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망 좋은 방

친구 그리고 기억

史野 2007. 9. 23. 14:50

 

오늘 또 한 친구와 통화를 했다. 그 친구와는 상해 첫 해까지 만났으니까 한 육년만인가보다.

 

이 친구와는 고등학교 동창이지만 학교때는 별로 친하지 않았다. 그 친구는 앞번호였고 나는 중간보다 뒷 번호였으니 말을 해 볼 기회도 없었고 말이다. 키가 엄청나게 큰 그녀와 고기공놈은 치사하게(!) 다 도토리 키재기 아니냐며 비웃던데 육십명정도 되는 반에서 내 번호는 늘 사십번 정도였으니 나도 당시엔 평균치보단 큰 키였다고!!!! ㅎㅎㅎ

 

그지같은 학교를 다닌 관계로 날이면 날마다 시험을 보았는데 그때는 앉는 순서가 달라졌다. 말하자면 평소짝이랑 시험짝이랑이 있었다고 할까. 그 시험짝은 앞 번호였는데 어느 날 시험짝이 내게 편지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그게 그 친구가 내게 전해주라는 거였다는 데 자기가 계속 까먹고 있었다나. 그러니 당근 그 친구는 왜 내게서 전혀 반응이 없을까를 의아해하더라는 거다. 황당하게도 이 시험짝은 진작에 전해줬다고 거짓말을 했다니..^^;;;

 

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까지 하니 굳이 말할 필요는 없는거였고 어쨌든 그 편지지에는 엽서 한 장과 습자지 비슷한 멋진 종이에 그 긴 시, 구상의 까마귀가 단정하면서도 개성있는 필체로 적혀있었다.

 

이러니 내가 어찌 그 멋진 애랑 친구가 안될 수 있었겠는가..ㅎㅎ

 

썼다시피 나는 고3때 툭하면 학교를 빠지거나 보충수업에서 제외되었던 인간인 관계로 그냥 그렇게 학교를 졸업했고 그 친구와 친해진 건 대학에 가서 부터다.

 

그때야 메일이 있길 했나 휴대폰이 있길했나 대학생들의 연락수단은 주로 학보였다. 거기다 그 친구는 그 대학 학보사 기자가 된 관계로 더 흥미진진하기도 했다.

 

역시 썼지만 내 문제로 헤매느라 나는 운동권이 아니었지만 친구놈하고도 마찬가지였던 것처럼 그 친구와도 할 이야기는 무궁무진했다. 그 친구는 앗쌀하고 똑똑했고 나야 연애나 하고 술이나 퍼마셨더라도 말이다..ㅎㅎ

 

그 친구는 출판사에 취직을 했기에 책을 좋아하는 그녀등등까지 함께 모이면 그녀는 이런 이야기를 하며 살고 싶다며 황홀(?)해 하기도 했다.(뭐 지금의 알라딘이라고 보면 된다..ㅎㅎ)

 

오늘 친구랑 통화를 하고 났더니 친구에게 어려운 일도 생긴데다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에 어찌 이리 연락을 하지 않고 살았던 가 싶고 또 주마등처럼 많은 기억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정말 인간의 뇌는 어떤 구조인지 세세한 것들 까지 어떤 계기로 줄줄이 사탕으로 엮어지는 데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이 친구와 만나고 헤어져 들어오다가 나는 여권이 든 가방을 잃어버렸고 (그러니까 그 친구에게 새로받은 연락처까지) 여러 복잡한 일들이 겹쳐 그냥 연락없이 지냈던 거였는데..

 

내 삶이야 늘 드라마틱하긴 하지만 (고기공놈은 드라마틱하단 말로도 모자란다고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야한다더만..ㅎㅎ) 이 친구결혼식도 그랬다.

 

당시는 더블린이였는데 결혼을 한다고 친구가 전화를 했다. 그게 마침 내가 이미 비행기표를 사놓은 후 그것도 그 친구 결혼식날 아침에 서울도착하는 표.

 

일부러 친구결혼식까지 나오기엔 너무 멀기도 하지만 당시 우리 경제력으로는 힘든 일이었는데 어찌나 신기하던지..그래 아침에 도착해서 점심에 결혼식에 참석했다지..

