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묻은 신발

(특별칼럼) 필리핀 여행기

史野 2002. 10. 11. 22:35





이번 여행은 별로 기대되지 않았었다

우선은 별로 친하지도 않은 남편의 옛 동료를 찾아가는게 그랬구

수영을 좋아하지 않는 내게 바닷가에서의 일주일이 뭐 그리 흥미로웠겠는가

물론 여름에 중국의 운남성을 가려다가 못간 실망감도 컸기때문에 남편이 제안한

필리핀 여행이 더 당기지 않았었는지도 모른다

중국도 갈때가 얼마나 많은데 무슨 필리핀이냐면서 투덜대기만 했으니

어쨋거나 중국공휴일은 사람이 넘 많아서 어디가도 정신만 없잖냐는 남편의 말이 설득력이 있긴 있었다

난 정말 여기 살면서 중국여기 저기를 많이 보고 싶은데 자꾸 시간만 가고 그냥 떠나게 될거 같아 불안하다..ㅠㅠ


일단 그 필리핀에 사는 사람들을 얘기하는걸로 여행기를 시작하자

그 동료는 우리가 독일 뒤셀도르프에 살때 알게 되었는데 17살에 프랑스로 어학연수가서 알게된

23살의 필리핀 여자아이랑 학교 졸업하고 직장 잡을때까지 순정을 지키다 결혼한 케이스이다

우리랑 같은 해에 결혼했으니 대단한 커플이다(물론 그 집은 첫 애가 벌써 학교다닌다..ㅎㅎ)

어쨋거나 그때 우린 몇 번 같이 만났구 그 여자애랑은 독일어 코스도 한 학기 했었는데 나랑 그리 친하지는 않았었다

거기다 마지막으로 만난게 6년전인가 7년전인가

그들은 동경과 런던을 거쳐 직장을 아예 바꾼 남편관계로 지금 아내의 고향인 마닐라에 거주하고 있다

그래서 그 여자애는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천국이 따로 없단다...ㅎㅎ

우리가 같이 독일에 있을땐 물론 두 집다 아시아에서 같은 시기에 근무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 참 사람일이란...


남자애가 근무하는 곳이 특수 은행인 관계로 그앤 외교관 비슷한 신분이 되어 공항내 여권검사대까지

들어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오랫만에 만났기에 중후(?) 해진 분위기가 놀라왔지만 그래도 막상보니 반가왔다

역시 외교관 차량이라는 마크가 붙은 그애의 차를 타고 가던 마닐라 거리는 왜그렇게 더럽고 가난해보이던지

도착한 그 애가 사는 동네는 정말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고급주택가라 비교되어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수영장도 있는 집이라고 해서 난 정원도 넓을꺼고 어쩌고 나름대로 무지 기대를 하고 갔는데

물론 넘 좋은 저택이긴 하지만 그냥 마당이 수영장이다..ㅎㅎ

어쨋거나 2층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는 수영장은 정말 환상적이더라

일어나서 수영복만 갈아입고 물에 뛰어들 수 있다는 것도 넘 좋았구

월세는 정작 우리집보다도 싼데 집은 한 세네 배는 좋아 보였다

난 남편때문에 6시반에 일어나는게 늘 자랑인데 그 집은 두 시간이나 먼저 일어난단다

그래서 늦게 도착한 우리는 가자마자 잠자리에 들어야했다..ㅠㅠ

어쨋거나 몇 일 마닐라에서 머무르기로 한 우리는 다음 날 일찍 일어나서 갈 곳이 있다길래 잠이 들었다


아침에 새벽같이 일어나 간 곳은 마닐라 근처에서 정말 부자들만 갈 수 있는 리조트

걔네도 회원이 아닌지라 들어가는 건 또 얼마나 복잡하던지..ㅠㅠ

골프장도 있고 전망도 좋고 음식도 맛있었지만 안그래도 분리된 고급주택가에 도착해서

또 분리된 리조트에 오니까 난 좀 속이 상했다

안그래도 세부가면 리조트에서 일주일 있을껀데..ㅠㅠ

거기다 보디가드들 총이랑 그런거 오는대로 신고하라는 팻말도 보이고..흑흑

그래도 가고 오는 길의 풍경은 참 아름다웠다


그 다음 날은 마닐라도보관광을 하고 싶었는데 죽어라고 말리는거다

누가 총을 맞았다느니 한국인이 독극물 살해를 당했다느니 중국인 납치가 유행이라느니..

