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을 함께 한 책
2006-01-01
한 해를 돌아봐야할 31일에 방외지사 1권을, 새해를 계획해야 하는 오늘 방외지사 2권을 읽었다. 물론 일부러 그랬던 건 아니고 그냥 집어 들었는데 놓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묵은 해를 보내겠다고 마주 앉은 식탁에서, 그리고 오늘 네시가 넘어 점심을 먹겠다고 역시 마주앉은 식탁에서 난 남편과 묵은 해에 대한 감상과 새해에 대한 포부가 아닌 저 책 내용과 우리가 각자 가지고 있는 믿음과 삶의 이해방식 그리고 합리성과 비논리성의 정체에 대해 열나게 토론하는 걸로 대신했다.
막상 리뷰를 쓰겠다고 앉고 보니 그런 송구영신도 나름 괜찮았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은 태어나서, 고갱의 그림제목처럼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 모르는 인생. 억겁의 세월까지는 아니더라도 문자문명이 잉태된 후 누구나 고민하고 흔적을 남겼지만 특별한 사람들이 아닌 이상 아직도 여전히 고민하고 의문을 품는 그런 우리의 삶.
이 책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리고 그 성격은 좀 다를지라도 그런 것에 의문을 품고 시쳇말로 도가 통할려고 애를 쓴 1,2권 합해 총 13사람들의 이야기다.
중학교때인가 세수를 하다가 (그때 우리집에 세면대 같은 건 없었고 마당에서 세수물을 받아 세수대야앞에 구부리고 있었던 지금과는 성격이 아주 다른 그런 세수 말이다) 세수물에 비친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과연 이런 행위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날마나 세수를 하며 우리는 죽는 구나 하던 생각.
나름 충격적 경험이라 지금도 그 기억은 내게 선명하다. 이런 저런 의문을 풀겠다고 기독교에 올인했던 그때 개똥철학이라는 전도사님과 목사님의 놀림을 들어가며 끊임없이 묻고 또 묻고 고민하고 또 고민했어도 앞이 보이지 않던 인생.
이 책에도 언급이 되지만 끈이 끊어진 인간들이 붙잡을 곳이 없어 찾아 매달리는 곳, 어찌보면 그게 도나 종교다. 그들의 답에 만족할 수가 없어 성경을 세 번이나 통독했고 신령체험 비슷한 걸 해보겠다고 영험(?)하다는 교회를 찾아가서 모인 사람들과 밤새 울부짖다가 난 결국 스무살 초반에 방언을 받는다.
그게 지금 생각해도 너무 신기했던 건 성경에 보면 방언을 받을때 혀가 갈라지듯 뭐 이런 표현이
나오는데 (다시 찾아볼 성의는 없고 대충 이십년전 기억이다) 딱 내가 방언을 받을때 그런 느낌이었다. 갑자기 혀가 뜨거워지며 저절로 돌아가던 그 경험.
물론 그런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난 더이상 기독교인이 아니다. 아니 기독교를 더이상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제는 태어나서 종교라고는 기독교밖에 모르는,그러나 너무 합리적이어서 그것도 제대로 믿을 수 없는 남편과 여러 종교에 대해서 피터지는 토론도 했지만 중요한건 그도 나도 과연 뭐가 맞는가는 모른다는 거와 그 보단 훨씬 더 고민한 내가 내린 결론에 그도 결국은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는거
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를 알아버렸기 때문이기고 하고 (실제로 이 책은 구원을 스스로 받는 다는 걸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기도 한데..) 인생에 대한 이해란 누군가를 믿어서가 아니라 끝임없는 스스로의 탐구와 노력을 통해서 다가가는 거라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성경의 말도 맞는데 사실 믿는 다는 사실은 무진장 어려운 일이니 말이다. 어떻게 처녀가 아들을 낳고 세상은 6일만에 창조되었으며 애초부터 선택된 민족이 있고 어쩌고 하는 사실을 쉽게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어찌보면 그걸 믿을려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의심을 없앨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그 행위자체도 고행이라고 생각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독일에는 그런 사실을 믿지 않는 목사들이 수없이 존재하고 성경의 단어 하나 하나가 아니라 그냥 신이 있겠거니 이런 기독교 신자가 무지 많다.
기독교와 아무 상관이 없는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쓰며 이런 사설을 늘어놓는건 내겐 결국 도를 찾아서 헤매는 인간의 심리는 다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를 이해하고 세상을 나름 이해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많은 사람들. 아님 그러려니 하고 체념하는 사람들.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부류의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 책에 소개된 방외지사들(쉽게 말해 아웃사이더를 스스로 자처한 사람들)은 보통 우리가 이해하고 순응하는 삶에서 벗어난, 내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건 이 사회속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을 버린 그런 사람들이다.
열 세명중 두 명의 여성이 언급되는데 자식도 낳은 그녀들이 생리를 끊는 경지까지 도달하며 수련을 한 그 과정은 정말 엄청 나다.
그 세계엔 남편의 표현을 빌리자면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화를 낼 필요도 없는 그런 신기한 얘기들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고 남는 의문은 있다.
먹고 사는 문제에서 벗어나 삶을 살아가는 건 결단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의 문제라는거.
물론 이 책중 모든 사람이 그런건 아니지만 일단 누군가 그 생활을 지원해 줘야하거나 (결국 그건 내 도통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입힌다는 말이니까) 내가 나를 먹여살리는게 아니라 부모나 형제나 그런 사람들까지 책임져야해서 내 정신적 문제까지 신경쓸 그런 여유가 없는 그런 사람들은 아니라는거.
나온 사람들중 가난한 사람들이 없었다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런 방외지사의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게 의지보다 그 사람이 처한 환경 이 책식으로 말하며 간단히 팔자가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
누군들 이 삶을 이해하고난후 생을 마감하고 싶은 욕구가 없겠는가 그러니 그렇게 도가 통하거나 그런 식의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은 내게 부러움이다
물론 도가 통하는 인간이 되고 싶단 생각은 꿈도 꾸지 않지만 그래도 나름 나와 삶의 의미는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이 생을 마치고 싶은 나란 인간은 첫 책을 읽으며 도에 관심을 가져볼까하는 욕구도 솟구쳤는데 두 번째 책 첫 사람인 대각심께선 음심을 품고 있는 사람은 도통할 수가 없고 신선은 담배 냄새를 싫어한다니 당장 포기다.
성욕을 포기하고 담배를 끊을 생각이 없는 내게 그 구절은 도를 찾아나설 나침반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징표로 받아들여 졌는데 왜 절망적인 심정이 아니고 묘한 안심이 되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인생의 반이상을 넘어 산 나는 (이건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내가 내 의지대로 활동할 수 있는 그런 의미다) 이 책을 읽으며 삶과 그리고 우리가 믿고 있는 그 논리와 내 삶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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