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따뜻한 은신처

스웨덴 애들과 영어

史野 2022. 12. 21. 15:01


우연히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라는 프로를 재방송으로 보는데 영어를 쓰는 애들이더라
영어가 듣기 편한 억양이길래 어떤 나라인가 했더니 세상에나 영어권 애들이 아니라 스웨덴 애들이다
아니 그럼 스웨덴어를 써야지 왜 헷갈리게 영어를 쓰고 난리냐

그러니까 옛날 생각이 나더라
98년 사야가 더블린에 갔을 때 다니던 어학원에도 스웨덴 애들 천지였다
열몇 명인 반에서 독일애 둘 중국애 하나 사야 나머지는 다 스웨덴 애들
그나마도 중국애는 못 따라가겠다고 반을 바꿔서 동양인은 사야만 남았더랬다
(그 중국애가 학원에 다른 한국인이 또 있다며 고기공 놈을 소개해줬다ㅎㅎ )

영어를 거의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하던 애들이었는데 뭘 또 배우러 왔냐니까 국가에서 돈을 대주는 프로그램이라 놀러 왔다더라
어려서부터 영어방송을 접하며 자란다나
그때 스웨덴 애들이 하도 개판을(?) 치고 다녀서 개랑 스웨덴 사람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붙인 술집도 있었다

그때가 역시나 월드컵이라 애들과 몰려다니며 술집에서 축구를 보곤 했었는데 기본적으로 위스키 한잔에 기네스 한잔 양손에 술 들고 마시기 ㅎㅎ
그때 독일애들과 사야는 틈만 나면 독일어를 썼었는데 걔들은 술집에서도 영어를 썼다

지금이야 거의 잊었지만 그때 사야도 영어를 꽤 잘했는데 토론할 때마다 그 애들 앞에서는 어찌나 작아지던지 약도 오르고 부럽기도 하고 그랬다
한 애가 사야더러 네 두뇌회전 속도를 말이 못 따라간다고 했었는데 그 말은 결국 버벅거린다는 소리 아니냐고 ㅎㅎ

눈 올 때 본 애들도 아닌데 방송 때문인가 옛 기억이 벅차게도 밀려온다
그 애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늙어가고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때 사야가 만났던 애들이 지금 티비 나오는 애들의 거의 부모세대다
부모들도 그리 유창하게 영어를 했으니 저리 자연스레 영어를 쓰는 게 무리는 아니겠다

우짜든둥 월드컵이 끝났다
시간이 영 아니올시다여서 보다자다 그것도 스트레스였는데 시원섭섭하다
그래도 결승전은 승부차기에 시상식까지 야무지게 봤다

그리고 잠들어서는 스물여덟 시간을 내리 잤다
월요일 새벽에 잠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화요일 아침이더라고
설마 월드컵 끝났다고 긴장이 풀려서는 아닐 텐데 오랜만에 또 신기한 경험이었다
불쌍한 울 호박이 그 긴 시간 같이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갔는데 옆에서 너무 쌔근쌔근 잘 자고 있어서 황당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ㅜㅜ


글고 드디어 오늘 소원성취를 했다
내리는 건 싸락눈이었는데 의외로 이번에는 뭉쳐지는 눈이길래 잽싸게 저 웃기는 친구 하나 세워놓고 들어왔다 ㅎㅎ


비 오는 날은 빈대떡인데 눈 오는 날은 뭘 먹는 거지 궁금해하다 결국 빈대떡 먹는다
저리 예쁘게 부쳐진 걸 보면 사야 솜씨는 아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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