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연양리풍경

신경정신과와 저녁예불

史野 2010. 2. 8. 01:26

생각밖으로 참 오랫동안 멀쩡하게(?) 지냈다.

 

내가 잠을 못자고 괴로와했던 시간이 있었나싶었을만큼.

 

정확히 십오년만에 신경정신과를 그것도 얼떨결에 다시 찾았다.

 

한국을 나올때 내 거창한 계획중 하나는 좋은 의사를 만나 제대로된 분석치료를 받아보는 거였는데 어찌보니 잠을 잘잤고 장성으로 내려가며 그런 계획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도 잊었었다.

 

장성으로 내려갔던 내 계획도 결국은 좌절되어 여기까지 왔고 여기와서는 또 뜻하지않게 강아지들때문에 정신없는 날들이 지나고 또 지나갔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 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시간들.

 

한국에 돌아온 지 벌써 이년하고도 반. 이혼을 한 지도 일년하고도 사개월이 지났건만 그 고민들은 여전하니 불안하지 않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거다.

 

안그래도 작년부터 위태위태하던 신경줄이 크게  튕겨졌던 건 새해 초 전남편이 보낸 메일때문인데 이 왠수땡이 남자가 새해인사겸 자기 러시아가는 문제며 나름 안부를 전하다가 마지막에 '나는 너를 매일 생각하고 있다' 란 결정적 실수를 한거다.

 

미워서 헤어졌더라면 무슨 놈 뭐하고 있네, 지나갈 수 있는 일이었지만 아시다시피 우린 그렇지 못했기에, 아니 내가 남편에게 가진 죄책감이 크기에 정말 순간은 미치는 줄 알았다.

 

나는 그 남자를 너무 잘 안다. 아니 잘 안다고 생각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리 표현할 남자가 아니기에 한동안 힘이 들고 들었다.

 

지켜주고 싶었으나 지켜주지 못한 남자.

 

지금도 내가 모스크바, 난방비걱정같은 건 꿈도 못 꿀 어느 드럽게 호화스런 아파트에 앉아 러시아어를 배울 생각을 해야한다면 소름끼칠 정도로 싫건만 그래도 그 남자는 무조건 행복해야한다고!!!!!

 

꼭 그게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었겠지만 나는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시간마다 깨고 불안해 미쳐하고 다시 잠을 이룰 수 없는 시간들..

 

내가 타고난 천형. 벗어날 수 없다면 친구라도 되길 바랬으나 아무리 술에 취해도 한겨울 강바닥처럼 더 차고 명료해지는 의식.

 

그 새벽 엄마랑 통화를 했는데 고맙게도(?) 그날 엄마가 의사랑 약속을 잡아줬다.

 

그 동네 그러니까 내가 살던 동네에서 나름 유명한 의사라는데 이십년 전 내가 갔던 나름 인지도있던 상담의사도 아니고 팔순인 우리 이모 유울증인지 불면증인지를 약으로 잘 치료했다는 의사라는데 왜 나는 여주에서 서울까지 그 날 그 길을 갔던 것인지..

 

이유야 어찌되었던 나는 다시 신경정신과를 다니기 시작했다. 고로 일주일에 한번은 꼭 서울도 다니기 시작했다.

 

첫주엔 정말 오랫만에 고기공놈과 비어플러스에 들렸는데 사장님등 어찌나 반가와해주시든지 감동.

 

날위해 골뱅이를 그 산속인지 어딘가 택배로 보내줘야하는 건 아닌가 고민했다는 말을 듣는데 그게 빈말이라도 너무 고마웠다지.

 

두 주는 그리 그냥 옛 생각하며 진탕 술마시고 그럼 남친이 고기공놈을 안양까지 데려다주는며 우린 찻속에서 더 술을 마시는 호사까지 누리니 병원가는 게 내겐 활력소다.

 

늘 술을 마실 순 없으니 지난 주엔 뮤지컬도 하나봤다. 의사에게도 이야기했지만 병원땜시 서울에 오는 것도 이벤트인 이 시골인생.

 

서울갈때 마다 이게 마지막이다 생각해서였을 수도 있다만..ㅎㅎ

 

지금까지 세번 갔고 앞으로 최소 두 주는 약속이 잡혔으니 이 병원나들이가 계속 될 지도 모르겠다.

 

그래 내가 서울나들이핑계로만 서울 가겠냐 선생님에게 조금씩 희망이 생기는 중이다..^^

 

더 중요한 건 지 덜 중요한 건 지 모르겠다만 그런 와중에 강건너 신륵사에 저녁 예불을 드리러 다니기 시작했다.

 

세상에나 아무리 내가 절에서 자란 남친이랑 일년넘게 살았더라도 사실 이건 아닌데

 

이것도 인연인걸까

 

병원에서 준 약도 안 듣고 의사선생님이랑 나눈 대화들로 더 머린 복잡해 잠들기 어렵던 시간.

 

약도 안들면 어쩌라고 (아니 엄밀히는 거부하고) 갑자기 남친과 찾아간 예불

 

신륵사는 유명한 절이니까 뭔가 대단한 줄 알았는데 별거 없었던 아주 웃기는 예불이었다지

 

내가 절에서 자란 남친과 같이 살고 절 비슷한 곳에서 일년 가까이 살긴 했어도 나는 기본적으로(?) 기독교인이었다

 

기독교는 내게 엄마품, 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건 아닌 관계로 엄마품대신 할 수 있는 뭔가를 지금은 모르겠고

 

일단은 고향 비슷한 것.

 

그런 내가 오늘 조계종 신도증 서류를 작성하고 법명이란 것도 받았다

 

병원가느라 하루 빠진걸 빼면 오늘로 일주일간 저녁예불에도 참석해 이런 저런 독경을 하고 있다

 

내가 얼마나 절박해 보였으면 불교도 마귀라고 외치던 내 엄마가 내가 예불을 간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기도 하다.

 

 

기독교는 어쨌든 나를 구원하지 못했다

 

불교가 나를 구원할 지 나 아직 모른다

 

거기다 장성에서 그 스님과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싸우고 나온 마당.

 

그래도 절에 가니 좋고 예불 참석한 지 겨우 일주일이지만 그것도 좋더라

 

 

그래

 

사야는 이제 불자

 

 

반야심경 천수경 금강경 뭐 이런 내게 낯선 것들을 독송하며 내 삶을 이겨내 볼란다

 

가능한한 앞으로도 계속 의사도 만날 것이며 예불도 계속 할 것이라고.

 

이제야 알겠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저 남들처럼.. 이였다는 걸

 

 

나는 죽어도

 

남들처럼은 못산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남은 인생을

 

전혀 아주 간절히 그러고 싶지 않지만

 

신경정신과와 예불을 반복하며 살게 될 지도 모르겠다.

 

 

 

 

2010.02.07. 여주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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