 

이건 내가 와서 너무 좋다는 그 친구때도 그랬다. 결혼하고 나서 일년만에 나온다는 건 상상도 못했더랬는데 어찌 세금이 왕창 돌아오는 바람에 신나서 한국에 왔더니 그 친구가 그 사이 결혼했다..내 친구중 최고의 미인인데 웨딩드레스를 입어 더 아름다운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던 건 진짜 행운이었다지..ㅎㅎ

 

물론 늘 운이 좋았던 건 아니다. 역시 찾아야할 친구 하나는 어느 날 한국에 왔다가 전화를 해서 친구라며 바꿔달라니까 이 어머니가 무슨 친구냐며 화를 내시는 거다. 이 역시 드라마틱한 걸로도 모자라는 사연인데 바로 그 날 그 친구가 결혼식을 하고 신혼여행을 떠났다나.

 

이러니 그런 날 전화해서 친구라며 바꿔달라고 하니 얘네 엄마가 얼마나 기가막히셨겠는가. 거기다 그 친구는 장애인하고 결혼을 해서 절둑거리며 걸어들어오는 사위를 보며 안그래도 속이 말이 아니셨을 그런 날에 말이다..-_-

 

어쨌든 어제는 상해에서 친하게 지내던 놈하고도 통화를 했다. 나이들어 만난 동갑친구인데 그 나이에 만나 서로 말을 놓다보니(이게 어학원에서 만났기에 가능했겠지만) 금방 친해졌다. 그래 같이 술도 많이 마시고 춤도 추러다니고 그랬기에 가끔씩 안부가 궁금한 친구.

 

이 놈이랑 나랑은 엇갈리는 인연인데 이년전 상해갔을 때 그 놈은 마침 서울에 나와있었고 이번엔 또 추석이라 나왔을려나 해서 메일을 보냈더니만 내가 왔던 이주동안 서울에 있다가 상해들어간 지 이제 이주란다..-_-

 

진작에 연락을 했으면 술이라도 마셨을 거 아니냐고 구박하던데 내가 지가 한국에 있는 지 아닌 지 알게 뭐냐고??? ㅎㅎ

 

평소같으면 그래 그럼 다음 기회에 어쩌고 하고 말았을 인연이지만 이번엔 다르다보니 걱정이 되었는 지 당장 전화가 왔다.

 

이름을 듣자마자 내가 한 말은 ' 야 너 상해라며 왜 전화는 하고 난리냐?' -_-  누가 내 지인 아니랄까봐 역시나 쿨한 이 놈은 ' 상해는 전화가 없냐?' ㅎㅎㅎ

 

상해 한 번 오라길래 비행기 타기 싫다고 요즘 내가 하는 같은 말을 반복했더니 역시나 또 ' 배 타고 오면 되지' ㅎㅎ

 

참 그 이야기하니까 생각나는데 고기공놈이 언제 더블린 갈 생각이 없냐길래 또 그 이야길 했더니 이 치사한 놈 그럼 십년 후에 같이 가요 하는 게 아니라 '나 혼자 다녀와야겠구나' ^^;;;

 

나는 어찌 그렇게 늘 특이한 인간들만 아는 지 이 놈은 여전히 솔로라고 하고 지난 번에 전화했다는 그 동생놈하고는 같은 상해에 살면서 전혀 안 만나고 산단다..그 동생놈하고 처음 알게 되어 친해진 건 북경여행가서지만 그래도 결국은 이 친구놈 역할이 컸는데 말이다..-_-

 

각설하고 오년만에 하는 통화인데도 어찌나 자연스럽던지 또 그 놈이랑 한참 수다를 떨었더니 상해의 기억이  밀려왔다 밀려간다.(울 신랑 지금 상해있다..-_-). 고기공놈 상해왔을 때는 그 놈 여자친구까지 넷이 만나서 아주 쑈를 했었고 가시님이 상해왔을 때는 열흘을 있었는데 가시님을 또 만난 이 놈 왈 ' 아니 아직도 안 갔어요? ' ㅎㅎ

 

어쨌든 상해 어학원에서 만났던 또 다른 애는 내가 하와이 있을 때 이메일 청첩장을 보냈는데 그게 마침 9월 1일이었다. 내가 팔월말에 한국에 나갈 생각이었으니까 역시나 어찌나 신기하던지.

