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늑한 모래실

신기한 사야의 삶

史野 2011. 5. 17. 02:10

사실 지난 번 자족하는 삶으로 글을 올리려던 건데 다른 곳에 우리 새깽이들 사진을 올리고나니 지쳐버려 그리 웃기는 포스팅이 되고 말았다.

 

예전엔 아무리 술을 마셔도 사연을 줄줄히 이어갈 수 있었는데 이것도 늙어가는 징표일까? ㅎㅎ

 

요즘 여기 글을 쓰는 게 어려운 건 게으른 탓도 있지만 과연 지금까지 써온 글과-그게 아무리 사생활일지라도- 연관성이 있을까하는 의문때문이기도 하다

 

자세히 체크해보진 않지만 아무리 글을 올리지 않아도 매일 꾸준한 방문객 숫자가 찍히는 듯 하지만 이제 이 곳은 소통의 공간은 아니지 않을까하는 생각.

 

물감묻은 궁시렁이었다가 사야의 낯선 사랑방으로 바뀌었던 건 해외에 있는 소식을 궁금해하는 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비슷한 거였는데 이젠 한국으로도 돌아온 마당에 이 곳도 변화가 필요한 것일까

 

하긴 오랫동안 이 블로그는 외국인과 결혼해 여러나라에 사는 조금은 이상한(?) 여자,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나름 신기한 삶이 기초가 되었으니  블로그 정체성에 혼란이 오는 게 당연한 지도 모르겠다.

 

 

우짜든둥 그동안 남들이 신기해하는 삶을 살았다면 요즘 사야는 스스로의 삶이 너무 신기하다

 

마흔 다섯, 적지 않은 나이인데 그리고 사실 나는 자신을 너무 잘 안다고 스스로에 대한 분석력에 정신과 의사도 놀랠만큼 삶을 알만큼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더라는 거지

 

아시다시피 개를 싫어했던 아니 애까지 싫어했던 사야가, 그건 결국 누군가를 책임질 수 없단 스스로 인정한 백기였는데 처음 바리를 떠맡게된 지 이년도 안되어 이젠 다섯 마리의 개를 키우고 있다.

 

개때문에 서울을 갔다가도 서둘러 돌아오고 개때문에 그리도 가고 싶은 봉하마을도 아직 엄두를 못내고 있다. 아니 세상에서 여행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던 그 여자는 개때문에 이 시골 구석에 쳐박혀 어딜 가 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이건 신기하다고 해야할 지 아님 경이롭다고 해야할 지 아님 미쳤다고 해야할 지..

 

 

그리고 돈

누구나 궁금해하는 건 우리가 그러니까 나와 남친이 지금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는 것

 

누군 우릴 걱정하다 흰머리까지 생기고 누군 한 몫 챙겼나보다 부러워하고 또 누군 한심해하더만 울 시어머닌 당신이 혼자 쓰시기엔 충분하다고 당신 연금을 나눠보내시겠단 충격적인 말씀도 하시더라.

물론 울 시어머닌 늘 오버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이야기까지 듣는 걸 보면 한심한건 맞는 건가? ㅎㅎ

 

아니 잘 모르겠다

어떻게 사는 삶이 잘 사는 삶인지

그걸 모르니 잘 살아보겠다고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래서 아직까지 사야는 사는 게 재밌고 신기하다

이 나이가 되어 처음 해보는 게 많다는 것 그걸로 행복하거든

무슨 종교노래 가사처럼 내일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는 아니지만 그냥 다가올 미래에 내 현재를 저당잡히고 싶지는 않다는 것

 

요리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음식 편하고 맛있게 잘한다는 평을 듣고 살았는데, 그래서 파티를 하건 누굴 초대하건 거리낌없던 사람인데

요즘 사야는 이 나이에 파전 콩국수 감자탕 그리고 수제비같은 음식을 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성공하면 아이같이 좋아죽는다

 

그래 사야는 요즘 이렇게 산다

사실 사야는 늘 그렇게 살았는데 돈을 팡팡 잘 벌던 남자랑 살 때랑 내 마음보다 주위의 시선이 더 강렬하달까..ㅎㅎ

 

신기한 사야의 삶의 압권(?)은 남친이다

도저히 나와 맞을 것 같지 않았던 남자와 지금 꼬박 삼년 가까이를 그것도 24시간 함께하며 보내고 있다

이혼전이야 이 남자가 아니었으면 한국에 남지 못했을 거란 생각에 고마왔는데 이젠 이 남자 자체로 그냥 고맙다

 

남친을 만나기 전의 사야는 깔끔히고 똑똑하고 세련되고 멋지고 세상 어딜 가나 기죽지 않는 당당한 여자였다

지금 남친과 사는 사야는?

욕을 입에 달고 살고 게으르고 하루종일 세수도 안하고 쳐다보기만해도 끔찍해하던 욕실에서 자연스레 샤워를 하고 무시하던 예능프로를 보고 미친듯이 웃어댄다

 

이가 아픈데, 그것도 아주 심각한데, 일본을 떠나기전까지 멀쩡하다던 이와 잇몸이 삼년만에 손을 쓰기도 힘들만큼 엉망이 되었다는데

돈도 돈이지만 그 치료과정이 끔찍하고 미칠 것만 같은데

그래도 아픈게 눈이나 귀가 아니라서 이 아름다운 봄과 바람소리 새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니

 

글을 쓰는 동안 주구장창 술을 마셔서 중구난방 내가 뭔 이야길 하려는 지 중심을 잃었다만

나이가 들어가기때문인 지

아님 넉넉한 남친때문인 지

 

사야는 지금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그런 삶을 살고 있고 그게 아직은 참 신기하다.

 

 

 

2011. 05.16. 여주에서 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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