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려온 지 열흘이 넘도록 한결같이 우울해하는 저 녀석.
바깥에 나가있는 것도 잠시 사야가 앉아있는 책상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침대에 하루종일 저러고 있다. 가끔 들여다보면 너무나 우울한 표정으로 쳐다봐 사람을 너무 힘들게한다. 그나마 산책할 때는 반짝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는데 어제는 비가 오기도 했지만 산책후 목욕시키는 게 힘들어 매일 나가지도 못하고 있다.
저러고있는 모습에 사야가 오버랩되어서 사야조차도 자꾸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 그나마 사야는 우울증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는데 이러단 정말 우울증에라도 걸릴 것 같다.
결국 내일 남친이 저 놈과 사야를 데리러 오기로 했다. 이 곳에서 잘 좀 버텨보고 싶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거금 삼십만원도 넘게 들여 데려온 건데 겨우 열흘정도 버티고는 두손 두발 다 들었다.
사야를 워낙 좋아하고 옆에붙어서 안 떨어지는 놈이라 심지어 화장실 볼 일보는 데까지 따라들어오는 놈이라 미안한 마음은 있었어도 데려온 건데 남친이랑 통화하다 호박이 아끼소리만 나와도 고개를 번쩍들고 기대감섞인 눈으로 쳐다보니 이리 생이별을 시켜놓는 건 정말 못할 짓이다.
애정결핍이 이리 무서운 병인 줄 몰랐다. 시부모님과 남편의 무한사랑과 신뢰덕에 많이 치유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단하루도 술을 마시지 않은 날이 없다. 술에 취하지 않으면 잠들 수 없으니까.
어젠 오랫만에 창자가 끊어지도록 서럽게 울었다. 무엇이 그렇게 서러웠던 걸까.
요즘은 범죄기사를 볼 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프다. 어떤 지옥같은 인생을 살았기에 저리 험한 선택을 한 것일까 이해가 가다못해 감정이입까지 되어 꼭 사야의 인생인양 아프다.
여기에다도 썼었다만 사야도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살기를 느꼈던 날이 있었으니까. 아니 사야의 머리통을 전봇대에 짓찧고 싶을만큼의 자해의 충동을 느꼈으니까.
좋은 정신과샘을 만나 다행히 문제점들은 거의 다 인지했다만 선생님도 사야도 해결책을 찾을 수는 없었다. 현실을 직시하고 냉철하게 사고할 수 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면 위안이랄까.
요즘은 의술이 발달해서 신체는 어떤 수술로도 바꾸는 게 가능해졌는 데 앞으론 내면에 박힌 상처들이나 기억들까지도 수술로 없앨 수 있는 날도 올까. 하긴 치매야말로 어쩌면 가장 절실한 자기보호본능인 지도 모르겠다.
얼마전 다시보기로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드라마를 봤다. 거기서 고두심이 가슴에 빨간약을 바르며 여기가 너무 아프다고, 하던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어젠 갑자기 동태전이 먹고 싶어서 해봤다. 제사를 지내본 적이 없어서 전같은 것도 부쳐본 적이 없는 데 인터넷에서 레시피찾아 해봤더니 모양은 별로라도 꽤 맛이 있더라 사야만 맛있었는 지 처음엔 신나서 받아먹던 씽이는 곧 얼굴을 돌리더라만..
친구놈이 병원에 좀 가보라고 넌 꼭 뭐가 나올거라고 악담을 하던데 그럴 지도 모르겠다. 혼자서도 재료값 안아끼고 열심히 뭔가를 만들어먹는 건 사야도 내심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때문 인지도 모른다. 어차피 음식으로도 못 고치는 건 약으로도 못 고친다니까.
이번에 내려가면 그 집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앞으론 씽씽이를 데려오지도 못할텐데 그럼 사야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완벽하게 홀로서기를 하고 싶었는데 결국 또 실패다.
여기까지 쓰다가 이 사람 저 사람이랑 몇 시간 통화를 했다
그리고 그 사이 술도 엄청 마셨다.
어젠 사야가 울고불고 하다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를 했었는데 오늘은 고맙게도 그 이 사람 저 사람들이 전화를 해서는 이야기를 들어준다.
하루종일 뭘그렇게 잘못살았을까 고민했는 데 그렇게 잘못산 건 아니라고 삶은 원래 그런거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그래도 있다.
죽어라 노력하고 살았는 데 이 모양 이 꼴인 인생이다만 사야는 또 앞으로도 죽어라 노력하며 살아야겠다.
왜? 살아야하니까 거기다 무조건 외롭고 싶진 않으니까.
인생이 참 엿같고 그걸 슬프게도 참 자주 경험한다만 사야는 사야에게 주어진 이 인생을 끝까지 그래 앞으로도 죽어라 노력하며 성실하게 살아내고 싶다.
겨우 열 세살이었을 때 손목을 긁고 싶었다. 면도칼을 댔었는 데 못했다. 그 후론 단 한번도 그런 적이 없고 삼십년 넘게 그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왔다리 갔다리 하며 이 삶을 살고 있다.
종교가 위안이였던 적도 었고 섹스가 위안이였던 적도 있었고 파르르 떨어가면서까지 삶을 이해하려 애쓰는 자신이 위안이였던 적도 있었다.
이젠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한발을 또 내 딛는다. 가야하니까. 살아있다는 건 걷는 거니까
죽었다 깨나도 이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깜량도 못 되면서 참 오랫동안 스스로를 괴롭혔다.
근데 이제 사야는 달라지려고 한다. 여기 저기 무너지는 인간들이 사야를 슬프게 하는 마당에 사야가 해낼 수 있는 지는 잘 모르겠다만
사야는 또 살아보려구..
2013.09. 25. 여주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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