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 묻은 책장

이석우-예술혼을 사르다 간 사람들

史野 2007. 5. 3. 19:36

혼에도 색이 있을까 

 

2006-07-10 15:09

 

나도 과거 어느 시점에 화실에만 틀어박혀 직접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지금까지 미술이나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을 꽤 많이 만났다음악하는 사람들은 잘 모르겠던데 미술하는 사람들은 느낌이 다르긴 달랐달까.

 

 음악하는 사람들을 보면 날마다 연습을 해야해서인지(물론 작곡하는 사람들은 다를지 모르겠지만 작곡을 전공한 친구는 지금 피아노를 가르치기에 경험이 없다..^^;;) 때론 일반인들보다 자기관리가 철저한 편이다. 물론 내가 만나본 사람들이 그렇단 이야기고 그 중에 철저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었다. 문제는 그들이 결국 음악계에서 낙오했다는 것. 어쨌든 내가 겪었던 음악인들의 자기관리는 특별했다.

 

반면 미술을 하는 사람들의 내가 느낀 가장 큰 특징은 나이값(?)을 못한다는 거였다. 나랑 기분좋게 술을 마셨던 어느 환갑이 넘은 독일조각가는 나중에 내가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궁금해했다는데 내가 뭘 그런걸 물어보느냐며 아무말도 안했더니만 걔(그게 나!) 진짜 포도주 많이 마시더라 욕을 하더란다..-_-

너무 열받아서 같은 포도주를 사다주겠다고 길길히 뛰는 나를 그럼 너도 똑같은 사람이 된다고 신랑이 말리며 근데 좀 괜찮다고 한마디 해주는게 그렇게 어렵냐고 한마디는 하더라..ㅎㅎ

 

음악가들이 대중앞에 나서야하거나 협연도 가능한 것과 달리 대부분을 혼자 보내야하는 미술가들의 삶은 그래서 어쩌면 더 고독하고 더 처절한지도 모르겠다. 그런면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의 삶은 음악가보다는 미술가들과 닮았다.

 

이 책에는 격동의 한국근현대를 살다간 13명의 미술가들이 등장한다. 서양미술가들은 마누라도 모잘라 애인들 이름까지 줄줄히 꿰고 있으면서 우리나라 미술가들에대핸 너무 모른다는 생각에 관심을 가진 책이었는데 그런 수준(?)의 책이 아니라 저자 나름의 시각이 정리된 평론집이다.

 

저자는 너무 전문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흥미위주도 아닌 잔잔한 목소리로 어느 식으로든 우리 미술계에 흔적을 남기고 떠난 열세명의 미술가들의 삶을 기술하고 있다.

 

박길웅 박항섭 양수아 셋은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고 작품들도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아 부끄럽긴했어도 수확이었다.  손상기나 최욱경 오윤 권진규등을 오랫만에 대하는 건 가슴이 저릿저릿해 역시나 쉽지가 않았고 박래현 박생광 이응노나 김환기등 나이가 들어서도 끊임없이 새로와지려 발버둥치던 화가들의 모습엔 숙연해진다

 

혼에도 색이 있다면 예술가들의 혼은 어떤 색일까그 색은 타고나는 걸까 아님 탄생과 더불어 덧칠해지는 걸까. 물론 각자 가진 색이 같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마구 섞인 고상한 색감이라기보단 아무래도 원색에 가깝지 않을까.

누구에게나 주어진 생을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느냐는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고 믿었더랬는데 이젠 그게 아닐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다 인간이 단 하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이라는 자살마저도 어쩌면 스스로의 선택이 아닐 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이십대엔 자기색이 분명한 활활타오르는 인간이고 싶었는데 이젠 날카로움이나 예민한 감성 모든 것들이 부담스워지기만 하니 좋아해할지 실망해야할지. 예술가의 혼을 타고난 건 확실히 아닌데 그렇다고 튼튼한 신경줄을 타고나지도 못한 나는 박쥐인생인가 싶어 쓴웃음이 나왔다나는 무난하고 무던하게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괜한 오바까지.. 

 

책표지에는 저자가 중학생때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있다자서전도 아닌 이런 책에 어머니와의 사진을 내어거는 저자는 어떤 사람일까 뜬금없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