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농사짓는 사야

왜소해진 사야

史野 2014. 2. 25. 01:41

 

 

여기선 1화방이라고 부르는 첫 꽃대가 끝나가고 저리 2화방꽃이 활짝 피었다.

딸기가 물러 노심초사한 일도 있었다만 그래도 나름 일화방이 무사히 지났고 바로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저리 앙상이 가지만 남은 꽃대를 보면 왠지 울컥하면서 안쓰러움 그리고 만개한 꽃을 보니 처음 설레였던 그때처럼 힘든 걸 너머 그래도 설레던 마음.

 

여기서 참고로 이해를 돕자면 사야네 하우스가 소형이고 대형은 저기서 저 가운데 둔더기 두 개 더 들어간다.

 

 

 

그런데 그 설레임이 가시기도 전에 찾아온 이 테러.

지난 번에 올렸던 곰보딸기의 정체다.

처음엔 신기하기만 했는 데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떼어내다보니 지금 열매가 맺힌 딸기중 거의 전부.

냉해를 입은 거라는 데 아무리 생각해보고 누구에게 물어봐도 도저히 납득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저렇게야 당근 상품가치가 없으니 떼어내고야 있다만 수천개도 아니고 수만개.

금액으로도 대충 이삼백만원.

사야가 이 하우스에서 잘해야 올릴 수 있,는 이익도 아니고 매출이(?) 천오백만원이라던데 저리 된서리를 맞다보니 망연자실이다.

 

띨기를 수확할 날은 이제 겨우 두달 남짓.

아직 칠백만원도 못 채워 안그래도 도대체 그 돈은 언제 버는 건 지 궁금했는데 이젠 또 이렇게 수확하기전 딸기를 허리 부러져랴 떼내어야만 하다니 말이다.

 

 

 

가끔 이리 특이한 모양의 딸기가 나와 감동(?)해 사진도 찍고는 한다만 딸기는 딸기모양이어야 판매도 할 수 있는 법.

거기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것처럼 딸기도 산처럼 쌓아놔도 담아야 상품이 되는 건데 말이다.

 

 

 

딸기하우스는 아니다만 역시 비닐하우스로 되어있는 작업장의 저 시간 온도. 닫아놨기에 나온 극단적인 온도긴 하다만 하우스의 특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거라 찍었다.

그것보다 심하긴 해도 해가나는 날의 갖힌 자동차안 느낌이랑 비교하면 이해는 갈거다.

덕분에 사야는 이 추위에도 반팔티셔츠를 입고 일하면서도 땀까지 흘리는 기염을 토하고 있기도 하다.

 

 

 

힘은 들어도 죽을 것 같은 날들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순간 미친듯히 책이 그리워진 순간이 있었다.

그래 남친이랑 도서관에 가 빌려온 저 책. 여전히 가져다놓고 한 페이지도 안 읽었지만 바라만 보는 것으로도 그냥 설레인다.

 

그러고보면 여주집에 간지도 아련한데 사야는 어쨌든 너무나 다른 환경인 이 곳에서도 나름 잘 살고 있는 걸 보면 그냥 그 집이 통채로 날아간다고 해도 삶은 이어가지 않을까, 아니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가.

 

 

 

딸기로 총 오백오십만원의 매출을 올렸을 때 391만원의 비용을 들인 사야네 희망의 땅.

(사진의 왼쪽 논아래부터 초승달모양으로 다시 돌아 왼쪽에 닿기까지가 그 땅이다)

다음 달이면 나무를 심어야하는 데 왜그렇게 복잡한 건 많은 지 과연 저게 사야가 생각하는 희망의 땅은 될 수 있는 지 불안하기 그지 없는 날들이기도 하다.

나름은 잘해보겠다고 그 바쁜 와중에 왕복일곱시간도 넘게 걸려 경상북도 어느 구석에 잘 키우신다는 분을 찾아가 보기도 하고 공부랍시고 하고도 있다만 안그래도 초보에게 왜이리 겁주는 인간들은 많은 건지

얽히고 설킨 문제들도 있고 무엇보다 충분히 공부해보지 못하고 시작하려는 사야네에게 있다만 확신에 찬 인간들이 너무 넘쳐 혼란스러운 걸 너머 힘겹다.

 

 

 

저 놈들이 사야에게 특별한 존재들이란 건 구구절절히 설명했다만 다시 저 놈들 곁으로 돌아온 지 아직 반년도 안되었는 데 매번 느끼는 감동과 안쓰러움등은 예전보다 배가 된 것 같다.

