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 묻은 책장

조용헌의 사찰기행

史野 2007. 5. 3. 20:00

산으로 갈 수는 없을지라도 

 

2006-04-24 12:12

 

 

지난 책을 놓자마자 구입만 해놓고 아직 읽지 않았던 저자의 이 책을 또 집어 들었다.

 

그 좋아하는 저자인데 이런 느낌으로 물러설 수는 없다라는 나름의 노력이랄까우습긴해도 이게 내가 인생을 사는 방식이다. 한 번 마음에 들었던 사람에게는 완전히 실망하게 되기까지 삼세 번의 기회는 준다는 것..^^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과는 대 만족이다. 인생에 대해 고민하며 세상을 버리고 산으로 간 사람들과 그들이 머물렀던 곳의 이야기는 흥미롭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하고 정말 가능한 이야기일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

 

골수기독교인이었던 내겐 아직도 불가의 이야기나, 풍수나 사주가 인생에 미치는 영향등이 낯설기에 흥미롭고 또 그렇기에 아직 의심가득한 눈을 벗어버릴 수 없긴 해도 수도 없는 세월동안 그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삶과 죽음의 문제에 그렇게 고민했다는 사실은 말할 수 없는 위로이기도 하다.

 

나란 인간이 책의 내용에서처럼 그렇게 고민하는 인간의 사주를 타고 난 건지 아님 사춘기때 아버지가 돌아가심으로 인해 더 삶과 죽음의 문제에 천착하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마흔이 되어서도 나는 죽음이 두렵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 헤매고 있다.

 

그렇다고 나도 산으로 가서 도을 닦고 극락왕생을 꿈꾸고 그럴 생각은 없다. 나는 이제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아직도 믿기만 하면 타력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기독교인들이 그저 부럽다. 물론 부럽다는 것과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건 별개의 문제라는 것도 알기에 내 인생이 괴로운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린시절부터 믿었던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가 불쌍해 유대인들만 받던 구원을 받게 해주셔서 영원히 지옥불에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건 철이 들고나서는 더이상 나를 구원해줄 수 없었다.   

삶은 그것보다 훨씬 복잡했고 세상엔 더 많은 신들이 (혹은 카멜레온적인 한 신이나 법칙이) 나름의 이유와 타당성을 가지고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다는 걸 그제서야 알아버렸기 때문인지 아님 아무리 울부짖어도 침묵하며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방식으로만 일을 풀어가는 그 신에 대한 반항이었는지 역시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신이 아니라 이런 책들이 위로가 된다.

 

나같은 인간은 그저 주저앉아 술담배에 찌들고 섹스나 즐기며 이 유한성의 늪을 겨우 견뎌내고 있지만 더 절박하고 안타까운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그래서 그들은 가족도 버리고 욕망도 버리고 그저 나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처절한 고행을 하고 있음이, 그리고 그들은 신의 아들이 아닌 나와같은 유한한 인간이라는 사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과연 전생의 업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내가 태어난 환경과 일시가 나란 인간의 삶에 정말 큰 영향을 미치는 걸까.

 

도대체 인생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은 어떤 경우에도 풀리지 않는다 아니 과연 풀고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을 건인가에 대한 의문만이 가득이다.

 

산에 갈 수는 없더라도 그저 조금이나마 그 의미나 상관관계를 이해하고 좀 멋지게 죽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도 집착인걸까.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걸까

 

'시선이 조건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충실해야 한다. 타인을 의식하는 한 인간은 진실해질 수 없다. 진실한 사람은 상대방의 호감을 사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는다.' (p.329-328)

 

헐떡거리는 마음을 쉴 수 있으면 좋겠는데 과연 얼마의 시간이 더 필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