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묻은 신발

독일방문기

史野 2003. 9. 2. 10:27






독일에 다녀왔다



공항에 내려서 오는길에 보이는 주변건물들이 낯설지는 않았지만 집에 들어섰더니 이상하게도 집에 오니 좋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대도시에서 자란 나는 대도시가 늘 편했었는데 이젠 고층건물없고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룬 그 곳이 정다우니 나이가 들어가는가.



엄밀히 말해서 독일에 가는건 여행은 아니고 익숙한 곳으로의 방문이다



독일을 떠난지 오래되었어도 매년 두번씩은 가게 되는 곳..



이젠 정말 내게 고향같은 곳이다



시간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걸까 열흘간 김치한조각 라면 한젓가락 먹지 않아도 아무렇지도 않다



한국인으로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가 독일을 고향같이 느낀다니 빠르거나 늦거나 결국엔 독일로 돌아가서 살게 될 내겐 참 다행스런일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젠 한국에 가면 그만큼 편하고 정답고 하지 않으니 어찌생각하면 서글픈일이기도 하고..



모르겠다 또 독일로 완전히 돌아가게 되면 한국과의 엄청난 거리에 우울하고 외로울지도..



이번엔 여러가지로 많이 힘들고 지쳐서 간 이유일까 거의 모든 시간을 문밖출입도 안하고 그냥 정원에 앉아서만 보냈다



독일이 편한데는 물론 나무많고 늘 변함없는 사람들 삶이 여유있는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건 그들이(내가 아는 이들이..) 편견이 적고 얼키고 설킨 인간관계속에 괴로와하는 일이 없기 때문일거다



언어는 물론 여전히 나를 괴롭히지만 한국처럼 신조어도 드물고 티비를 켜도 익숙한 토크쇼에 익숙한 연속극이라 오랫만에 가도 얘기가 된다



물론 하루 12시간을 거의 혼자 시간을 보내는 내가 내집이 아닌 곳에서 여러 사람과 섞여 열흘을 보낸다는건 쉬운일은 아닌데다가 자식사랑이 유별나다못해 특이하기까지하신 시부모님이 가끔은 힘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다커서 벌만큼 버는 자식들인데도 슈퍼마켓으로 심부름 한 번을 안시키시고 손수 다 하시는데다가 포도주 맥주 안떨어지게 사다놓으시고 차빌려나가면 기름 잔뜩 넣어놓으시고 밥 한 번을 못사게 하신다



식탁에서 일어나 소금하나 갖으러가는 것도 자식들 못하게 하시고 어머님 아버님 서로 하시겠다고 그러는 거 보고 있으면 사실 난 피곤하다..ㅎㅎ



세 자식이 그늘찾아 정원 구석 구석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모여서 마시라는 얘기도 못하시고 세 의자 옆에 작은 탁자 까지 갔다 놓으며 커피며 과일이며 배달하시며 행복해 하시는 어머님



명색이 맏며느리(?)인 나는 열흘간 아버님 도와 설겆이 딱 한 번 한게 전부다



하긴 칠순이 넘으신 분들이 손주가 없으니 삼십중반도 넘은 자식들이 아직 애들처럼 보여 챙겨주시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고 또 한 자식은 만킬로가까운 곳에 한 자식은 독일내라도 600킬로 넘는 곳에 살고 있어 일년에 두세 번 얼굴을 보기도 힘드니 집에 와 있는 동안 어떻게든지 편하게 해주시려는 마음이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 유별한 자식사랑은 친자식이 아니고 며느리인 내게까지 불똥이(?) 튀는데 이유는 당연히 그 사랑하는 자식의 아내니 무조건 이쁜거구 그 사랑하는 자식을 행복하게 해주니 보기만 해도 고마운건다..^^



어쨋든 덕분에 난 충분히 쉴 수 있었구 남편은 내가 자는 아침에 조깅까지 매일하곤 홍콩에서는 엄두도 못내는 소설책도 읽고 둘다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특히 세 여자들은 책을 좋아하는데다가 좋아하는 책의 성향도 비슷해서 만나면 그동안 읽은 책을 서로 추천하거나 공통으로 읽은 책들의 느낌을 교환하는데 주변에 독일어책 읽는 사람이 거의 없는 내게는 참 귀한 시간이다



이번 독일방문에서 좋았던것 또 하나가 남편이 친한 친구의 아이의 대부가 된거다



내가 공부하며 만났던 독일친구들은 그 도시를 떠나면서 연락이 거의 끊기어서 내가 아는 독일친구들은 이제 다 남편친구들인데 그들은 내가 독일에 혼자가도 꼭 만나고 오는 친한 친구들이다



남편이 그들결혼의 증인까지 했으니 그들에게도 우리부부가 중요한 친구이구..^^



여러가지 사정으로 오랜시간 주말부부를 했던 그들은 얼마전 아파트를 구입해서 살림을 합쳤다



하루 시간을 내어 차로 한시간 가량 걸리는 그 집을 찾아갔더니 그 친구가 그런다 남편이 자기 아들의 대부가 되었으니 이제 입양된(?) 가족이라구..



그 말을 들으니 남편이 세례식에서 선서를 할때처럼 또 가슴이 뭉클해졌다



내게 어떤 장소라는게 의미가 되는건 그리운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의미에서 만나면 편하고 보고 싶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독일도 내게 가깝게 느껴지는 걸거다



오랫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몇일쉬고 싶지만 예정대로 내일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는 독일친구들을 찾아 떠난다



독일사람들과 열흘이나 보냈는데 또 독일사람들하고 일주일이나 보낸다고 푸념했더니 남편이 웃는다..^^



인도네시아에 있는 친구가 내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건 좀 특이한 사건때문이었다


독일에서 극심한 우울증으로 고생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그 친구의 엄마가 내게 구구절절 당신이 힘들었을때의 얘기를 담아 다섯장이나 되는 장문의 편지를 보낸거다


대충 얼굴만 알고 있던 남편친구의 엄마가 마음을 활짝 열어보낸 편지..얼마나 놀래고 또 얼마나 고마왔는지..



내일 난 또 독일방문의 연장선상에 선다..^^





2003.09.02 香港에서...사야




사진들은 제가 독일에 가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시댁입니다. 제가 찍은 사진들을 아버님 보여드렸더니 누가 사진만 보면 우리가 공원에 사는 줄 알겠다 하실정도로 나무밖에는 보이는게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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