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된 단풍구경도 아직 못했는데 가을이 가고 있다.
원하던대로 책을 읽는 것도 아니고 요즘은 사진을 찍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에 글을 자주 쓰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하루는 왜이리 짧고 시간은 왜이리 쏜살같은 건지
깡으로 버텼건 어쨌건 지금까진 그 흔한 감기한 번 안걸리고 살았는데 갑자기 건강에 자신이 없어졌다. 하긴 그렇게 술담배해대며 몸을 혹사시켰으니 이만하면 몸이 반란을 일으킬때도 되었다.
건강검진을 받아볼까 심각하게 고민했으나 미련하게도 결국 포기했다. 대신 다시 꾸준히 달리기 시작했고 특별히 몸에 좋을 거라 생각하는 것들을 챙겨먹기 시작했다.
욕심을 버리고 삶에 순응하며 그저 소박하게 살자하는데도 가끔씩 복잡한 속까지 어쩌지는 못하겠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인간관계의 폭이 넓다고 자부했던 사야는 마흔세살이 되어서야 스스로 얼마나 우월의식에 사로잡혀있는 지를 깨닫고 무진장 당황하고 있는 중이다.
주제파악도 잘 못하면서 어찌 그리 잘난척 상담을 하고 살았을까 혀를 차는 중.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걸까 여기 올린 적도 있는 말레이시아에 있다는 '그 남자'에게서 이년만인가 또 메일이 왔다. 누군가와 대화가 하고 싶다, 라는 느낌이 들때 내가 생각났다나.
더 신기한 건 홍콩에서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던 어떤 사람에게서 그러니까 육년만에 메일이 왔다. 얼굴도 가물가물한 우리는 어쩌면 육년만에 또 만나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오랫만에 연락을 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나도 리즈나 마유미에게 연락을 하고 싶은데 그들은 내게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이었는데 무엇이 이리 나를 망설이게하는 지 모르겠다. 리즈야 내 연락을 이미 포기했더라도 마유미는 한국에서의 내 생활을 많이 궁금해하고 걱정하고 있을텐데..
사람의관계는 오래되고 익숙해져야 좋은 건데 떠도는 동안 내 인간관계는 덕지덕지 기운 조각보같은 느낌이다.
강가라서 그런가 이 곳의 안개는 독일보다 더한 것 같다. 새벽녁까지 술을 마시다 이런 풍경을 만나면 몽롱한 의식속에서도 왜그리 강렬히 삶의 의지가 생기는 건지 모르겠다.
어제는 달이 하도 밝길래 강가로 술을 마시러갔다.
옛사람들처럼 강에 배를 띄우고 달빛에 의지해 술을 마시는 낭만까진 아니었지만 포도주잔까지 챙겨들고 나가 까만 강물을 바라보며 남친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니 좋더라.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지 모르는 생활이건만 가장 치열해야할 나이 마흔 셋에 뭘하고 있는 건지. 나이들어 초라한 늙은이가 되지 않기위해 무엇을 해야하는 지 갈피를 못잡겠다.
그나마 자식이 없다는 게 지금으로선 큰 위안이지만 나이가 더 들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지?
끝까지 내가 나를 책임지는 삶을 살고 싶다만 그게 그리 쉽지가 않다는 걸 절절히 깨닫는 나이.
그 가을이, 수십번을 맞아도 여전히 설레는 미치도록 아름다운 가을이 가고 있다.
2009.11.06. 여주에서...사야