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 묻은 책장

이왕주-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史野 2007. 5. 3. 17:47

멋쟁이 철학자아저씨..^^ 

 

2005-10-04 15:54

 

지금은 영화를 많이 보지 않지만 내게도 영화에 열광하던 때가 있었다.

 

남편과 한 시간거리의 영화관을 걸어가서 영화한편을 보고 그 영화얘기를 하며 맥주를 마시고 또 영화 한편을 보고 또 맥주를마시며 영화얘기를 하다 다시 그 길을 흐느적 흐느적 걸어오면 하루가 저물던 때.

 

헐리우드식 영화가 판을 치고 본전 생각을 넘어 두 시간이 아까와 억울한 영화가 있기는 해도 아직도 영화를 본다는건 내게 즐거움이다.

 

그런데 그런 영화가 철학에 캐스팅되었다니 어찌 구미가 동하지 않겠는가. 그 어렵고 복잡한 철학을 영화처럼 즐기며 이해할 수 있다니.

 

이 책은 물론 본격철학책은 아니다. 영화를 철학적으로 분석하니 거꾸로 영화가 철학을 캐스팅했다는게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캐스팅을 했으면 어떻고 당했으면 어떠리 무엇보다도 이 책의 장점은 쉽고 명확하게 서술되었다는 거다. 꼭 이 주제와 연관이 되는 건 아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요즘 학자들의 글쓰기에 불만이 많다. 무슨 말을 그렇게 어렵게하는건지. 되지도 않는 외국어를 섞어쓰며 꼬고 꼬는게 과연 글을 쓴 당사자는 이해를 했을까 의심이갈때가 많다. 철학이라는게 인간을 이해하는 것 혹은 스스로 납득하는거라고 볼때 학자들의 학문세계는 내게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떡도 얻어먹지 못할 남의 집 굿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르다. 영화를 보고난 후 남편과 내가 맥주를 마시며 영화에 대해 담소하듯이 그 상대가 남편대신 옆집에 사는 철학자아저씨가 조근조근 친절히 설명을 해주는 느낌이다. 그래서 이 아저씨가 들뢰즈나 프롬을 말하면 그 개념이 금방 이해가 간다.

 

영화는 보는 사람에 따라 수만가지의 해석이 있을 수 있고 좋은 영화 나쁜 영화라는것도 평론가야 뭐라던 아주 개인적일 수 있기에 영화평론이나 그런글들은 잘 안 읽는 편인 내게 이 책은 새로운 각도에서 영화보기의 재미를 선사해주었다.

 

영화나 철학이나 결국은 삶의 문제이다 이렇게 두 분야가 만나 짝을 이루면 어떤 고전문학보다 더 깊은 감동을 줄 수도 있다는 거. 29편의 영화중 내가 본 건 17편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그의 글을 읽고 이해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

 

물론 그의 명쾌한 언어들을 넋놓고 따라가다보면 도덕교과서를 읽는것 같은 느낌도 가끔들기는 하지만 확신에 찬 강요가 아닌관계로 오랫만에 기분좋고 경쾌한 독서였다.

 

책을 읽다가 저자가 무척 젊은 사람일거라 생각했는데 오십대중반인것도 재미를 더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옥의 티하나를 잡고 넘어가야겠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도중 개인적인 얘기가 나오는데  딸이 디디알에 빠져 거리를 헤맬때 딸을 집에 붙잡아두고자 아예 디디알을 구입했다니 조금 놀랍다. 거기다 아파트의 소음때문에 아래 이불을 깔고 아래층에 사람이 있나 바닥에 귀를 대보는 수고도(물론 그의 아내가) 마다하지 않았다니. 이런 멋쟁이 철학자라면 딸이 거리를 헤매는 동안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무형의 수고가 더 값진수고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더라.

하긴 저자도 언급했듯이 무소유책으로 유명한 어느 스님의 책판권이 그 스님의 소유듯이 인간의 삶에대해 더 진지하게 고민하는 저자에게도 넘어설 수 없는 그 무엇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건 물론 책내용과 크게 상관없는 그냥 내 딴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