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을 올리며 병원이야기를 썼더니 갑자기 내가 겪은 정신병원에 대해 마구 떠들고 싶어졌다.. 좀 고상하게 말하자면 기억이 나는 김에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졌다..^^
언급했던 병원은 정신과 요양원같은 곳이었는데 폐쇄병동(환자의 자유출입이 불가능한 곳) 자유병동으로 나뉘어 졌더랬다.
물론(?)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지만 발작을 일으키거나 하는 환자가 아닌 나는 자유병동에 입원을 했더랬는데 환자복없이 각자 의상을 입을 수 있고 환자들이 산보나 물건을 사러 갈 수 있고 주말에는 일박이일 외출을 할 수 있고 뭐 그런 곳이었다.
내가 병원에 입원했을때는 마침 내 생일이 끼어있었는데 힘들어하는 마누라에게 기쁨을 주고자 한 남편이 그때 베를린 의회를 싸는 프로젝트를 했던 크리스토작품을 보러가자는 깜짝 선물로 이박삼일 베를린행 비행기티켓을 샀던 것. (이건 예전 글을 읽으셨던 분 기억나실거다..^^;;)
문제는 병원에서 절대 이박삼일은 안된다고 우기며 그럴려면 퇴원을 하라는데 (입원도 자발이니 퇴원도 자발이다) 난 당시 스스로 아무리 생각해도 퇴원을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는데 아무리 애원해도 이틀밤은 규정상 안된다니 어쩌나.
그때 우리 경제력상 신랑이 산 티켓이라야 변경이 안되는 가장 싼 티켓이었고 묵는 것도 베를린 작은 아버님댁예정. 어쩌겠냐 결국은 시누이가 신랑이랑 가고 나는 시부모님이랑 뮌스터로 가서 주말을 보내게 되어 더 잊을 수가 없다.
정말 너무 보고 싶었던 프로젝트였는데 눈물났던 상황. 자기 잘못이 아닌데도 너무 착한 우리 시누이(내가 아무리 욕을 해대도 우리 시누이가 근본은 아주 착하다..ㅎㅎ) 네 대신 가게 되어 미안하고 덕분에 여행 잘 다녀왔다고 내게 가방을 하나 선물했다.
거기선 물론 로맨스도 있었는데(내가 어딜가나 로맨스없던 곳이 있더냐만..ㅎㅎ) 생일은 주중이라 그 날은 신랑말고 마쿠스까지 함께 면회를 왔는데 그때 마침 그 남자애가 내 생일이라고 정중하게 데이트신청을 하러 나타난 것.
그때 마쿠스 울 신랑에게 '너 병원도 안되겠는데 어쩌니?' 하며 웃었던 기억..ㅎㅎ
세 사람이 묵는 병실이었는데 그 중 한 여자애는 옆 방 남자애랑 진짜 로맨스(나같은 로맨스가 아니라..^^;;)가 생겨 내내 붙어다니는 재밌는 광경도 생겼더랬다.
내 병이야 어떤 명의도 못 알아보고 도움이 안되는 지라 결국 얼마 못가 퇴원을 하고 썼듯이 혼자 망가져 갔지만 어쨌든 잊을 수 없는 장면들
더 잊을 수 없었던 건 한국에서의 경험.
내가 비싼 돈을 내며 상담을 받던 유명한 정신과 의사 역시 아무 도움이 안되었는데 내가 잠을 너무 못자고 술에 너무 의지를 하니까 입원을 권유했더랬다. 그래 나는 그 대학병원에 입원하는 줄 알았는데 그가 종국에 추천을 했던 곳은 그의 선배가 운영하던 어느 개인 정신병원.
그 곳에 이주를 입원하기로 하고 엄마랑 울신랑의 연적이었다는 그 남자친구랑 갔다. 그 남자친구는 끝까지 잘못된 선택이라고 말렸는데 내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고(그러면 나랑 남자친구 여자친구 못한다..ㅎㅎ) 근데 나라고 뭐 그런 곳에 가는 마음이 편했겠냐.
그 병원은 한층은 여자 한층은 남자, 한 방에 대충 열 명정도 들어있는 소규모 병원이었고 뭔가 꾸준히 프로그램이 있는 나름 괜찮은 병원이었는데 마침 내가 들어갔을 때는 남녀 다 모여 뭔가 하고 있을 때.
