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 묻은 책장

임석재-서울, 골목길 풍경

史野 2007. 5. 3. 21:06

가난은 抽象이 아니라 醜像이다 

 

2006-09-14 12:27

 

 

태어나기야 경기도 어느 촌구석에서 태어났지만 아기때부터 자라기는 서울에서 자랐기에 내가 기억하는 내 고향은 서울이다. 그것도 이 책에서 나오는 그런 골목이 내 고향이다.

 

서울의 골목길 풍경이라니 제목에 반해 당장 주문을 했던 책. 책에 언급되는 골목길들의 오십프로는 내가 내 발로 걸어본 곳이기도 하고 책에 언급되진 않지만 나 역시 그런 달동네 골목길에서 일년정도 살아 본 경험도 있다

 

이 책은 한마디로 말하면 골목찬가다.

 

'종이 울리고 꽃이 피고 새들의 노래 웃는 그 얼굴이 가득한 이 위대한 골목에서 살렵니다.' 가 내용인 말그래도 찬가(讚歌). 그런데 그 아름다운 찬가에 나는 분노하고 있으니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부족한 인간인지도 모르겠다.

 

그만 폼잡고 단도직입적으로 가자. 가난은 낭만이 아니다. 자발적 가난이라는 게 혹 있을 수 있겠다. 서울생활에 지쳐 조금의 불편을 감수하면서 전원으로(시골이 아니다) 내려가는 그런 가난이라면 혹 낭만일 수도 있을 지 모르겠다.

 

그런데 혹자는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었단 말인가 '란 이야기를 해야하는 산동네 혹은 달동네의 골목생활이 절대 낭만일 수 없다.

 

책을 읽기 시작하며 저자의 조금은 감상적인 시선이 부담스러웠는데 곧. '막연한 낭만주의와 철부지 감상주의 모두를 경계했고, 그 반대편의 설익은 이성주의도 경계했다(p.15)는 저자의 말에 안심했다. 그런데 책을 읽어가면 읽어갈 수록 이건 점입가경이다.

 

그렇담 그가 그렇게 경계한 설익은 이성주의인지로 나는 비판을 좀 해야겠다

 

건축은 미술사에서 취급하는 예술의 한 장르임에 분명하나 그림이나 조각과 달리 감상이 목적이 아닌 실제 인간이 들어가 살아야하는 실용미술이다. 그러니 건축의 최우선 목표는 그 안에서 인간이 얼마나 편안하고 쾌적한가이다. 그런데 저자도 불량주택이라고 일컫는 그런 골목길 사이를 어슬렁 어슬렁 걸으며 기가막힌 추상미니 어쩌니 하고 있으니 어찌 열불이 나지 않겠나.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11번이나 유럽여행을 하며 200곳이 넘는 도시를 다녔다며 우리 골목길이 유럽의 골목길보다 공간미가 우수하다고 단언한다몇 문장을 인용하자면 이렇다.

 

우리 의식을 지배하는 서양적 이성주의 때문에 정작 우리의 아름다운 골목길의 공간미를 놓치고 있다.'(p.278) ' 유럽골목을 보면서 저걸 쓸어버리고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 골목길도 마찬가지다. 아니 더하다. 우리 골목길은 유럽 골목길보다 보존되어야할 당위성과 가치를 몇 배지니고 있다.'(p.278-279)

 

정말 막말로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유럽골목길을 쓸어버릴 생각을 왜 하냐? 그 곳이 새로

지은 집들보다 훨씬 견고하고 운치있고 층고도 높고 살기 좋은데. 나야말로 그런 곳에 들어가 살고 싶어 환장을 한다만 능력이 없어서 못 들어갈 뿐이다.

 

반면에 우리나라 달동네 골목길은 어떤가? 평지에 살만큼의 능력이 못되는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고 위생면에서나 삶의 질면에서나 도저히 그 유럽의 골목길과 비교할 수 없는 그런 장소다.

 

골목길에서 만났다는 재개발을 원하지 않는다는 몇 사람은 저자처럼 그 추상미와 공간미에 감동을 해서가 아니라 재개발을 해봤자 갈 곳이 없는 그래 그나마 지금 생활이라도 유지하길 바라는 자들의 체념적인 선택일 뿐이다.

 

이건 물론 무조건 골목길을 쓸어버리고 아파트를 지어야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중요한 건 삶의 질의 문제라는 거다. 그렇게 낭만적이고 보존되어야할 정서와 인정이 마구 넘치는데다 예술적으로까지 대단한 그 골목길에 그럼 저자는 왜 이사를 들어가지 않느냔 말이다.    

 

날이면 날마다 멋진 한강을 내려다 볼 수 있고 시시때때로 그 추상미에 젖어살 수 있으며 저자 말대로 느림의 미학이 극을 이루는 그 환상적인 곳으로 말이다. 지금처럼 기분날때마다 산책이나 하겠다고? No Thanks!

 

느림의 미학이 겸손에서 온다니 그건 배부른 자들의 이야기다. 저자의 눈에는 한가해 보이는 그 풍경속 사람들은 아침 일찍 출근해서 지친 몸으로 밤늦게 돌아오느라 느림이 미학인지 뭐시긴지 생각해 볼 겨를이 없는 사람들이다

 

골목길은 교수님이 시간이 남아 산책이나 하는 곳이 아닌 피터지는 삶의 현장이다. (실제로 저자는 새로운 골목길을 발견한 기쁨 산책할 다양성에 흥분하고 있다)

 

계단의 비정형성이 얼마나 아름답고 조형성까지 갖추었으며 긴장을 유지시켜주기에 더 안전하다고? 그러니 오르내릴때마다 감상을 하는 게 좋겠다고?

 

그 사람들은 그 계단을 출근길에 늦어 혹은 새벽일을 가느라 지친 몸으로 빠르게 뛰어내려 가야 하기도하고, 어쩌다 술잔이라도 걸치고 흔들리며 걸어 올라 가야 하는데도? 눈이라도 오고 비라도 내리면 얼마나 위험한지 그런 계단을 날이면 날마다 올라다니는 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저자는 정말 모르는 걸까?

 

이런 식으로 가다보면 밑줄 쳐놓은 건만으로도 끝이 없기에 여기서 멈춰야겠다. 인신공격까지 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이건 이성이다) 이런 식으로 밖에 골목길 이야기를 풀어낼 수 없는 사람이 건축가고 교수라는데 나는 너무나 화가나고 씁쓸하다.(이건 감정이다어렵게 살았다고 가난한 삶에 애정이 듬뿍인양 글을 써대서 더 화가나는 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값지다고 알고 있는 것과 완전히 다른 평범한 소시민들의 세계가 엄연히 살아서 잘 돌아가고 있다.' (p.229)

 

평범하지 않으신 분께서 평범한 소시민의 삶이 잘 돌아간다고 말하는 건 애정이 아니라 너무나 큰 오만이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어떤 기준으로 어떤 권리로 우리라는 말을 함부로 갖다 붙이는 거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