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 묻은 책장

후지이 쇼조-현대중국, 영화로 가다

史野 2007. 5. 3. 18:12

내게 중공이었던 그 나라 

 

2006-01-30 12:45

 

제대로된 고전교육은 커녕 제도적으로 한문에 까막눈이길 강요받던,(좀 과장하자면..^^) 한글세대인 나는 중국에 대한 이미지는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을..'로 시작되는 노래와 함께 무식하게 밀고 내려와 우리의 분단의 원흉이 된 공산국나라가 전부였다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고 할까

 

겨우 장이머우감독의 영화 몇 편과 다이오후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나 김용옥부부가 애쓴(?) '루어투어씨앙쯔' 정도가 내가 한국을 떠나기전에 읽었던 책이다.  

 

내가 한국을 떠났을때가 한중수교가 맺어진 직후였으니 내가 2000년 겨울 처음 상해에 갈때까지 사실 내게는 여전히 중공의 이미지가 강했던 나라가 지금의 '중국'이다. 황푸강가에서 미어터지는 중국인사이에서 화려한 푸동과 전통적인 와이탄 건물을 바라보며 새해를 맞던 우리부부가 느꼈던 그 묘한 흥분이라니..

 

가기전 막 읽었던 정창의 소설 '대륙의 딸들'로 각인된 문화혁명의 이미지와 현란하던 네온사인속에서 뒤죽박죽이던 처음의 인상중국"공산당"이란 위용있는 건물을 인민광장에서 만났을때의 그 기분,(이 기분은 그 몇년 후 홍콩섬 가장 번화한 곳에서 인민해방군 건물을 봤을때도 별로 변한게 없었다그리고 아침에 공원에서 사교댄스 한판을 신나게 추고 출근하던 중국인들.

 

중국근현대 문학을 전공한 일본인학자가 쓴 이 책은 영화를 통해서 중국 현대 백년을 들여다보는 제목 그대로 현대중국을 영화로 가보는 여행기(?)이다. 그리고 중국에서 1905년 첫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백년정도의 중국을 아우르고 있다.

 

저자가 영화학자가 아닌 관계로 주로 원작소설이 있는 영화들을 다루고 있는데 애정을 가지고 소설과 영화에 나타난 중국사회 현상과 역사 문제점등을 보는 그의 시선이 따뜻하다. 물론 영화를 영화로서 보는 문제와 원작소설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문제는 별도로 말이다.

 

17세연하의 제자와 멋진 맨션에서 살며 헐리우드 영화를 보러 택시를 대절해 시내로 나갔다는 루쉰의 이야기는 책내용과 상관없이 내게 놀라왔는데 좌익계 대문호라는 편견때문이었을까.

 

당시 그가 다니던 극장은 좌석수 2천개에 냉난방시설까지 갖춘 호화판극장이었다니 당시 영화도시라 불렸다는 상하이문화를 상상해 볼 수가 있다.

 

본지 하도 오래되어 장만옥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 영화 '란링위'를 시작으로 비정성시 '중경삼림'까지 따라가며 장장이 정리되어 언급된 중국역사까지 짚어보는 게 이 책의 묘미다.

 

중국대륙뿐아니라 이제 나라라고 불리기에도 조금은 힘든 타이완과 중국에 반환되는(이 책은 그 전에 출판홍콩의 사회상황에 대해서도 그의 자세한 역사적 설명과 함께 들여다볼 수 있다.

 

시대상황에 맞지 않는, 리얼리즘적 묘사가 떨어지는 영화에 대해 저자는 가혹한 편인데 나 역시 내가 아는 범위에서 그런 장면에 접할때 즉시 영화적 재미가 반감되는 사람인지라 공감이 많이 갔다. 몇 번이나 언급되는 천카이거감독에 대한 그의 실망과 기대도 흥미롭다.

 

신기하게도 이 책에선 다루어지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 생각나는 영화는 두 시간에 중국현대사를 거의 훓어볼 수 있는 장이머우 감독의 인생이다. 그 격변의 세월을 그게 인생이려니 순응하고 살아가는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중국인들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면 그 것도 내 편견에 맞춘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서구열강의 침략과 상해조차지 일본과의 전쟁내란과 문혁, 그리고 천안문사태등을 거치면서 나름 저항하고 순응하기도 하며 여전히 묵묵히 자기색을 발하며 다시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인들의 저력은 대단하단 생각이다.

 

여전히 마오쩌뚱이 숭상받고 장쩌민에서 후진따오로 이어지는 독재체제조차도 걸림돌이 되지않는 그들앞에서는 말을 잃기도 하지만 미국에게 사과를 받아내고 또 미국인들에게 중국어를 자발적으로 배우게 하는 나라는 중국이 세계에서 유일하지 않을까.

 

사실 그 땅덩어리 넓은 나라, 소수민족만 55개족이라는 나라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건 우공이산의 노력이 필요할텐데 어쨌든 당시 그 중국을 이해하겠다고 다짐했던 내가 생각나 웃음이 난다.

 

이럴때 하룻강아지가 범무서운줄 모른다고 하던가..아직도 내게 중국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