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리
2006-06-06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이 책은 책소개 '미술에 대한 오래된 편견과 신화 뒤집기' 처럼 극적인 내용은 아니지만 흥미롭다.
사실 누구나 한 번쯤은 현대미술(근대미술 Modern Art를 포함한 의미에서)에 대해 답답함을 넘어 열등감을 느껴보았을 거다. 말하자면 현대미술은 우리대중을 철저하게 소외시키고 있다고 할까.
범인들로선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인 것이다. 어찌보면 그들만의 잔치일 수도 있는 그 미술에 대해 이 책은 간략하고 명쾌하게 다가가는 길을 제시한다.
저자는' 이 책은 미술인 것과 미술이 아닌 것, 그리고 그 외의 사물들이 어떻게 의미와 가치를 갖게되는가에 대한 연구'라고 처음에 밝히고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책을 읽은 후 금방 미술이란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건 당근(!) 아니다.
모든 미술사책의 처음을 장식하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가 미술이 아니었다는 저자의 주장이 아예
설득력이 없지는 않으나 비가오는 날 일을 하러갈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 그 비너스상을 바라보며 감동을 느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여기서도 감상의 대상이될때만 미술이냐 아니냐를 따져야겠지만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근대이후에 미술이 생겼다는 관점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없는데 예술가로서 무한한 자부심을 갖고 있던 미켈란젤로나 마음대로 그려놓고 난리를 치던 카라밧지오의 미술이 미술이 아니라고 하기엔 무리가 따르기때문이다.
거기다 미술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근거중 하나인 '우리가 이해하는 미술은 그 작품에 대해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미술가에 의해 창조된다'라는 말도 공감하기 힘든데 과연 근현대의 미술가들이 시대속에서의 역할 혹은 갤러리나 평론가, 대중에게서 자유로운 상태로 절대적 권위를 행사할까? 그들이 가진 강박관념이 미술이 아니었던 시대의 우리의 거장들의 그것보다 덜할까? 절대적인 권위를 행사했을때의 그 작품이야말로 미술이 아니게 될 위험성이 다분한 게 또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제목처럼 '믿는 것이 보는 것이다'라는, 결국 이데올로기의 문제라는 저자의 주장은 우리의 열등감을 조금은 완화시켜준다. 어차피 미술은 만들어지는 거고 그 만들어진 미술사속에서의 저자나 우리의 판단력 또한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니 미술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랴. 논문을 쓸게 아니라면 개인에게 어떤 작품은 미술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결국은 아주 주관적인 행위라는 얘기다.(이건 물론 내 주장이다..ㅎㅎ)
미술감상이건 다른 예술감상이건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과 그 아는 것이 편견이 되어 제대로 볼 수 없다는 두 가지는 결코 화해할 수 없는 평행선일 수도 있고 우리들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이 책의 최대장점은 단숨에 읽힌다는 거다. 머리복잡한 미술책을 들고 끙끙앓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금방 읽히며 일관된 논점을 가진 책을 읽고나서 최소한 미술감상의 안목까지는 아니더라도 미술의 사회학적인 관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리라
언급되는 미술개념들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역자가 무지막지하도록 친절한 역주도 붙여놓았다. 굳이 구입하지 않아도 도서관에 가서 잠시만 시간을 투자해도 되는 책. 어디가서 이렇게 짧은 미술책을 구하겠냐고..ㅎㅎ 사실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선 파트릭 쥐스킨트의 훌륭한 단편 '깊이에의 강요'가 명확하고 깔끔하기론 최고지만 말이다..^^
*내가 읽은 건 구판인데 구판에대한 정보가 아예 없어서 그냥 이 곳에 올린다. 렛츠룩을 들여다보니 도판들도 칼라로 바뀌고 책의 편집이 많이 달라진듯하다. 물론 가격도 올랐고 말이다. 실제로 이 책을 읽는데 그림이 칼라냐 흑백이냐는 중요하지 않은데 아니 나는 관점을 이해하는데는 정신사납지 않은 흑백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개정판은 그림보는 재미가 더해질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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