목욕도 못 시키고 산책도 못 시키고 그나마 해주는 게 이 겨울에도 집과 마당을 맘대로 드나들 수 있도록 문하나 열어놓는 것 뿐인데 울 저 똥개새끼들은 뭐가 그리 좋은 지 사야만 보면 간도 쓸개도 다 내어줄것 같다.

 

개라면 무서워 벌벌 떨던 사야가 저 개군단들과 인연을 맺은 것도 조금 있으면 오년. 어쩌면 지난 번 올렸던 개들처럼 일미터 줄에 묶여살다 개장수에게 팔려가는 운명이었을 저 놈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사야와 교감하고 있는 걸 그리 오래 보고 있자니 감동을 너머 운명같은 거랄까.말이 안통하니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는 지 궁금하기 이를데 없다만 같은 말을 하고 사는 인간들도 서로 이해못하는 마당에 차라리 말없는 우리의 교감이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글을 쓰면서 또 술이 취해버렸고 사야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 지 잘 모르겠다.

여전히 사야가 사실은 얼마나 잘난 인간인지를 우기고 싶기도 하고 반대로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인 지를, 스스로 감당하기 힘들만큼 적나라한 모습을 봤다는 걸 쓰고 싶기도 하다.

그래 결론은 버킹검이라고 누누히 강조한다만 딸기농사를 지어보지 못했다면 또 이런 저런 생각도 해볼 수 없었겠다는 게 맞겠다

 

사야는 내일 왠만하면 (그러니까 절대적인건 아닌^^;;) 건들고 싶지 않았던 돈을 만들러 갈거다.

여전히 여주집은 남아있다만 그래도 그 돈은 건들고 싶지않아 여기 내려와 농사도 짓고 있는 건데 사야 수중에 한 푼도 안남게 된다면 사야는 이 딸기농사도 다시 짓게다는 말이 나올까.

 

사야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않다는 조카들중에도 같이 살았던 오빠네 아들내미들이 아무래도 더 특별한데 그 작은 놈이 졸업을 한단다.

외국에 살았더라도 그 핑계삼아 비행기타고 왔을 지도 모를 정도로 가서 축하해주고 싶은 놈인데 사야는 지금 또 무지 괴롭다.

 

산다는 건 이렇게 맘대로 되는 게 아닌 것을 사야는 왜그리 멋대로 하고 살았던걸까.

아니 그때는 멋대로 해도 충분히 책임질 수 있을 거라고 믿었고 지금은 그게 자신없다는 그 차이인 것 같다.

자꾸만 자신없어지는 것 그게 나이들어가는 거라면 그 자신감하나 믿고 여태 버텨온 인생으로서 참 막막한 일이다.

끝없이 작아지는 것도 모자라 그 틈새로 겨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부분들까지 봄날 새싹이 쑥 솟아나듯 사야를 힘들게하고 있다.

 

 

넌 원래 그런 인간이었어

라는 걸 인정하는 건

신호등이 파란불이 아니라 녹색불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 만큼 힘이 든다.

 

신호등이 파란색이 아니라 녹색이라는 건, 인지나 판단 뭐 그런 문제가 아니라 그런 모든걸 앞서는 일종의 세뇌거든

저게 파란색이라고 말하고 내가 습득한 이상 왠만하면 아무도 저게 녹색인 것도 아니 녹색인 걸 알아도 딴지를 걸지 않아 왜 저건 녹색이 아니라 파란색으로 보이거든

내가 아마 녹색이 아니라 파란색을 본 거지 녹색을 본 건 아닐꺼야라고 생각하니까.

아니 녹색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이 미친인간일 수 있거든.

파란불도 녹색인 줄 알고 당연히 건너가는 건 그 사람들이 몰라서가 아니라 일종의 세뇌라니까 그래서 녹색을 보고 저건 녹색이 아니냐고 묻는 것도, 그 당연할 걸 따지냐는 사람도 사실 잘못은 아니라는 거지.

 

그래 사야는 여태 그 녹색을 따지다 파란 불에 건너라는 엄마말에 융통성없게 그 건널목을 못 건너다가 이제서야 겨우 건너지는 못하고 그게 파란색이 아니라 녹색이었군나를 인지하게 되었다는거다.

 

 

 

 

 

 

 

 

 

 

 

 

2014.02.24. 담양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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