당시 나는 모자에 레깅스에 긴 부츠 미니스커트같은 긴 니트에 2006년에 그대로 나타나도 별 꿀릴게 없는 모던(혹은 포스트 모던? ^^)한 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어떤 아줌마는 내가 자기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러 온 가수인지 알았다고 했고 더 웃겼던 건 그때 자기들을 바라보던 내 얼굴이 너무 우울해서 안되어 보였는데 여기오니 사람같다고 한 분도 나중에 있었더라는 것..^^;;
병원 생활은 나름 재미있었다. 자유시간이 많아 모여 수다를 떨기도 했고 오후면 모두에게 돈을 각출해서 간식을 사다주는 시간도 있었고 간호사(모두 남자)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고 말이다.
물론 위에 얘기했던 독일병원과 달리 외출이란 전혀 허용되지 않았고 창문도 무지 작은데다 창살같은게 있었고 화장실문은 안에서 절대 잠글수 없었던데다 약도 절대 스스로 먹을 수 없고 먹여줬다는 거.
자존심은 상했지만 그건 견딜 수 있었는데 막상 친구결혼식에 외출을 신청하자 거절당했다는 게 내겐 잊을 수 없는 충격이었다.
이주일 예정으로 들어갔는데 정확한 기억은 아니어도 친구결혼식을 갈 수 없었던 일주일부터 이 곳에서 나갈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려 회복은 커녕 더 잠을 못 이룬 나날들.
그래 그 곳에서 신랑에게 그리고 미모군에게 몇 편지를 썼었더랬는데 오늘 신랑에게 물어봐서 그때 내가 무슨 이야기를 썼었는지 읽어보고 싶다..(미모군도 그 편지를 내게 줄까? ㅎㅎ)
미치도록 지루했던 그 곳에서 난 간식으로 사온 초코렛 등으로 장식까지 해가며 편지를 썼었는데..^^
그 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뻔하다. 가정에 문제가 생겼거나 했을때 발작(뭔가 깨부순다던지 자해를 한다던지의 행위)를 통해 가족에 의해 실려온 사람들인데 재밌는 건 넌 왜 이 병원에 왔는데 하고 서로 묻는다는 것.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어느 방사선과 의사였는데 (이걸 그녀가 너무 자랑스럽게 강조했기에 잊을 수도 없다) 정말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끊임없이 혼자 떠들지만 이야기를 시켜보면 너무 이성적인데다 우수에 찬 분위기가 그만인 여자였다는 것.
어느 날 다들 자고 그녀랑 나랑만 깨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밤의 공기를 자를만큼 선명하고 정확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 아 그럼 이 곳이 처음이란 거군요? 당신을 위해 충고하는데 나가도 여기에 있었단 말은 어디에도 하지 말아요'
' 헉 벌써 들어간다고 말했는데요? ' ㅎㅎ
그 곳에서 나갈 수 없을지도 모른단 내 불안감과 달리 약속했던 정확히 이주 후 원장은 나를 불렀고 엄마와 남자친구는 원장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날 엄마야 집으로 가시고 그 친구랑 나랑 뭘했는지까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단지 이주만에 주어진 자유가 너무 좋았다는 것. 물론 스스로 '저는 알콜중독이라 수용이 필요합니다'라고 했던 인간이니 이주동안 못마신 술을 마셨겠지만 어쨌든 잊을 수 없는 내 삶의 한 장면.
언젠가 이런 경험으로 단편소설을 쓰고 싶단 생각을 했더랬다. 단편소설이건 뭐건 쓰는 건 지금 요원하고 생각난 김에 여기 남긴다.
그리고 요즘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병원에 입원하고 싶은 맘까진 없지만 의학의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단 생각.
감기에 걸리면 감기약을 먹을 수 있는 것처럼(이건 내 병을 향수병이라고 잘못 이해하고 저 윗 병원의 원장이 했던 이야기다.-_-) 잠을 못자거나해 불안해질때 뭔가 나를 도와줄 수 있는 그런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누군가 나를 실질적으로 도와줬으면 좋겠단 그런 생각...
그게 무슨 병이건 긴 병엔 효자없다는데 내 남자는 정말 대단한 인간인란 생각을 하는 것도 요즘..
2006.12.29. Tokyo에서 사야
사진은 내용과 아무 상관없는 독일에서의 몇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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