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 묻은 책장

김용규-영화관 옆 철학카페

史野 2007. 5. 3. 18:03

이 카페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2006-07-14 21:03

 

심심하면 들리던 카페가 있었다. 그림을 그리던 아저씨가 운영하던 그 카페에서 나는 커피를 마시고 황제를 듣고 책을 읽고 또 친구들을 만났다. 그 사이 그 곳의 주인은 세 번이나 바뀌었고 인테리어도 바뀌었어도 단골로서의 내 위치는 바뀌지 않았고 핸드폰이 없던 시절 나를 찾던 친구들이 그냥 들려보던 곳.

 

내 결혼식에도 왔었던 한 주인아저씨는 내가 찍은 그 카페사진을 벽에 걸어놓았었더랬는데 지금도 걸려있을까아직도 있기는 할까. 발걸음을 하지 않은지 벌써 몇 년. 갑자기 무진장 궁금해진다 .

 

그 자리에 있었던 삶의 흔적만을 곱씹어도 끝도없을 듯한 단골카페.내 떠돌이 삶에 안타까운 게 있다면 그런 익숙한 장소를 만들지 못한다는 걸거다. 하긴 더 중요한 사람도 마찬가지인데 장소를 아쉬워할 여력이 어디 있으랴만 혼자 카페에 죽치고 있는 걸 좋아했던 나로서는 익숙한 피난처 하나 없이 살고 있는 내 삶이 가끔은 서럽다.

 

꼭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이 영화관 옆 철학카페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아니 자주 갔더랬다. 이 책은 작년에 읽었던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와 함께 구입한 책인데 그 책을 읽고나서 집어들었을때의 느낌이 너무 무거워서 그냥 읽다 말았고 한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진지하다는, 그때 받은 느낌이 지금 변한건 아닌데 이 진지한 카페에 오래 머물렀던 건 진지한 뭔가가 절실한 요즘의 내 내적욕구였는지도 모르겠다.  

 

희망, 행복, 시간, 사랑, 죽음 그리고 성을 주제로 각 세 편의 영화가 실려있는 이 책은 영화책은 아니고 영화를 통해 보여지는 인간에 그 촛점이 맞춰져 있다. 결국 저 여섯가지 주제가 우리 삶을 거의 모두 나눌 수 있으니 삶자체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도 무리는 없겠다.

 

나처럼 철학에 무지한 사람은 그 개념을 따라가는 게 좀 벅차기도 했고 때론 이 당연한 사실을 철학자들이 발견하고 좋아했단 말인가 하는 황당한 순간도 있었지만 내겐 여러 생각의 고리들을 만들어내는 문장들이 많아 더 좋았다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장에서 우주정거장에 죽은 사람들이 나타나기도 한다는 설정 그리고 그것이 결국 사람의 양심이라는 건 특히 흥미로왔는데 그건 다름아닌 우리가 꾸는 꿈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생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꿈만큼 미스테리한 것이 내겐 드물다. 영혼이 있어서 잠잘때 빠져나가 서로 만난다면 왜 출연자들이 동시에 같은 꿈을 꾸지 않는단 말인가. 늘 궁금하면서 해결되지 않는 의문인데 좀 웃기긴 해도 그럼 내 꿈도 내 양심인가 하니 뭔가 여태까지와 다른 각도로 접근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게 된다.

 

안 본 영화가 많아 영화들을 보고 다시 한 편씩 읽는 것도 좋겠단 생각이 든다.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라기 보단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

 

나도 참 심각하게 인생사는 편인데 개인적 이야기가 하나도 없는 이 책을 읽으며 저자는 더 하겠단 생각이 들어 속으로 웃었다.

 

늘 무거운 주제로 살 수는 없고 앞으로 가능하면 가볍고 즐겁게 살고 싶은 나이긴 하지만 가끔씩 사는게 막막하고 도저히 이해될 것 같지 않은 순간이 닥칠때 다시 이 길모통이 카페를 찾아가 그의 그 심각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