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날개
2006-06-21
사람마다 집착하는 것들이 몇 개씩은 있겠지만 내겐 신발이 그렇다.
페티쉬라고 할만큼 많은 신발을 가지고 있는 건 물론 아니지만 특이한 신발도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신발은 비싸도 그냥 사는 편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패션의 완성은 신발에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잘 차려입고 안 어울리는 신발을 신은 사람을 보면 꼭 하얀 이에 고추가루가 낀거 같은 불편함을 느낀다는 걸 부인하지 않겠다
요즘이야 편안 옷을 위주로 입고 하도 걸어다니기에 이쁜 신발을 신을 일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신발가게에 혹 들리면 두 개는 집어들고 나와야 속이 시원하다.
단 한 번 특이한 신발때문에 속이 상했던 잊혀지지 않은 일이 있다. 고등학교때 삼년내내 사복을 입었던 세대인 나는 그때도 특이한 신발을 좋아했는데 어느 날 총알처럼 생긴 신발을 신고 가다가 남자친구랑 그 친구를 만난거다. 그냥 인사하고 지나쳤는데 나중에 남자친구왈. 신발이 그게 뭐냐고. 자기 친구도 막 웃고 자기가 민망해서 혼났다고 하는 거다. 당시는 그 남자애를 좋아했기때문에 괜시리 신발이 미웠다나 어쨌다나..
십킬로도 우습게 걸으면서 편해보이는 신발도 별로 없어서 남편이 무진장 구박인데 그거야 말로 억울하다. 아무리 편한 신발을 신었어도 십킬로 걸어서 발안아픈 사람 있으면 나오보라구!!
어쨌든 걷는 것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나는 의복이 아니라 나를 어디든지 데려가는 신발이 날개다.
예전 네덜란드 장르화같은 걸 보면 남자들 신발이 엄청 화려하고 우스운 경우가 많아 궁금했는데 이 책은 그런 궁금증을 풀어주는 흥미로운 책이다.
중세부터 현재까지 신발이 어떤 식으로 변해왔는가에 대해 영국을 중심으로 기술된다. 그렇다고 거창한 사회학적인 전문서적은 아니고 가벼운 에세이식의 보고서다.
오랫동안 짝구분이 없이 만들어졌다던지, 왕의 발가락이 여섯개라 넓은 모양으로 만들어졌던 게 유행을 낳았다던지 17세기 초반 리처드색빌이라는 남자가 총 170컬레의 신발을 가지고 있었다던지 하는 사실들은 흥미를 돋구기 충분하다. (뭐 그래도 삼천컬레를 가지고 있던 이멜다 마르코스 여사는 못따라간다만.)
아무래도 의상을 빼고는 불가능한게 신발이다보니 의상의 변화에 따라 혹은 구두의 변화에 따라 의상이 변화는 과정이나 전쟁이나 사회상황에 따라 구두의 유형을 달라지는 것도 재밌고 말이다.
요즘처럼 길이 포장되어있고 깨끗한 때가 아니었기에 고운 신발에 덧 신는 덧신들도 다양하다. 그건 일본은 아직도 그런데 기모노를 입은 일본여인들이 비오는 날 게다앞에 버선이 더러워지지 말라고 플라스틱을 끼워신는 걸 보고 감탄한 적이 있다.
18,9세기에 패션잡지들이 유행을 선도하거나 혹은 유행을 지나치게 따라가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구절들을 읽는 재미도 쏠쏠한데 꼭 구두뿐만은 아니지만 지금 우리사회가 겪어내는 것들을 서구에선 훨씬 오래전에 겪었다는 걸 확인하는건 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어쨌든 남과 다르다는 걸 확인하고 싶고 구별되어 지고 싶어하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야말로 모든
창조의 원천이란 생각이 새삼 드니, 그 위대한 욕망이여 만세다
유럽전체를 다룬게 아니라 조금 안타깝긴 해도 쉽게 읽히고 다양한 신발 사진들도 많아서 마음에 드는 책인데 별에 인색한건 그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책값이 너무 비싸다는 사실을 양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옮긴이의 몇 마디는 기운을 쭉 빼는데 구두의 취향과 우아함을 짚어보자는 책이지 누가 외모를 가꾸는게 중요하다는 책이라냐. 왜 갑자기 내면이 중요하고 어쩌고 하는 불필요한 설교를 늘어놓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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