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너무도 짧은 그들의 역사
2006-03-12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재벌이나 정경유착만큼 대표적인 키워드도 없을 것이다. 돈 많은 것이 죄가 되는 사회, 그럼 돈 없는 것이 자부심이 되어야 할텐데 돈 없는 것 역시 죄가 되고 심한 박탈감을 느껴야 하는 그런 사회에서 나는 자랐다.
생각해보면 그리 길지도 않은 삶속에서 그 사회는 상상이상의 변화를 겪었다. 물론 나무로 불을 때서 밥을 해야하던 내 어머니 세대가 겪은 변화보다야 못하겠지만 말이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에는 어마어마한 대저택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집이 일억원이라고 했다. 도대체 일억원이라는 돈이 얼마인지 상상을 할 수 없었던 나는 그때의 기억때문인지 지금도 일억원이 어마어마한 돈이라는 느낌이 있는데 그 일억원으로는 요즘 웬만한 아파트 전세얻기도 힘들다고 들었다.
그 몇 십년 동안 돈의 가치는 형편없이 떨어졌고 우리는 어쨌든 모두 그때보다는 부자가 되었다. 누군가의 집에 티비가 있으면 저녁마다 그리 모였던 적이 있었는데 이제 많은 사람들이 집에 홈시어터를 구비해놓고 산다고 한다.( 여담인데 홈시어터가 무슨 말인지를 몰랐던 나는 무슨 베이비시터같은 걸까 고민했던 적이 있다..^^;; )
이 책은 십원짜리 하드를 먹다 간혹 오십원짜리 부라보콘에 감격하던 내가 베스트라빈스 아이스크림을 만원어치 사먹을 수 있게 된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친 대한민국이 어떻게 경제성장을 해왔는지를 재벌과 정권과의 관계로 분석하고 있는데 그 과정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특히 왜 그 곡창지대인 호남이 못 살까가 늘 궁금했었는데 이승만정권이 들어선 후 호남지주세력이 몰락해 가고 월남한 세력이 부상하는 과정은 내 궁금증을 한꺼번에 풀어줬다.
거기다
무조건 성장위주의 정책으로 야기된 불평등과 무조건 돈만 벌면 된다는 도덕불감증, 실력보단 연줄을 이용하는 우리 사회에 만연된 천민자본주의의 과정을 따라가는 건 가슴답답한 일이다.
어찌되었건 그 사이 대한민국의 위상은 높아졌고 경제력은 세계속에서 조금 나은 인간대접을 받는데 큰 기여를 했다.
물론 그 불평등한 분배, 환경의 문제, 이미 우리사회에 깊이 침투해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문제, 더 나아가 우리보다 경제력이 없는 나라에서 행해지는 부끄러운 행태등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은 성장보다 더 어렵고 오랜 시간이 필요할 힘든 과정으로 우리앞에 남아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그 문제는 지금 대부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 세대에서 풀기 시작해야 할텐데 하는 조바심도 든다
정권이 바뀌고 나면 늘 전임자에 대한 처벌이나 비리가 드러나야하는 슬픈 우리의 현실. 몇 일전 중앙일보 기자가 쓴 글을 봤더니 노무현정권이후 우리 사회가 많이 맑아졌다고 도대체 누가 이 정권의 실세냐는 불평들이 나온다는데 이렇게만 마무리 된다면 노무현정권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 역사에 큰 발자국을 남기는 거란 생각이 든다. 물론 이 정권이 지나간 후 뚜껑은 열어봐야겠지만 말이다.
서울올핌픽이 민주화선언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던지, 삼성 사남매의 이름이 틀린다던지 하는 실수는 있지만(물론 내가 모르는 다른 실수들이 있을 가능성도 있고 말이다) 미국의 원조나
대일청구권의 자금 베트남 특수 그리고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사건들, 경제수치등이 일목요연 잘 정리되어 있어서 나같이 경제쪽에 무지한 사람에겐 재벌의 형성부터 오늘날까지를 훓어보기에 별 다섯개가 아깝지 않은 책이다.
이 책을 권해주신 사마천님께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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