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 묻은 책장

서경식-디아스포라 기행

史野 2007. 5. 3. 20:18

내내 목에 걸렸던 아픔 

 

2006-02-28 21:06

 

몇 년전 한국에 갔다가 떠나기 바로 전 여권을 잃어 버렸다. 경찰에 신고를 하고 택시회사에 문의를 해놓고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비행기를 탈 수 없었다.

 

학기중 딱 일주일 시간을 내어 한국에 갔던 나는 수업도 수업이었지만 여권이 없으면 집에도 내 남편에게도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색다른 절망감을 경험해야 했다.

 

거기다 한국여권이긴 해도 독일 영주권때문에 당시 독일거주자 여권을 가지고 있던 나는 주민등록도 말소된 상태였는데 그때는 또 독일에 거주하지 않았기에 독일영주권조차도 말소되었으니 일은 복잡해졌다외무부직원들은 어찌나 불친절하고 또 재외국민법은 어찌나 형편없던지얼마나 막막했는지 모른다.

 

결국 일반여권을 만들기 위해 강요된 거짓 영구귀국서를 써야 했고 필요도 없는 주민등록을 살려야 했고 사정사정하며 눈썹이 휘날리도록 이리 뛰고 저리 뛴 덕분에 예정보다 일주일 후 상해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는데 (중국비자문제까지는 넘 복잡하니 생략하기로 하겠다)  '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붕뜬 인간이구나'라는 쓸쓸한 생각에 눈물이 났더랬다.

 

꼭 같지는 않지만 그런 처지의 나이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목에 가시가 걸린 듯 아픔과 불편함.

 

그가 갖는 재일조선인으로서의 한계 그리고 분노를 이해함에도 불구하고 내내 그의 글을 읽으며

 목의 가시같이 아프고 불편했던 것에 대해 이야기 해야겠다.

 

그가 선택한 건 아니지만 전후 상황이야 어떻든 그의 부모는 어쨌든 일본잔류를 선택했다. 그가 고등학교때 한국에 갔을 때 동년배의 거랭뱅이를 보고 놀랐듯이 그나 그의 형제가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한 그 부모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는 밉건 곱건, 그도 몇 번 일본이라는 선진국(그는 그 말이 영 불편하다고 하지만서도)에 살아서 편한 점도 이야기 한다. 그렇다 그는 그 나라에 산다.

 

이 것도 비교하는 게 사실 꼭 맞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는 그가 태어난 나라에서 그 나라 말을 모어로 쓰며 말하지 않는 한 아무도 그가 한국인인 줄 모를 수도 있는 그런 환경에서 산다.

 

내가 일본에 와 살면서 물가 비싸고 어쩌고, 어떤 이유를 떠나서도 좋은 건 내가 외국인으로서 눈에 띄이지 않는다는 그 단순한 사실이다.

 

내게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만약의 경우에 내가 독일어를 완벽하게 하게 되더라도 아니 내가 독일에서 태어났더라도 늘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독일어를 잘 하느냐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인종 자체가 다른 나라에서 사는 거랑, 내가 선택을 했건 부모가 선택을 했건 이 곳 동양권의 나라와 천지차이다.

 

디아스포라에게도 질이란 게 있다. 재일 조선인의 서러움을 몰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아니 내가 몇 년 이 곳에 머문다고 어디 그 뿌리 깊은 모욕감까지 알 수 있으랴만은 그가 얘기하듯 참정권이 없는 문제도 그렇다. 내가 과문해서인지 시민권이 없는 사람들에게 참정권을 주는 나라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했다.

 

그는 재일조선인도 세금을 내고 있다고 이야기 하지만 우리도 가는 나라마다 세금을 낸다. 세금이란 건 참정권과 달리 어느 나라에서건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내는 거 아닌가? 한국에서 일하는 어느

동남아인은 심지어 국민연금까지 꼬박 꼬박 내야 한다는 기막힌 얘기도 들었다.

 

물론 그 땅에 태어난 재일 조선인들에게 영주권을 주지 않는 거에 대해선 나도 이해할 수가 없다.

 

귀화하지 않았으니(이 문제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좀 있으나 내가 자세히 아는 문제가 아니므로 역시 생략하기로 한다) 외국인 등록증을 가지고 있는 거야 그렇다고 해도 영주권을 갖지 못해 매번 갱신해야 하는 문제는 한국정부가 나서서라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중요한 문제란 생각이다.

 

각설하고 내가 일본에 와서 살면서 늘 궁금한 점이 있었다. 나야 한국을 떠난 지도 오래 되어 일본 소설이나 만화 음악등을 거의 접해 본 적도 없고 일본은 그저 내가 받은 왜곡된 이미지로서만 남아 있는 그런 왜놈의 나라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곳에 와서야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혹은 조선인들이) 이 땅에 살고 있으며 또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이 나라 문화에 열광하고 있는 지를 알게 되었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이해하는 수준은 내가 초등학교때 배웠던 딱 그 수준에 머물러 있더라는 거다. 아니라면 어떻게 그 수준 낮은 '일본은 없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며 아직도 절판이 아닐 수가 있겠는가. 어찌 그럴 수가 있는 지가 영 이해할 수가 없었고 물론 이 땅을 거쳐간 수 많은 유학생들이 무엇을 보았는지에 대한 의문은 말 할 것도 없었다..

 

저자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에 절망하는데 물론 나란 인간은 유물론자가 아니라서 세상이 크게 변하리라 믿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가 조금씩 달라질 길을 찾는 다면 그건 어디서도 아니고 나로부터 라고 믿는다.

 

내가 태어난 땅 내가 함께 해온 그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과연 누구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인 가.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면 참 쉽게도 세계평화니 인권이니 누구도 소외받지 않는 세상이니를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 자체가 잘못 되었다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일본과 식민지 문제니 독도 문제니를 풀지 않고서는 그 거창한 세계평화라는 건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우리가 보기에 멀고 잘 몰라서 그렇지 팔레스타인에도 유고슬라비아에도 그리고 이라크의 수니,시아파에게도 우리처럼 그 절절한 원한과 모욕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가 내 주변의 문제를 이해하지 않는 한, 사랑하지까진 못하더라도 이해하고 용서하지 않는 한 세계평화라는 게 어찌 가능하겠는가 말이다. 내게 직접적인 문제를 이해할려고 노력하고 용서하는

문제는 이성이 작용하는 먼 나라 문제보다 훨씬 어려운 까닭이다

 

얘기했듯이 난 이 책을 삿포로 어느 호텔에서 읽었다. 추운 겨울 떠난 호텔에서 저녁도 굶으며 이 책을 읽고선 더 쓰린 속을 어쩌지 못해 그 좁은 방안을 헤맸더랬다.

 

난 저자가 오 십 년을 넘게 산, 그가 쓰는 모어와 관계된 그 땅과 그만 화해할 수 있길 바란다.

 

수 많은 사람들이 그 몫을 감당해야 했음에도 못한 그 걸 내가 지금 저자에게 이렇게 바라는 건, 물론 내가 그의 책을 읽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책 내내 느껴지던 그의 인간에, 그리고 삶에 대한 사랑그 신뢰에 기인한다

 

그리고 내 목에 걸린 가시
나 또한 이 땅을 스쳐가는 사람으로서 내가 가야 하는 길, 내 몫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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