

 

 

 

 

2008.01.22. 서울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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