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흔적

몇 가지 고민거리

史野 2007. 5. 9. 12:21

완벽한 백수로 지내는 지 벌써 삼 년이다.

 

아 뭐 마흔이 될 때까지 돈을 번 시간은 삼년도 안되니까 늘 백수였던 거나 마찬가지다만 그래도 대학을 십년이나(!) 다녔고 독일어학원 영어학원 중국어학원 그리고 또 홍콩과 도쿄와서 초반에 다녔던 독일어학원까지 늘 어쨌든 뭔가를 배웠으니까 완벽한 백수였다고 볼 수는 없다.

 

하긴 뭐 여기와서도 수영강습받고 지금도 계속 트레이닝은 받으니까 역시나 뭔갈 배우기는 배우는 거다만. 전생에 공부 못하고 죽은 한이 붙었나 어쩌다 인생이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난 일할 생각도 없고(누가 시켜는 준다냐? ㅎㅎ) 내 시간이 많은 것이 마음에는 든다만 그래도 마흔살에 이렇게 유한마담 비스므리하게 되어 탱자거리며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ㅜㅜ

 

독일을 떠난 지도 구년이 넘었고 작년에 유럽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보니 이젠 정말 끈이 툭 끊어진 듯한 국제미아처럼 느껴진다.

 

나는 누구인가 아니 어떤 삶을 살길 바라는가.

 

신랑이 회사를 옮기지 않는 한 당연히 회사상황에 따라 우리 미래가 결정되긴 하겠지만 내 남자는 보아하니 독일로 돌아가 교육시켜야할 애도 없고 한 십년정도 더 떠돈 후에  돌아가고 싶어하는 듯한데 나는 정말 자신없다. 아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찌근거리는게 눈앞이 캄캄하다.

 

내게는 일단 신랑 빼고 가장 중요한 사람인 시어머님이 십년뒤까지 살아계시리란 보장도 없고(노인일을 누가 알겠는가) 시누이야 있지만 가까이 살 것도 아니다.

( 아 어제 술이 만땅 취한 상태에서 시누이랑 통화를 했는데 그렇게 왕짜증이니 어쩌니 해도 가족은 가족이다. 나만 못된 년이지 울 시누이는 사실 너무 착해서 그렇게 그동안 내가 통화를 피했어도 어찌나 반가와하고 좋아하던지..ㅜㅜ)

 

각설하고 작년에도 이야기 했지만 만으로 마흔이 되면 독일어를 완벽하게 하겠다고 한 게 오년 전인데 이래 저래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꼭 게으른 인간이 상황탓한다)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수준은 그대로라 미치겠다.

 

그래도 외국인치고는 그나마 수준이 있다고 그룹수업도 안되고 개인교습이라도 받을 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지만 개인수업료가 너무 비싸다..ㅜㅜ

 

사실 내 인생을 생각하면 돈이 문제인가 싶은 마음도 없는 건 아닌데 그리고 마사지받는 거랑 비교하면 차라리 싸기까지 한데 문제는 투자하는 것만큼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거다.

 

정말 이건 못하는 것도 아니고 잘 하는 것도 아니고 딱 어중간해서 공부하기도 어려운 내 실력. 내가 정말 다음 생에선 국제결혼은 죽어도 안한다. 그럼 모님 말대로 파트너가 내 모국어를 쓰면 안되냐고? 그 파트너의 고생이 지금 내 고생인데 나라면 눈뜨고 못본다..ㅎㅎ

 

그리고 일본어

 

이것도 포기를 했다고 생각하는데도 그게 또 잘 안된다. 사실 내 트레이너랑 주먹구구식이건 뭐건 수다 열나게 떨 수 있고 다는 이해 못했어도 몇 일전에도 아주 감동적인 특집드라마보다 눈물을 글썽일 수도 있는 정도긴 한데 앞으로 일년 반을 더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자꾸 걸린다.

 

이것도 개인교습은 넘 비싸고 또 독일어랑은 달라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배우는 게 내게 더 도움이 되는데 난 또 말은 되도 문자를 모르지 않냐.

 

학원은 하나 찾아놓고 맨날 웹사이트를 들락거리기만 한지도 벌써 한 달. 언어 하나를 잘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야 누구보다 내가 잘 아니까 잘 하게 되기도 어렵지만 여길 떠나면 쓸모는 있을 지 투자가치가 있는 건지 자꾸 고민만 하고 있다.

 

중국어만 해도 그래도 잘했었는데 말이야 어찌 되지만 마유미에게나 그 띠동갑이었다는 우리 청소부애에게나 편지 한 번을 쓰고 싶어도 한자가 생각이 안난다..ㅜㅜ

 

요즘 인터넷에 올인하고 있는 내 태도도 한심하긴 마찬가지. 아니 한국어 책을 죽어라 읽어대는 것도 마찬가지다만. 정말 내 삶에서 아무 쓰잘데기 없는(자기 위로외엔) 한국어에 왜 이렇게 목을 매달고 있는건지..

 

그리고 운전면허.