안그래도 한국인들 필리핀 여행자제하라는 말을 듣고 떠난훈데..ㅠㅠ

뭐 그렇다고 우리가 안돌아다닐 사람도 아닌데 문제는 걔네들이 우리 일정을 다 마음대로 정해놨다는 거다

그리고 차가 없으면 움직일 수도 없는 곳이라 우린 아침에 일어나서 그냥 수영을 하고 오후에 차를 타고

그냥 그애가 보여주는 거리랑 한 쇼핑몰에서 여기 저기를 걷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시내에 나갔더니 좀 과장해서 백미터안에 한국교회가 세 개나 있더라


그 다음 날은 지난 번 이 멜에서도 나왔던 정글투어인지를 갔다

원래는 남자애가 같이 가려고 했는데 아침에 옷입다가 회사에 일이 생겨 마누라로 대치가 되어..ㅎㅎ

가자마자 만났던 한국인 아줌마 관광객들.. ...^^

유럽에서는 어디가나 독일인이고 아시아에선 이제 어디가나 한국인이라고 하며 우린 웃었다

정글투어라고 해서 옷이랑 신발이랑 무장하고 갔더만 그냥 열대숲사이에서 수영을 하는 코스였다

 

Reise

 

 

 


벌써 도착해서 삼일째 하는 수영.

그래도 바다나 수영장이 아니라 300년넘은 나무를 바라보며 하는 수영은 나름대로 색달라 좋았다

모기는 얼마나 많은지 온몸에 크림을 발랐는데도 내 몸은 피흘린 전쟁터다..ㅠㅠ

두사람은 한 방도 안물었던데 난 눈두덩이까지 난리도 아니었다


여자애는 독일살때 독일어를 잘했었는데 이젠 거의 안쓰려고 한다

영어를 아예 못하는 사람이 아니면 독일어가 안나온다나..

그 집은 집안 공식언어(?)도 영어더라

사실 내가 젤 부러워하는 거다 남편이랑 모국어를 쓸 수 있다는거..ㅎㅎ

근데 그애의 설명이 넘 재밌다

자긴 사실 무지 재밌는 사람인데 독일어를 쓰면 사람들이 자기가 재밌는 사람인걸 몰라서 쓰기 싫다는 거다

난 무슨 언어를 써도 다 나 웃기다던데 내가 넘 주책을 떨어 그러나?..하하하

짧았지만 오랫만에 만나 사람들이랑 얘기도 많이 하고 생각보다 좋았던 기분으로 다음날 마닐라를 떠났다

내년에 독일 6주인가 간다고 우리 보러 와서 그 집에서 휴가 보내란다..ㅎㅎㅎ


드디어 우리 둘만의 편안한 여행..^^*

비행기로 한 시간 정도 가서 우리가 예약한 세부 한 리조트에 도착하니 넘 좋다

거의 2층으로 된 건물들이 인공풀을 가운데로 두고 야자수와 섞여 서있는데 일층방은 베란다로 나가면 곧 풀이다

기분이 넘 좋아 나갔더니 엥 왠 한국말???

여기 저기 보이는게 다 한국인 신혼부부 커플이다

전혀 모르고간 난 좀 당황스러울밖에..

신혼부부 커플들은 또 오죽 닭살인가? 오빠 아아앙 난리났다..ㅎㅎ

그때부터 우리떠날때까지 들이닥친 커플들이 족히 수백쌍은 될꺼다..흑흑


원래 계획은 책이나 읽고 바닷가나 산책하고 하는 거였는데 아뿔싸 비치가 없다

그냥 폐쇄된 리조트가 전부인거다

그래도 가져간 책을 읽기 시작하는데 한 번 읽다가 포기한 책이라서 그런지 진도가 안나간다

휴가가면 책만 읽을꺼니 꼭 읽고 오겠다고 가져간건데..ㅠㅠ

Reise

 

그러니 뭐 특별히 할 일도 없어서 왔다 갔다 하는 날 빼곤 9일간 수영만 하다가 왔다..ㅎㅎ

덕분에 물을 무서워하는 나같은 겁쟁이가 남편키도 넘는 깊은 곳을 몇 번이나 건너게 되었으니 기분은 좋더라..하하

뭐 덕분에 남편표현을 빌자면 쵸코렛쿠키가 되어 난리가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하루는 필리핀에서 제일 오래되었다는 세부시내를 나가보기로 했다

낡은 건물들 나쁜 공기 무장을 하고 은행앞에 서있는 경찰들 구걸하는 아이들..

