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드디어 가든파티가 있던 날.
자선파티같은 거라 표를 사야했는 데 만일의 경우를 대비 신랑이랑 표를 한 장씩 일단 나눠가졌다. 그런데 이거 뭐야? 표에 음료티켓이 두 장 밖에 안 붙어있는 거다.
자기야? 그럼 술을 두 잔만 마셔야 한다는 이야기?
아이고 우리 마누라는 당연히 두 잔 더 마셔야지. 걱정마라. 내가 그동안 네 술값할 돈 좀 저축해놨어..하.하.하
요즘 들었던 유머중에 최고다. 어찌나 웃기던지 거의 데굴데굴 굴렀다. 내 남자지만 가끔보면 너무 웃긴다..^^;;;
우리부부가 그런 모임에 잘 안가는 이유는 아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다. 거의 사회생활이란 걸 안하고 사니 뻘쭘 그 자체.
그런 모임에 가야 사람도 사귀고 어쩌고 할거 아니냐고 하겠지만 신랑이 원래 누굴 마구 만나고 다니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도 아닌데다 나도 자꾸 내 남자를 닮아가다보니 누굴 만나고 어쩌고 하는 게 귀찮다.
이건 물론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이기도 한데 우리부부는 한 특이하는 데다 애까지 없다보니 사람들 만나면 별 재미도 없다.
주재원생활은 주로 외국인 학교를 통해 커뮤니티가 형성되기도 하고 말이다.
입구에서 신랑부서에서 일하는 애를 만나 간단히 인사만 하고 정원을 둘러보러 나갔는데(사실 우리는 독일대사관 정원을 구경할 목적이었다..ㅎㅎ) 뷔페앞에서 지사장부부를 만났다. 신랑이 도쿄와서 중간에 회사를 옮기는 바람에(진짜 회사를 옮겼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독일과 일본의 시스템차이상 옮기게 되었다) 나는 본 적이 없는 지사장인데 아주 매력적인 일본인부인과 사는 일본통. 신랑보스는 아니지만 긴밀한 협력관계에 있는 사람.
어쨌든 독일에서 겨우 일년정도 살았다는 이 일본여자 남편과 일본어를 쓴다는데도 독일어 엄청 잘하더라..^^
이런 저런 이야기 좀 하다가 식사시간을 핑계로 우리는 또 우리끼리 빠져나와 어느 구석에 자리잡고 앉았다. 정원이 어찌나 넓던지 뻘쭘어쩌고 할 분위기가 아니다.
우리부부야 둘이서만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보니 온도도 적당하고 나무 많은 그 곳에서 술마시며 또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이건 무슨 파티를 온게 아니라 둘이 야외 팝에 나와있는 기분..ㅎㅎ
그래도 우리 아파트애들 생일파티에 만났던 독일애들이 꽤 많은데 워낙 사람이 많아서인지 아는 얼굴은 하나도 안보이더라.
한참을 그러고있다 보니 바로 옆에 다시 나타나 서있던 그 부부. 아니 우리야 원래 아는 사람이 없다만 당신들은 왜 그러고 서있는거냐? -_-
그래 또 합류해서 그들이 아이들때문에 가야한다고 할 때까지 한참을 이야기했다. 중간에 이 회사에서 일하다 떠났다는 어떤 남자를 만났는데 내 남자랑 둘다 서로 이름 들었다며 하는 말, 회사가 워낙 작잖아요..ㅎㅎㅎ
다 가고 우리는 술을 계속 마시며(저축한 돈 쓰고 와야할 거 아니냐..^^) 그 부부이야기며 회사 다른 사람들 이야기며 하는 데 내가 좀 삐닥하더라나? 맞다고 나는 척하는 법을 배울 기회가 없는 이유도 있을거라고 했다. 그래도 나는 어디를 무슨 자리에 가건 어떤 대화도 잘 이끌어가는 강점을 가졌다고 칭찬받았다.
내 남자는 다른 끼는 없는데 누구나 내 마누라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팔불출끼가 있다.^^ 물론 요즘은 내가 술먹고 개판도 치니까 가끔 구박도 좀 한다만..ㅎㅎㅎ
지난 번 평강공주의 고뇌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내 남자가 성격문제에 대해서도 좀 고민을 하니까 우리가 만났던 좀 잘나가는 사람들을 예로 들어가며 그런 이야기도 했다.
그때 기억안났던 끼중 나는 푼수끼에 신끼까지 있는데 사람을 무지 잘 본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평가가 거의 틀려본 적이 없다. 이거야 뭐 타고 났다기보다 워낙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보니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거겠지만 말이다.
그래 거의 예언수준..-_- 으로 이야기가 진행이 되며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게 바람직한 것까지 이야기가 흘러갔다. 그리 사교적이지도 않는데다 입바른 소리는 해도 아첨하는 소리는 절대 못하고 카리스마도 거의 없으며 원칙주의자인 내 남자는 비슷한 위치의 사람들과 비교 패가 나쁜 편이다.
그래도 늘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겐 좋은 평가를 받는 (그게 윗사람이건 아랫사람이건) 내가 보기엔 덕있는 사람이다.
내 남자가 빼다박은 시아버님이 그러셨다. 물론 아버님이야 공무원이셨으니 신랑과 상황은 무지 다르지만 그저 성실과 원칙으로만 사셨다. 당신생일때만 되면 파티하기 싫다고 어디로 도망(!)갈 궁리만 하신 인간관계가 넓지 않으셨던 분이기도 하다. 그래도 은퇴하신 지 십년이 넘었는데 장례식에 직장에서 굉장히 많은 분들이 오셨다. 나도 우리 아버님을 존경했지만 그 오래동안 함께 일했던 그 분들에게서도 그런 마음이 느껴져서 감동스러웠다.
꼭 화려하고 잘 나가야 사는 맛이냐고 인생이 뭐 대단한거라고 그렇게 사는 것도 귀하고 소중한 일이라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말고 나는 그냥 자기가 딱 아버님만큼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돌아오는 택시안에서 까지 못다한 이야기를 하며 우리가 행복할 일은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며 사는 일일 거라고 그렇게 파티였다기보다 우리 둘의 아름다운 외출을 마무리 지었다.
아버님과는 달리 우리는 보다 절실한 먹고 사는 문제가 달려있고 나이는 들어가는 데 아이도 없이 불확실성 속에 떠도는 이 생활에서 어찌 고민이 없겠냐만 그래도 이렇게 서로 위로(?)하며 살아가면 되겠지.
변할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사람은 생긴대로 사는거다..^^
2007.05.19. Tokyo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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