 

지금이야 차도 없고 운전면허가 쓸 곳도 없지만 나중엔 운전면허없이는 살 수 없을텐데 이것도 어찌해야 좋을 지를 모르겠다.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에 실기 줄줄히 떨어지고 만료되어 본 필기까지 떨어진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나..ㅎㅎ 거기다 자전거 타다 관절을 부러뜨린 왼팔은 아직도 거의 장애인 수준이데(어떻게 운동은 하는 지 나도 신기..-_-) 왼손으로 기아넣는 이 곳에서 면허를 따는 것도 그렇고 역시 머리가 복잡 복잡

 

하긴 독일로 돌아가면 신랑은 시댁차보다 더 좋은 BMW를 산다는데 딴다고 해도 내 실력으로 어찌 그 차를 몰겠는가. 내 차로 폭스바겐 뉴비틀이나 생긴다면 모를까.(면허도 없는 주제에 내 차는 이렇게 정했다..ㅎㅎ)

 

그리고 생일파티

 

한국에 가서 마흔살파티를 하겠다고 광고를 했는데 서양인들이야 0들어가는 생일이 중요하고 아니라도 집에 불러다 파티하고 그런게 자연스러우니 한 생각이다만 우리나라야 누가 마흔살 파티를 하냐. 그래 괜히 유난떠는 거 아닌가 싶어 왔다리 갔다리.

 

신랑도 찬성이고 오실 것도 아니면서 울 시어머니도 대 찬성이고 (앗 참 울 시어머니 혹 일본에 오셔도 한국엔 안 가신단다. 작은 언니네 특히 넘 섭섭해 말길..^^) 진짜 대단한 파티를 할 것도 아니고 그저 호프집같은 거 하나 빌려 치를 생각이긴 해도 갑자기 뻘쭘.

 

아 이것도 넘 재밌는 게 내가 하도 마흔살 생일 어쩌고 저쩌고 혼자 난리를 쳤더니 한달도 더 남았건만 벌써 시어머니랑 시누이는 나 때문에 머리깨고 있다. 어제도 신랑에게 나 못 듣게 문닫으라고 해놓고 자문을 구하더라나. 너무 웃긴다..ㅎㅎ

 

어쨌든 트레이너에겐 이년 전엔 내 남자를 위한 섹쉬 사야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이젠 나를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니 집중공략을 해달라고 부탁까지는 했는데 올케언니가 집근처에 알아 본다니 우선 견적이 얼마나 나오나 봐야겠다.

 

그러니까 또 생각나는 건 언제 썼지만 더블린에서 친하게 지냈던 제리가 마흔살 파티를 팝에서 했는데 술값은 손님들이 각자 냈다는 것..ㅎㅎ 

 

아 그러니 리즈의 마흔살 파티도 생각난다. 열세명 여자들 앉혀놓고 탐이 혼자 웨이터로 일하던 것. 그때 아이뤼쉬 여자들이 독일 남자들은 다 이렇게 매너가 좋냐고 엄청 감동했었는데 우리집이야 열 세명 앉을 식탁도 없지만 그렇게 해볼까? ㅎㅎ

 

아 마지막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

 

다음 주 금요일에 독일대사관에서 가든파티를 한단다. 우리야 원래(?) 그런 곳에는 안 가는데 올해는 가기로 했다. 무도회가 아니니까 청바지를 입고 가도 상관이야 없다만 도대체 뭘 입고 가야지 내 남자가 빛이 좀 날지. 어느 모임에 가도 베스트 드레서로 꼽힐 지경이었던 내가 뭘 입고 가야하는 지를 고민하는 불쌍한 중년 아줌마가 되어버렸다.(아 저 뭘 입어야 어울려요? 흑흑)

 

신랑이 지위가 아래일 땐 톡톡 튀는 스타일도 괜찮았지만 지위도 그렇고 나이도 그렇고 두번 째 마누라도 아닌데 사십대의 우아함과는 거리가 먼 나는 역시나 머리가 찌근 거린다. 

 

꼭 나이에 맞게 옷을 입으란 법은 없지만 옷차림이 너무 젊을 경우 얼굴에 드러난 세월의 흔적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는 게 내가 남들을 보고 내린 결론이다.

 

거기다 누구나 마찬가지이긴 해도 난 좀 말라보여야 옷발이 사는데 포기했던 집중 다이어트라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건지.

 

그리고 여기사는 독일인들의 동양마누라들이야 보통 독일어를 못하니까 영어로 개겨도 문제될 건 없지만 그래도 독일인들이 많이 오는 파티니까 독일어를 좀 손보고 가고 싶은데 독일어교본을 찾아보니 역시나 머리가 찌근 거린다. 말을 좀 천천히 하면 좋은데 독일사람들보다도 더 빨리 말하는 나는 하다보면 관사빼고 어미빼고 엉망진창 독일어가 되어버린다.

 

오죽 말이 빠르고 헤매면 더블린 영어학원에서 어떤 스웨덴애가 너 머리 돌아가는 속도를 입이 못 따라가는 거 같다고 놀렸을까..ㅜㅜ

 

아 정말 남들은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거나 지구의 온난화를 걱정하거나 내일의 빵을 혹은 자식의 장래에 노심초사하건만 나란 인간은 이런 고민이나 하고 있으니 진짜 한심한 인생이로다.

 

독학도 자습도 이젠 질리는 데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까나.

 

 

 

 

 

2007.05.09. Tokyo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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