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전날 그렇게나 술을 마셨는데도 시차때문인지 아님 비때문인지 잠을 설치다시피하며 새벽에 깼다. 빗소리에 귀기울이다가 우산을 들고 다시 커피를 사러 나갔다. 그러니까 8월 8일
금방 바지가랑이가 젖도록 쏟아지던 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틀째 새벽에 커피를 사러 나가서인지 또 갑자기 이 도시가 친근하게 느껴지던 아침. 그 새벽(그래봤자 여섯시 좀 넘어서지만)에도 일하러 가느라 택시에 내려 혹은 걷다가 스타벅스에 들려 커피를 사는 사람들.
그래 대도시의 아침은 늘 그렇지..
내가 그 이른 아침에 굳이 커피를 사러 나가는 건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마시는 습관때문이기도 하지만 방에서는 못피는 담배를 피는 게 목적..ㅎㅎ
커피만 샀겠냐 버터크로상도 사서 간단한 아침으로 때우고 비도 왔길래 나름 따뜻하게(?) 입고 나선 길. 전날 강세님께도 말씀드렸지만 미술관은 고민을 많이 했다. 나야 그림보는 걸 좋아하고 뉴욕이 유명하긴 하지만 너무나 짧은 일정. 그림이야 가끔씩이나마 나를 보러 오지만 도시가 나를 보러오는 일이야 없으니 그림보단 도시를 더 보는 게 낫다는 생각.
그래도 구겐하임은 한 번 봐야하지 않겠냐며 센트랄파크를 다시 걷는데..그래 이런 거였다. 시간이 좀 늦기도 했고 날씨도 비오고나서 너무 청명하다보니 분위기가 너무나 다른 거다. 아 그래 이게 그 유명한 센트랄파크구나..ㅎㅎ
문제는 비는 언제 왔나 싶게 어찌나 덥던지..
아 드디어 말로만 듣던 이 대단한 건축물. 저 달팽이 같은 길을 따라 올라가며 감상하는 건데 중간에 창이 나있어서 층마다 빛이 다른데다 바벨탑을 오르는 듯한 그런 신비한 분위기가 풍긴다. 윗층에서 아랫층을 건네다보면 내가 봤던 미술작품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감춘듯 드러나는 듯, 그러면서도 뭔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듯한 미술관.
아침에 내린 비로 지하철이 침수되어 직원들이 다 출근을 못한 관계로 다 보여줄 수 없다며 티켓을 깎아줬는데 천천히 돌다보니 다 열렸다지..ㅎㅎ
둘다 설명오디오를 하나씩 끼고 감상을 하는데 우리야 뭐 늘 함께 감상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평소 하듯이 '넌 이걸 어떻게 생각하니?' ' 뭘 어떻게 생각해? 쓰레기라고 생각하지' ' 그런데 이런게 어떻게 이때까지 먹혀들어갔을까?'' 아 뭐 이 남자가 비평가랑 친했다보지' 이런게 우리부부의 현대미술감상 수준이다..ㅎㅎ
멍청하게도 미술관은 추우니까 가져간 가디건이며 카메라까지 자발적으로 다 맡기고 올라가선 추위에도 떨고 사진도 거의 못 찍었다만( 사진찍지 말라고 되어있는데 다 찍고 아무도 컨트롤 안하더라) 그래도 아무것도 신경 안쓰고 그냥 저 건물속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건 너무나 좋았다.
그리고 나온 뉴욕거리는 정말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보통은 잠겨있는 내가 좋아하는 건물의 중간공간.
근사한 래스토랑에서 뉴욕의 물가를 실감하며 닭모이만큼의 식사를 한 후 도저히 걸을 수 없을만큼 더워서 다시 센트럴파크로..
다람쥐들이 뛰어노는 그 곳에서 뭘했냐면 열나게 내 엄마 욕을 했다. 뉴욕까지 가서 그동안 내 엄마가 내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존재였는지를 아니 그 엄마에게서 더이상 고통받지 않는 길은 과연 가능한지를 어떻게해야 내 인생이 엄마에게서 자유로울 수 있는 지를 이야기하고 또 했다지.
그냥 도시를 걷기엔 넘 더운 날. 그러다 그럼 뉴욕지하철체험을 해보자고 코니아일랜드로 갔다.
한시간 남짓 그것도 겨우 이달러를 내면 이런 비치에 다다를 수 있다니 뉴욕에 사는 지친 영혼(?)들에게도 숨통이 트이겠다 싶었던 곳.
여전히 더웠다만 그래도 잠시 바닷바람을 쐬는 기분은 최고..
자기야 여기서 배를 타고 마구 가다보면 아일랜드에 닿는거야?
뭐 미국을 아는 건 아니니까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이 곳 그리고 기차역까지 내가 기대했던(?) 전형적인 미국 분위기더라. 황당했던 건 어떤 아저씨 화장실 마크도 못알아보고 여자화장실앞에서 스페인어로 계속 남자를 외치더라는 것. 아 당신도 참 방문이면 괜찮지만 워먼도 못 읽을 정도면 삶 힘들겠다..
돌아오는 길은 버스를 타고 싶었지만 어디서 타는 지도 모르고 어찌 어찌 호텔근처까지 돌아온 날. 그 곳 푸드코트같은 곳에서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었는데 퇴근시간이라 그런지 줄이 장난이 아니네. 그냥 호텔근처의 이태리레스토랑 비슷한(!) 곳에서 파스타를 시키는데 맵다고 되어있길래 나는 이걸로 안되니 훨씬 더 맵게 해줄래요? 했다 정말 혀를 맥주로 진정시켜가며 먹었다지..ㅎㅎ
돌아와 둘다 푹젖은 몸을 씻고는 뉴욕에서의 마지막 밤이니 또 그 유명하다는 호텔바를 안가볼 수는 없지. 유감스럽게도 해는 이미 졌지만 그래도 올라가 앉았는데 편하기 이를데없다.
거기서 무슨 이야기했냐고? 자기야 힘들면 한국와라 내가 포장마차를 해서라도 먹여살릴게..ㅎㅎ
바의 건너편건물에서 보이던 저 창문. 자세히 보니 책장이 있는 게 아파트다. 말하자면 아이즈 와이드샷에 나오는 아파트 같은 건가? 신랑은 와 저런 아파트에 살라면 나도 뉴욕살겠다. 나는? 노우 땡스되겠습니다..ㅎㅎㅎ
나같은 술꾼이야 술을 더 마셨겠지만 비가 떨어지기 시작해서 눈물을 머금고 후퇴해야했던 우리 자리. 뉴욕바에선 담배도 못피는데 저 곳은 맘대로 담배피워도 되고 환상이었구만..ㅎㅎ
다음 달 아침, 그러니까 8월 9일 뉴욕을 떠나던 날
역시나 스타벅스로 커피를 사러나갔고 삼일째 새벽행을 하다보니 꼭 여기 사는 것 같네. 처음 끔찍하던 쓰레기냄새마저 왠지 정다와질려는 분위기..ㅎㅎ
끔찍한 러시아워시간을 뚫고 다시 공항에 도착.
처음으로 비지니스라운지에서 적포도주를 아침 열시에 오달러를 주고 사먹었다지..ㅎㅎ( 아 아침열시가 포인트가 아니라 오달러를 준게 포인트다)
공항내 어느 곳에서도 흡연구역이 없던 곳. 어디서 담배를 피냐니까 아직도 담배를 피냐고 놀리던 직원.
그렇게 뉴욕을 마무리 하고 대서양연안 뉴욕에서 태평양연안 샌프란시스코로 떠났다...
2007.08.10. San Francisco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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