아이들이 초를 팔길래 그냥 잘 못지나가는 난 그 애 초를 사줄려고 폼을 잡았더니 떼거지로 몰려드는 거다

정말 바보같다고 화를 내던 남편과 한 애에게 잽싸게 돈만주고 자리를 떳던 나를 배고프다는 말을 외치며

끝까지 쫓아와 결국 돈을 받고야 물러났던 여자 아이..

한시간 넘게 걸으니 정말 몸과 마음이 다 지쳐서 밥도 안먹곤 다시 리조트로 돌아와 버렸다

어디나 가난한 사람들은 많겠지만 마닐라 시내도 그렇고 세부시내도 그렇고 인간의 생활이라고

보기엔 넘 비참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아 넘 우울했다

난 정말 다른 나라를 또 가게 되더라도 그런 나라들은 피하고 싶다

다 쓰러져가는 집들을 쳐다보며 겨울이 춥지않다는게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더라


원래 필리핀에 가면서 남편은 다이빙을 하고 싶어했는데 자격증(?)을 안가져온데다가

장비빌리는 것도 넘 비싸 그냥 하루 스노클링을 하기로 했다

신혼부부들이야 패키지니 그런게 다 포함되어 있지만 우린 배도 따로 빌려야했다

바닷물 수영장에서 다이빙 안경으로 몇 번 연습을 해보긴 했지만 그래도 떨렸다

구명조끼까지 입고는 드디어 풍덩..

와 정말 수족관에서나 보던 열대어들이 종류도 넘 많고 넘 아름답다

무섭단 생각은 잠시고 정말 넋을 놓고 바라다 보았다

우린 배를 빌렸기에 여기 저기 다니면서 남편은 계속 스노클링에 산소통없이

오래 잠수까지 해서 뱃사람들까지 놀래키고..ㅎㅎ

난 그냥 출렁이는 배위에서 가져간 음악을 들었다


점심도 안먹고 몇 시간을 그러고 있다가 우연히 내리게 된 섬..

알고보니 뱃사람의 집이 있는 곳이었다

그 아저씨의 딸 집에가서 맥주도 마시고 바베큐도 먹고..

약간은 바가지였지만 그래도 직접 사는 사람들의 집이라 기분은 좋았다

삼대가 같은 집이 아니라 다닥 다닥 붙어서 같이 산단다

집안은 작지만 생각보다 깨끗하고 삼성티비도 있었다..^^

난 사실 그런 동네로 휴가를 간걸로 마음이 좀 복잡했는데 그 아저씨가 관광객이 없으면

못먹고 산다고 한 말로 스스로를 조금 위로했다


이번 여행은 남편이 수영이 넘 하고 싶다고 해서 간건데 신혼부부커플들이 구명조끼에 비취보트까지

수영장에 끌고와 설쳐대는 바람에 종횡무진 해야하는 그는 수영을 많이 못했다

그나마 그가 가져간 책이 넘 재밌어서 다행이었지만..(완전 거꾸로 된 상황..ㅎㅎ)

바닷가도 아니고 수영장에 구명조끼 입고 보트까지 끌고오는 건 사실 좀 심하더라..

거기다 중앙만 민물수영장이고 주변이 다 더 넓은 바닷물 수영장이라 거기서 타고 놀아도 충분하겠구만..ㅠㅠ

마지막날엔 책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러워서 내개 중국말로 "아 한국사람이 넘 많다"고 푸념을 하더라..하하하


그렇게 예정했던 시간이 후다닥 가버렸다

사실 오기전에 넘 많은 신혼여행객이 도착해서 떠나는 게 다행이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아쉬었다

아마 빌딩숲인 상해랑 비교가 되어서 그랬을까?

하늘은 푸르고 야자수가 우거지고 아침에 일어날 걱정없이 저녁에 남편이랑 포도주마시며 많은 얘기를 하고...




'흙 묻은 신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객원칼럼] 민들레님의 홍콩여행기  (0) 2003.08.07
민들레님 홍콩여행기2  (0) 2003.08.07
쉬어가기-마카오  (0) 2003.07.21
(특별칼럼)독일에 다녀왔습니다  (0) 2002.11.04
(특별칼럼)계림 여행기  (0) 2002.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