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은 영어 외의 영화나 드라마는 안 보지만 그녀에 관한 영화가 지니티비에 있는 걸 보고는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불경하게도 그녀를 작가로서 좋아하기보다 그녀의 연애사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막스 프리쉬랑 파울 첼란과 연애를 했다니 알마 말러 같은 팜므파탈이자 누구의 연인으로 불리기에는 본인 존재감이 한없이 컸던 사람
과문한 탓에 한국과 비교가 어렵긴 해도 나혜석이나 최영미 정도의 센세이션이 아니었을까 싶다

영화는 우선 주인공의 미스매치로 기대이하였다
이 배우에게서는 바흐만의 지성 고집 카리스마 같은 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배우에게는 미안하지만 보는 내내 흐리멍텅해 보인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찾아보니 지난번 한나 아렌트 영화를 찍은 감독이던데 그때도 그렇고 실화바탕 영화의 주인공 고르기에서 실패했다는 생각
그런데 여든이 넘으신 데다 폴커 쉘렌도르프의 와이프셨네
아렌트야 말할 것도 없지만 바흐만도 하이데거로 박사논문을 쓴 지성에 (그러고 보니 둘 다 하이데거랑 관련이 있네) 자의식 강한 작가인데 영화 속에서는 뭔가 철없고 신경질적이고 자유연애만 꿈꾸는 여성상으로 묘사된 느낌
담뱃불이 몸에 떨어진 걸 모를 정도로 약에 취해 고통스런 말년을 보냈다던데 영화 속의 그녀는 그런 고통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막스 프리쉬책은 두 귄밖에 읽지 않았지만 좋아하는 작가인데 바흐만과의 편지모음집이 나와 있다니 읽어보고 싶다
예전에는 둘의 나이차이가 엄청 많이 난다고 생각했는데 15살이면 그리 많은 건 아니었네
58년부터 63년까지 관계를 맺다가 프리쉬는 68년에 다시 결혼을 하고 바흐만은 73년 그녀가 사랑했던 도시 로마에서 화재로 죽는다
프리쉬는 바흐만과 달리 오래 살아서 유튜브에도 볼거리가 많더라

사실 파울 첼란을 제일 기대했는데 영화에서는 안 나온다
둘의 서신교환책도 있다던데 그것도 읽어보고 싶다
마누라를 칼로 찌르려 했고 결국은 센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는 이 비운의 유대인 남자는 이십 대에 만난 바흐만과는 어떤 연애를 했을까
영화는 그녀의 마지막 어린 애인과 사막으로 떠난 여행과 막스 프리쉬랑 동거하던 때를 교차로 보여주는데 여러 도시가 나오는 데다 애인 같은 남자가 또 하나 등장해 그 남자도 누군가 한참 찾아봐야 했고 살짝 불친절하다
연애 이야기지만 성관계 장면은 아예 없고 그룹섹스를 암시하는 장면이 딱 하나 나오는데 19금인 건 좀 웃기다는 생각
영화속의 그녀가 뭔가 막연하게 느껴지다가 시어머니보다 여섯 살 연상이란 생각을 하니 갑자기 신화속에서 현실로 걸어나온 느낌이 들더라
어쨌든 사막씬들도 밋밋하고 영화는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오랜만에 독일어영화를 봐서 좋았고 독일어문학 관련 영화를 보고 나니 새삼 찾아보고 싶고 읽어보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졌다
하고 싶은 게 너무너무 많은데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넘 많아 시간을 낼 수 없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게으른 데다 집중력이 떨어졌기 때문이 큰 이유라는 건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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