 

그래 통화를 하고 꼭 가겠다고 했는데 문제는 생각해보니 남편이랑 헤어진다고 온 주제에 새출발하는 커플에게 가는 게 갑자기 미안하더라는 거다. 그래 안가고 메일만 보냈더니 오늘에서야 읽고는 직접 축하받고 싶었다고 하니 더 미안하다..-_-

 

이 귀여운 놈은 메일을 보내면 언니도 아니고 언니님이다. 그래 내가 얌마 내 닉이 언니냐 언니면 언니지 언니님은 뭐냐? ㅎㅎ 청첩장에 있는 전화번호를 가지고 전화를 했는데 목소리를 금방 알아들어 놀랐다니 ' 어떻게 잊어요? ' 하는데 어찌나 고맙던지.

 

아 정말 한국에 돌아오니 갑자기 인생이 달라지고 있다. 어제 군대간 조카놈이 전화를 해서는 고모 행복하면 된거죠. 하던데 그래 행복하면 되지.

 

공중전화카드가 안되길래 콜렉트콜로 걸었다던데 받자마자 끊은 나. 다시 걸어 어떻게 받자마자 끊냐길래 이상한 전화인줄 알았다고 고모가 승질이 좀 드럽잖니 미안하다 그랬다..ㅎㅎ

 

나보다 18살이나 어리건만 장남이어서 그런지 존경스런 인간이다.(이 놈 이야기는 언제 풀어야한다..^^) 역시나 한참 수다를 떨다 끊었는데 아 인생 드럽게 아름답다 싶더라고..^^

 

어제 저녁엔 콘트라베이스 한다는 그 친구가 미역찾으러 왔다가 이 근처사는 후배하나를 불렀다길래 모르는 사람이니 집으로 오라고 하긴 그렇고 그 파티장소에서 또 술을 마시면서 새로운 파티 가능성을 주인장과 타진했다. 시월말까지는 야외가 가능할 거 같다니 정말 날짜를 함 뽑아봐야겠다.

 

지난 번에 다들 좋았다고 하며 또 오고싶어한다니까 아저씨는 워낙 멋지게 파티를 하셨기에 그렇죠. 하고 아줌마는 우리의 모토가 손님들을 최대한 편안하게 모시는 거라 그렇다고 하시더라..ㅎㅎ

 

오늘은 큰 언니 딸내미 생일이다. 그 인간도 나랑 사연(?)이 많은 인간인지라 대학1학년 첫 생일을 우리집에서 밥먹기로 했다. 작은 놈은 시험이라 바쁘다고 하니 어찌보면 다행이다. 우리 집 의자며 모든 그릇등이 딱 네개다..ㅎㅎ 

 

지난 번 도쿄에서 잠시 통화를 하다가 '얌마 니가 대학에 갔는 데 이모가 맥주라도 한 잔 사주면서 연애상담도 해주고 해야하는데 미안하다' 했더랬는데 드디어 기회가 왔다.

 

이모도 아직 뚫지않은 귀도 뚫었다길래 어제 온 친구에게 부탁해서 귀걸이도 커다란 걸로 왕창 얻어다 놨다..^^ (나도 귀를 뚫겠다니 친구놈왈 ' 왜 신경통 예방하게? -_-)

 

너 일요일날 생일이잖아 했더니 이모 기억해줘서 고마와요 하던데 얌마 니 생일을 내가 어떻게 잊니? 그저 아는 척 할 기회가 없었다..ㅎㅎ

 

내가 독일가자마자 부터 만나 우리부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친구는 어제 내가 기분나쁘게 듣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우리부부는 절대 못 헤어지고 내가 돌아갈 걸 확신까지 한다던데 그래 앞일이야 누가 알겠냐. 나도 장담은 못하겠다만 지금 이 순간은 드럽게 행복하다고..

 

 

 

2007.9.23 서울에서..사야

 

 

30225

 

아 또 음악�이 에러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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